메리스크랜트 여사(이화학당 세운 분)가 참 진짜 대단하고 한번 만나고 싶어요
진짜 지금 의대정원 찬반을 보니까 더 대단해 보여요.
외아들이 의사되어 개업한지 얼마 안 되었는데 듣도 본적도없는 아시아의 오지 국가로 가라고 했대요.
의사로서 가서 선교사업을 하라고 한 거죠.
보통의 의사 어머니들 같으면 내 아들이 의산데 가서 왜 고생하냐 여기서 계속 의사하고 나도 의사덕이나 보고 살아야겠다 그랬을 텐데
아들이 떠나는 거를 허락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본인이 같이 갑니다.
올가미처럼 아들을 괴롭히려고 따라 가는게 아니라
본인도 그 오지의 나라에 가서 선교사업을 무엇이든지 도와주고 싶어서 따라가는 거예요.
그때 나이가 자그마치 만 52세,
보통 이나이면 갱년기로 여기저기 아프고 그동안 고생했으니 이제 좀 쉬어야 되겠다. 이랬을 거 아니에요.
더구나 이게 1800년대 후반이니까 그때는 평균 수명도 짧았을 때고.
그런데 한 번도 들어본 적도 없고 누군가 가본 적도 없는 나라를 아들이랑 같이 떠나는 거예요.
첨에 먼저 선교사업이 잘 이루어진 일본으로 갔대요. 일본에서 대접을 잘 받았다네요. 일본에서 심지어 가지말고 계속 있으라고 했는데 뿌리치고 배를 타고 부산으로 먼저 도착을 했는데
부산 도착해서 거리를 거닐며 서민들의 삶을 보다가
특히 여성들의 삶이 너무 비참해서 여성에 대한 교육부터 시작해야 되겠다고 결심을 했대요.
그리고 한양에 와서 고종을 계속 설득해서 이화학당을 허락받고 시작했는데 당연히 아무도 안와서 처음에는 길거리 불쌍한 천민 자녀들 가르쳤나 봐요.
기숙사를 운영했기 때문에 사실상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주고 가르쳐주고 아프면 치료해주고 이걸 다 해준거에요.
그러다 설립 다음해에 양반가의 딸이 처음으로 입학을 하는데 바로 갑신정변 주역 박영효에 딸이었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양반 딸이 천민 딸들하고 같이 교육을 받은 거예요.
그러고 보니까 또 여자들이 아파도 제대로 진료를 못 받고 죽는 경우가 많더래요. 서양의료 접근성도 떨어졌지만 무엇보다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자신의 몸을 보여주지를 못해서
치료를 못 받고 죽는걸 보고
이번에는 여자들만의 병원을 만들어요. 그리고 그 병원에 미국의 젊은 여의사를 또 오게 합니다. 그래서 많은 조선 여자들이 치료받을수 있게 해줘요.
이게 이름이 보구여관이고
이화의료원의 효시라네요.
이게 모두 만 52세 이후에 이루어진 일이에요.
진짜 어떻게 이런 추진력과 모험심 있을수 있었을까요?
그렇게 오지의 나라에 와서
52세 이후의 삶을 다 바치고 하늘로 떠났어요
정말 타임머신이 있다면 한번 가서 메리 스크랜트 여사를 만나서 한번 물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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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단지 한국인을 보다 나은 한국인으로 만들고자 노력할 뿐이다. 우리는 한국인이 한국적인 것에 대하여 긍지를 갖게 되기를 희망한다. 그리스도와 그의 교훈을 통하여 완전무결한 한국을 만들고자 희망하는 바이다.
이화학당을 설립한 스크랜튼 부인의 설립 이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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