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니까 왠지 기운이 없다.
그대로 누워서 생각한다.
지금 내 기분의 이름은 쓸쓸함.
기분은 나의 뇌에서 작용할텐데 가슴 저 어딘가가 가라앉아있다.
늦가을 바닷가에 혼자 있는 기분.
배경은 회색과 빛바랜 주황색이다.
내 기분의 이유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연휴가 끝나서, 내일부터 일을 해야 해서, 아니면 연휴가 너무 길어서.
그러나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필연적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바닷속 깊은 곳에 있던 수많은 이유 중에 지금은 쓸쓸함이 위로 떠오른 것뿐이니까.
해야할 일들이 있지만 움직이기 싫다.
잠시 움직이지 말자.
누워서 또는 앉아서 내 기분을 좀더 지켜보기로 하자.
나는 이 감정이 싫은 것 같다.
그럼 내가 좋아하는 감정은 어떤 것일까.
나는 좀더 활기차고 밝고 평온함 감정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나 억지로 기분을 바꾸려고 하지 말자.
나는 무의식과 싸워 이길 자신이 없다.
그러니 무의식이 혼자 놀게 놔두고 나는 관찰만 하자.
어차피 물 위에 떠오른 물방울처럼 잠시 후에 지나갈테니까.
그런데 나도 모르고 쇼핑몰을 검색하고 있다.
난데없이 겨울에 입을 패딩조끼가 끌린다.
마치 할머니들 조끼 같은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
할머니들 조끼처럼 자잘한 꽃무늬에 세련된 디자인의 패딩 조끼를 찾는다.
하나를 찾았다. 가격은 30만 원대이다.
마음에 든다. 지금 내 마음에 든다.
결제 버튼을 누르려다 만다.
지금 이 쓸쓸한 기분이 지나가면 그때 다시 한 번 더 보고 생각하자.
내 기분은 아직도 가라앉아 있긴 하다.
난데없이 아이들 어릴 때 여행을 갔던 기억이 난다.
그때 돈이 많지 않던 시절이라 난 예쁜 옷이 없었다.
날씨가 생각보다 더워서 그때 난 가져갔던 긴 팔 셔츠를 주방 가위로 잘라 입었다.
그때 속상했었다.
그런데 지금 내 옷장은 차고 넘친다.
그런데도 나는 또 옷을 사려고 한다.
이 쓸쓸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일까.
그럴 수도 있다.
어쨋든 이 기분이 지나면 그 조끼는 다시 한 번 보고 생각해 보자.
내 기분의 이름표는 쓸쓸함.
색깔은 회색과 빛바랜 주황색.
기분의 배경은 늦가을 텅빈 바닷가.
내 몸은 기운이 없고 가슴이 가라앉아 있다.
배가 고프다.
커피를 한 잔 먹어야겠다.
냉장고를 열어 오징어무침을 꺼내 먹었다.
하루가 지나니 더 맛있어졌다.
물거품처럼 올라왔던 쓸쓸함이 지나가고
일어나서 냉장고에 가득 찬 식재료로 저녁 반찬을 만들자고 상냥한 기분이 조금씩 솟아오른다.
이것 또한 물거품처럼 지나갈 기분이지만
지금은 쓸쓸한 물거품을 보내고 상냥한 물거품으로 대응하겠다.
지금 내 기분의 이름표는 무난함.
색깔은 아이보리.
배경은 지금 여기 우리집.
화려한 패딩조끼는 사지 않겠다.
굳이 다시 보고 싶어지지도 않는다.
내 기분의 관찰일지 끝.
(기분이나 느낌에 휘둘리지 말고 관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