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동현씨는 페북에 계속해서 나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으므로 나와의 토론을 시작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그는 지식인답지 않고 어이가 없을 정도로 매우 감정적이다. 검사생활을 오래하셨다고 하는데 석동현씨에게서 인격의 품위를 느낄 수 없다. 상대에게 오로지 저주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나를 자꾸 “이 자”라고 지칭하는데 그것은 상대를 존중하는 말이 아니다. 대통령의 40년 친구라는 분이 남에 위압적인 말투로 글을 쓰는 것이 맞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중요한 요직을 두루 경험한 분이 이렇다면 한국의 고위직에 대해 일반사람들이 희망을 볼 수 없다.
그리고 석동현씨는 내 말을 이해할 수 없는 모양이다. 내가 일제강점기 한국인의 일본국적은 이름일 뿐 한국인은 일본의 노예였다고 말한 것을 석동현씨는 “이 자의 말에 당시의 역사적 사실과 일본인 시각의 자백이 동시에 깃들어 있다”고 "일본인 시각의 자백"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생소한 말이지만 내 얘기 속에 “일본인의 시각의 자백”이 어디에 있는가 정확히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당신은 군거 없는 말은 허위사실유포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니까. “한국의 노예상태에 유의하여”라는 말은 1943년 카이로선언에 있는 말이고 이것은 일본인이 말한 내용이 아니다. “한국의 노예상태"라는 말은 미국 루즈벨트, 영국 처칠, 중화민국 장제스가 합의한 한국에 관한 표현이다. 그것을 “일본인(나)의 시각의 자백”이라고 날조하는 이유는 오로지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일념에서 나온 말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상대의 마음까지 왜곡하는 것이 사회적 리더로서 모범적인 언행인지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석동현씨는 어그제는 나를 "일본 혐한 세력의 밀정"이라고 매도했다. 오늘은 내가 일제강점기의 한국인을 우월감으로 노예로 보고 있다는 취지로 썼다. 모두 허위사실, 날조, 왜곡이다. 증거도 없이 상대에게 거짓프레임을 씌우는 것이 전직 검사가 할 올바른 행동인가? 내가 아는 검사님들은 훌륭한 분들이 많다. 처음 내가 한국에서 어떤 사건의 피해자가 되었을 때 가해자를 잘 다스리신 검사님, 지금도 나를 도와주시는 검사출신 변호사님, 기타 내가 만난 검사분들은 모두 훌륭한 인격자였다. 그런데 나는 석동현씨한테 인격을 느낄 수 없고 당신에게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감정과 억지논리뿐이다.
그리고 석동현씨가 말한 내용, 즉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짐승같았다는 점은 내가 내 논문, 저서, 유튜브 등으로 이미 되풀이해서 인정하는 사실이다. 나는 1970년대 후반에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알게 되어 일제는 너무 잔인했다고 느껴 왜 일본이 당시 그런 악마가 되었는가를 연구하기 위해 한국으로 왔다. 나는 독도문제, 강제징용문제, 일본군 ‘위안부’ 문제, 일본의 극우파 등을 연구해 왔다. 최근에는 한국의 신친일파들이 내 연구나 저서에 반대해 나를 한국에서 추방하겠다는 시위를 벌여 나에게 심한 고통을 준 적이 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자발적인 매춘부’라고 매도하는 사람들이 세종대 정문 앞에서 총 5개월정도 나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인 것이다.
나는 연구를 통해 당시 한국인을 노예로 삼은 일제를 계속 비판해 왔는데 일본 측과 통하는 한국인에게 오히려 고통을 받아왔다. 비이성적으로 나를 공격하는 석동현씨의 비약한 논리는 그들과 유사하다고 느낀다.
석동현씨가 말한 “김장관이 일제시대 우리 조선인들을 어쩔수 없이 일본국적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 것은, 그시절 짐승같은 일본인들이 우리 조선인들을 창씨개명까지 시켜가며 일본인들의 노예로 취급하고 짓밟았던 것을 설명한 것”이라는 내용는 김문수장관의 말의 어디에 있는가?
석동현씨는 “그때 당신의 선조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일본인(노예)이 아니라 대한제국의 신민으로, 또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취급했나? 그것을 말해보라”라고 나에게 반말로 요구했는데 이런 말도 석동현씨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나는 9월 5일 심포지엄이나 유튜브, TV방송 등에서 일제강점기에 “한국인이 대한제국의 신민이나 대한민국의 국민이었다”고 말한 적이 한번도 없다.
일제강점기의 한국인들은 완벽한 일본국적자가 아니었다고 나는 항상 말해 왔다. 일본인들은 한국인을 ‘2등 국민’이라 지칭했고 한국인에 정치적 권리를 주지 않았다.일제는 한국인에게 자치를 허용한 적이 없고 한국에는 한국의회도 없었다. 한국인들에게는 국회의원을 선택하는 선거권이나 피선거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일제는 근본적인 권리를 주지 않으면서도 한국인들에게 일본국민으로서의 의무, 그것도 목숨을 거는 징병과 징용을 시행했다.
일본 본토에는 국회가 있고 국회의원들이 입법활동을 할 수 있었으나 한국에서는 조선총독의 명령이 법이 되었다. 석동현씨가 지적한 창씨개명 같은 것은 조선총독의 명령으로 독재적으로 한국인에게 시행되었다. 한반도와 일본은 법역자체가 달랐다. 한국에서는 형법에 있어 일본본토보다 무거운 것이 많았으니 한국과 일본이 같은 나라라 하기 어려웠다.
“한국인들은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국적자였기 때문에 전시같은 긴급사태에 한국인을 징용해서 강제노역을 시켜도 합법이었다”는 논리는 2015년 군함도 등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키기 위한 일본의 논리었다.
그러나 당시 한국인이 일본국적이었다는 얘기는 일제강점기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한국의 입장으로는 인정할 수 없는 국적이다. 불법으로 강제된 것을 거부하는 권리는 인간의 기본권에 속한다.
1965년 박정희정권이 일본과 맺은 한일기본조약 제2조에서도 일제강점기는 불법으로 되어 있다. 일제강점기가 불법임은 카이로선언에 유래하므로 일본이 합법이라고 주장해도 그것은 처음부터 성립되지 않는 논리다.
불법으로 시작된 일제강점기 한국인의 일본국적이라는 것은 일제가 강요한 것이므로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인정할 필요가 없는 국적이다. 베를린올림픽 마라턴 금메다리스트 손기정이 자신의 국적을 한국이라 적어놓은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일본이라는 국적을 한국인스스로가 당시의 한국인의 국적이었다고 인정하면 일제강점기를 합법으로 보는 일본의 시각을 수용하게 된다. 그것은 국제법적으로도 잘못된 행위이다.
연세대 박명림교수의 말을 인용하고 오늘의 토론을 마치도록 한다. (중앙일보, 2024. 9.6.)
당시 한국인들은 국적의 동일성에 근거하여 일본인, 일본 국민과 같은 권리와 의무를 누렸는가? 무엇보다 강제 병합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국적법은 당시 한국에서 실시되지 않았다. 한국인들에게 일본 국적(법)을 적용할 경우, 한국인의 국적 이탈(제20조)을 통한 반일 저항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효율적인 한국인 억압과 통제를 위해 일본 국적법을 적용하지 않은 것이다. 즉 일본은 병합 이후에도 일본인과 조선인의 법적 신분을 엄격히 구별하였다. 한국인은 제국의 신민이었지만, 일본인과 동일하게 일본 헌법 및 국적법의 적용을 받는 국민은 전혀 아니었다. 당시 일본 국적 사항과 국적법(법률 제66호)은 일본 헌법의 위임법률(대일본제국헌법 제18조)이었다. 언필칭 입헌국가·법치국가였음에도 일본은 한국인에 관한 한 헌법과 법률을 적용하는 대신 관습과 조리에 근거한 국적 취득으로 간주하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