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어야 할지 울어야할지요. 제 남편은 쥐뿔도 없으면서 이상한 자존심 고집이 있는 남자예요.
무슨 얘기냐면요. 물욕을 보인다거나 실속을 따진다거나 그런 걸 극혐해요. 세일한다고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는 걸 보면, 저 같으면 뭘 그렇게 싸게 팔길래 궁금해서라도 한 번 들여다 볼텐데, 남편은 (그깟거 얼마나 한다고) 그런 말 속으로 하는 것 같이 멀리 돌아서 가요. 편의점에서 음료수 1+1이라고 알려줘도 난 하나면 됐다고 대차게 거절하는 이상한 인간.
연애할 때 길에 지폐가 한 장 떨어져 있었는데 제가 그냥 가자고 했었어요. 무슨 몰카 찍는 것처럼 가로등 불빛아래 뙇하고 있는데 왠지 집으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그 모습에 반했대요. 신혼 여행가서도 욕실에 비치된 샤워용품 (엄청 좋은 거였는데) 제가 싸가지고 오는지 안 오는지 감시하더라고요. 그런 궁상떠는 우리네 어머니상이 너무 싫다나 뭐라나. 하지만 살다 보면 고상한 저도 생활의 땟물이 묻지 않을수 있냐고요.
어느날 대형마트에서 십 만원도 넘게 장보고 와서 힘들어 쓰러지려고 하는데 영수증을 보니 작은 냄비 하나 산 게 계산에 빠져 있었어요. 다시 가기도 너무 귀찮고 그냥 선물이라고 치자, 하긴 그 마트에서 그동안 내가 팔아준게 얼마냐 요정도 보너스 하나 받아도 되지, 하는 순간 이글이글 남편의 분노. 우리가 거지냐, 고고하던 내 와이프 어디 갔냐고, 당장 가서 돌려주든지 돈을 내고 오라고, 그깟 라면 끓이는 냄비하나에 양심을 팔아먹다니, 정말 울것 같더라고요. 여태껏 살면서 냄비 하나 사준적 없는 인간이. 저도 눈물을 흘리면서 마트에 가서 냄비 걍 돌려주고 왔었죠.
근데 한 십년쯤 지났나요. 그간 남편은 명퇴 당하고 제가 외벌이로 벌고 남편은 가사일을 더 돕게 되고 빠듯한데 애 키우면서 나름 산전수전 겪었네요. 엊그제 월급 들어온 김에 20년도 더 된 프라이팬 이제 진짜 버리고 새거 하나 산다고 결심하고 갔다가 두 개를 집어 들게 되었어요. 큰 거 살까 작은 거 살까하다 둘다 너무 낡았는데, 그래 지르자. 근데 보니까 작은 것만 가격표가 붙었고 큰건 안 붙었어요. 점원이 둘이 한 세트라서 그런 거래요. 그럴리가 없는데, 나름 비싼 메이커인데 두 개 2만원? 말이 안 된다고 다시 물어봐도 세트가 맞다고. 그래서 둘다 집에 갖고 왔는데 인터넷에 찾아보니 역시, 두 개 6만원은 줘야 했던 거더라고요. 어휴 또 가야되나, 더운데, 그랬더니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이, 우리 그냥 쓰자, 왠떡이야! 그러면서 활짝 웃네요.
여보, 10년간 무슨 일이 있었나요. 조선시대 선비 양반 샌님 아니면 구한말 지식인같던 남편이 어쩌다 얻어가진 프라이팬 하나에 그렇게 기뻐하다니. 지금 이 글 쓰면서도 그 표정이 생각나 눈물이 나요. 어디가서 얘기하기도 뭐해서 일기같이 올려봅니다만, 자본주의에 팔린 건 나 하나로 족한데 진심 지못미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