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어느날 회사를 은퇴한 친오빠가 이제 오빠는 차를 쓸 일이 없다며 오빠의 차를
가져가라고 했다.
오빠 차라고 하면 2년전 선생님을 만나러 갈 때 성공하지도 못한 주제에
너무 없어보일 것을 염려한 내가 하루만 빌려서 타고 가고 싶었던 바로 그 차였다.
그런데 뜬금 남편이 받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마티즈를 앞으로 십년은 더 타겠다는 말을
노래처럼 하더니 갑자기 나에게 외제차를 사 주려고 하고 있었다며 더이상 중고차는
타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나에게 벤츠를 사 주겠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무슨 벤츠를. 그러니까 언제 벤츠를. 무슨 돈으로 벤츠를.
둘이서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다시 한번 오빠에게서 연락이 왔다. 차를 가져가라고.
제발 그 마티즈를 이제 버리라며. 오빠가 차를 가져가라고 했다.
오빠의 차는 2010년형 풀옵션의 k7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선생님께서 전화가 와서 오랫만에 다시 한번 모여 식사를 하자는
것이었다. 2년전 오빠차를 빌려서 한번만 타고 갔다 오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는데
어디엔가 신이 있다 나의 소원을 들었던 것일까. 나는 착하게 살아왔던 것일까.
나는 지체할 시간이 없다며 남편에게 당장 오빠 차를 가져오라고 했다.
선생님과 약속한 시간에 그 차를 타고 갈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취하라고 하자 남편은 이전을 하고 세금을 내고 보험을 들고
세차를 하고 차를 지하주차장에 가져왔는데 시험운전을 해 볼 시간도 없이
바로 그 차를 타고 선생님과의 약속 장소로 가게 되었다
남편은 너무 걱정을 하며 당신같이 길눈이 어둡고 운전을 어설프게 하는 사람이 새 차를 타고
이 저녁에 부산에 나간다는게 말이 되냐며. 돌아올 때는 밤이 될텐데. 그냥 옆구리 크게 나간
우리집 소나타를 타고 가라는 것이었다. 그게 지금 무슨 말이야. 우리집 2005년형 소나타는
지금 운전석 옆에 테두리까지 다 떨어져 나가 없어보이는 최절정인데 . 거기다가
이번에는 식당 바로 옆에 주차를 한다고. 나는 k7을 타고 갈 거라고.
선생님과 친구들이 다 볼 거란 말이야.
그 날 나는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겉옷을 입고 스카프를 하고 언제나 외출할 때는 미용실에
들러서 머리를 만지고 나가던 엄마처럼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하고 차에 올랐다.
시동을 걸고 음 침착해 풋브레이크? 이런 건 처음 보는데 아 떨려
그런데 시동을 걸자 햇빛가리개가 촤르르 소리를 내며 자동으로 뒷좌석의 유리를 다 가려버려서
뒤가 하나도 안 보이는데
일단 출발
그래서 길눈이 어둡고 운전을 못하고 순발력이 떨어지며 사실은 겁이 많고 고속도로에
나가면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나는 갑자기 뒷유리를 햇빛가리개가 다 막아버려 하나도 보이지 않는 k7을 타고 어두운 밤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 햇빛가리개가 여간 신경이 쓰이는게 아니어서
차가 신호를 받고 멈출 때마다 도대체 무엇을 만져야 저 가리개가 다시 촤르르 내려갈까
고민하였지만 결국 약속장소에 도착할 때까지 그 촤르르의 버튼을 찾지 못했다.
약속장소는 대형식당이었는데 주차장이 따로 있었다. 나는 주차장에 갔는데 주차장 직원이
차를 받으며 나에게 <사모님>이라고 했다. 마티즈를 15년 타고 소나타를 2년간 타며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이 아니던가. 나는 감격하며 덜덜 떨며(드디어 운전이 끝나 긴장이 풀려)
차의 시동을 껐는데 드디어 그 거슬리던 햇빛가리개가 촤르르 하며 내려갔다.
따뜻한 바람이 부는 겨울밤이었다. 나는 내 삶에 쌓여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어쩌면 별 문제들이 아닐 수 있는 문제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남편은 건강하고 열심히 일하고
아이는 잘 자라고 있었다. 불평을 하면 안되는지 모른다. 그러나 사는 일은 왜 이렇게 고단하지
하고 나는 밤하늘을 보면서 생각했다. 시어머니와 시집식구들에 대한 생각을 했고
그 모든 부당함이나 불평등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나 하나만 참으면 되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했다. 가슴에 올려진 돌덩어리 같은 무거움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문을 열고 아이처럼 선생님과 친구들을 향해 걸어갔다.
마치 열두살인 것 처럼.
얘들아. 선생님. 나는 식당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마티즈를 떠나보내며2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