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른살에 첫 차를 가졌다. 오렌지색 마티즈였다.
집집마다 다니며 수업하는 일이었는데 비가 오는 날 짐을 든 채 비를 쫄딱 맞고 집에 왔더니
엄마가 600만원을 주고 중고 마티즈를 사 주셨다.
그 때 친구들 중 차가 있는 건 나뿐이어서 모임에 가면 친구들을 태우고 운전하는게 무서워
벌벌 떨면서 부산시내를 다녔다. 작고 예쁜 마티즈는 나의 좋은 친구였다. 나는 그 차에
좋아하는 테이프를 잔뜩 넣고 다니며 일을 마치고 나면 혼자 차에 앉아 김광석의 노래같은 것을
들었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거나 날이 좋거나 좋지 않아도 차가 생기고 나서는 늘 좋았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았다. 엄마가 많이 아프고 나서부터는 주말에는 엄마를 태우고 바람을
쐬러 다녔다. 나이가 들고 약해진 엄마는 어느새 나에게 의지했다. 나는 엄마를 지켜줄 수 있어서
좋았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는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고 그 다음부터는 아이를 태우고 다녔다
마티즈는 여전히 좋은 친구였지만 어느 비오는 날 마티즈를 타고 나갔는데 마티즈는 도로에서
어마어마한 소리를 내더니 멈춰버렸다. 자동차회사에 다니는 남편에게 말하니 남편은
괜찮다며 마티즈를 수리해주었는데 그 이후로 마티즈는 비가 오기만 하면 길거리에서
그 부릉부릉하는 소리를 내며 멈춰 서버렸다.
나는 무서워서 더이상 마티즈를 탈 수가
없었다. 마티즈의 나이가 열다섯살이 넘어 있었다
마티즈가 길에서 서너번 서고 난 이후로는 무서워서 마티즈를 못 타겠다고 했다니 남편이 자신의
12년된 소나타를 나에게 주고 자신이 마티즈를 타고 다녔다. 이래도 똥차고 저래도 똥차였지만 그래도 소나타 쪽이 좀 나았다.
아침에 같은 승강기를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오면 모두다 중형차나 외제차를 타고 출근하는데
우리 부부는 낡은 대로 낡은 마티즈와 소나타를 타고 출근했다. 남편은 그런 걸 창피해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때 우리 부부는 막 자영업자가 된 상황이어서 뭐든지 아껴야 했다.
남편은 이 마티즈를 앞으로 십년도 더 탈 수 있다고 했는데 나는 속으로 나보고 타라고 안하니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마티즈는 정말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걸까. 하고 나는 가끔 생각했다
평생 마티즈만 타는 운명이라니. 탄식했다
남편이 몰고 다닐 때도 마티즈는 길에서 몇번이고 섰다. 남편은 괜찮다고 했다.
마티즈 고쳐 쓰는게 더 돈 드는게 아니냐고 하면 아니라고 했다.
나는 남편의 12년된 소나타를 타고 다녔는데 놀랍게도 도로에 나가면 소나타는 그렇게
추월당하지 않았다. 나는 지난 15년간 내가 도로에서 수도 없이 추월당했던 것을 기억했다.
비가 와도 소나타는 길에서 서지 않았기 때문에 좋았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아이가
우리집도 이제 정말 차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지만 남편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정말 아끼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중 나는 평생 보고 싶었던 은사님과 연락이 되어 그 때 동창들과 함께 선생님을
36년만에 뵙게 되었다. 아. 36년만에 선생님을 만나러 가는데 성공하지 못한 건 둘째치고라도
2005년형 소나타라니. 라고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크게 성공하지 못한 것도 죄송한데
이렇게 없어 보이는 차를 타고 나타나야 하다니 선생님보기에 너무 부끄러워.
오빠한테 차를 하루만 빌려달라고 할까. 성공한 제자처럼 보이고 싶어. 라고 남편에게
말했는데 남편은 조용히 하고 어서 가소. 라며 내 말에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날 저녁 크게 성공하지 못한 제자는 2005년형 옆구리 크게 긁힌 소나타를 타고 36년만에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다행히 주차장과 약속장소는 떨어져 있어서 크게 성공하지 못한 제자는
볼품없는 차를 보이지 않고 무사히 선생님을 만나고 돌아왔다. 평생 그리웠던 선생님은
여전히 좋은 분이셨다. 행복한 저녁이었다. 제각각 조금씩 상처를 가진 채 나이든 친구들을
보는 일도 좋았다. 별이 아름답게 빛나는 밤이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마티즈를 떠나보내며 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