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시트콤찍은 이삿날

.... 조회수 : 1,559
작성일 : 2024-07-10 14:19:38

지난 주말 아파트 단지에 이사 차가 들어온 걸 보니 몇 년전 제가 이사한 날 에피소드가 생각나 적어봅니다. 묵은 짐들은 다 버리고 옷가지와 책, 그릇 정도만 있는 단촐한 이사라 사람도 많이 부르지 않았고, 일하시는 분들도 무난해서 이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어요. 문제는 짐이 거의 다빠지고 집주인 할머니와 부동산 아줌마가 마지막 점검을 하러 들렀을 때부터 시작되었어요.

그 집에는 입주 초기부터, 그러니까 대략 15년 정도된 오래된 블라인드가 곳곳에 있었고, 집주인이 한 거라 당연히 그대로 두고 나가려 했는데,  집주인 할머니도 아닌 부동산 아줌마가 저보고 블라인드며 커튼봉이며 다 철거를 해달라는 거에요.  제것이 아니고 원래 여기 있던 거다 했더니, 그건 아는데 사람 쓰는 김에 저것도 같이 시키라는 거에요. 이미 이사센터 아저씨들은 아래로 짐을 다 내려가 있고 남은 건 뒷정리 뿐이었는데, 제 것도 아닌 일 때문에 다시 불러들여 일 시키는 건 말이 안된다 싶어 거절했어요. 그건 알아서 하시라고. 그랬더니 아줌마가 그거 하나를 못해주냐는 식으로 따지고 드는 거에요. 거절과 우기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이번엔 집주인 할머니가 비데 문제를 들고 따지기 시작해요. 원래 설치되어 있던 비데는 누렇고 오래되 더러워져 제 돈으로 신형 비데를 사서 2-3년 사용하다 그건 두고 가려고 그대로 뒀는데, 할머니가 그걸 예전 걸로 바꿔달라고 하는 겁니다.

남편이 그거 넘 낡은거고 이게 몇 년 안쓴 거라 더 나을 거라고 해도 할머니가 꼭 예전 거로 돌려놓고 가래요. 다행히도 혹시 몰라 버리지 않고 창고에 보관해 둔 썩어가는 비데를 다시 설치해드렸는데, 이 상황을 다 지켜보고 있던 뒷정리 하던 직원 아주머니가 한 말씀을 하세요.

"할머니, 거 적당히 하이소."

"당신 뭐꼬?"

아주머니가 던진 그 한 마디를 시작으로 제 눈 앞에서는 할머니와 직원 아주머니가 엉겨붙은 육탄전이 펼쳐지고 맙니다. 남편과 부동산 아줌마가 뜯어 말리는 장면이 슬로우 비디오로 연출되면서, 이거 꿈 아니고 실화야?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ㅎㅎㅎ 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그만 하시라구요!!!!" 라고 고함을 쳤고,  마치 시트콤에서 보는 것처럼 둘이 놀라 저를 쳐다보며 소동은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제가 더욱 놀랐던 건 다 정리하고 마지막 부동산에 모여 계약을 마무리 지을 때 주인 할머니와 부동산 아줌마의 너무도 평온한 태도였습니다. 그 난리가 있었는데도 언제 그랬냐는듯 차분한 목소리로 저한테 차 마시고 가라고 (심장이 아직도 벌렁벌렁한데요?) 심지어는 가서 잘 살라고 (네? 진심이세요?) 하는 덕담까지 해주는데, 이거 몰카야? 라는 생각마져 들더군요. 

안 그래도 피곤하고 힘든 이삿날 우당탕 시트콤을 찍고 났더니 그날은 무슨 정신으로 이사를 마쳤는지 모르겠더라구요. 

 

 

 

IP : 58.226.xxx.130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24.7.10 2:32 PM (117.111.xxx.250) - 삭제된댓글

    시트콤이 아니라 봉준호 영화의 한 장면 같네요.ㅋㅋㅋ
    저도 몇 번 남의 집 살이하다가 이사를 다녔는데
    다행히 꼬장 피우는 주인은 없었어요.
    근데도 이사하는 당일까지 보증금은 받을 수 있을까
    콩닥대며 비위 맞추려고 에휴…

  • 2.
    '24.7.10 3:04 PM (211.109.xxx.17)

    ㅎㅎㅎㅎ 진짜 이건 영화인데요.
    너무 웃겨요. 그 난리를 피워놓고
    잘 살라고 덕담이라뉘~

  • 3. eHD
    '24.7.10 4:07 PM (211.234.xxx.253)

    ㅎㅎㅎ 이거 몰카야?
    빵터졌어요

  • 4. 김영하의 이사
    '24.7.10 4:17 PM (210.99.xxx.89)

    김영하 작가의 단편소설 중에 이사 라고 있어요. 여유 시간 되면 너튜부 검색하세요. 책 읽어주는 너튜버가 아주 재미나게 전해줍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614982 성남(올드타운, 분당, 판교) 중식맛집 추천해주세요 14 .. 13:03:16 818
1614981 미레나 후 생리 계속하시는 분 있으세요? 8 ㅠㅠ 13:01:14 590
1614980 뿌빳퐁커리로 점심 먹었어요 5 오호 12:59:27 1,130
1614979 청문회 보고 최목사 욕하는 2찍들 8 ㅇㅇ 12:58:56 1,021
1614978 17년전한 파란 눈썹문신 제거, 병원에서 해야하나요? 5 눈썹 빠지지.. 12:49:13 1,192
1614977 옥상집 지붕집 뭐가 더 덥나요? 3 ........ 12:49:02 1,018
1614976 시청역 역주행사고, 액셀밟은 결정적 증거 나왔네요 33 ㅇㅇ 12:47:08 5,291
1614975 식탁용 의자.. 회전의자 살까요? 말까요? 10 해피해피 12:40:17 735
1614974 뒷통수 납작하신 분들 뒷통수 머리카락 솎아내시나요?(미용실) 3 힘들다 12:37:10 1,109
1614973 3억짜리 집사면 세금 등 수수료는??? 4 부린이 12:36:55 916
1614972 반포가폭등하니까 9 …. 12:34:06 3,251
1614971 26도로 한달 내내 에어컨 틀어놓으니 17 어제 12:32:47 6,137
1614970 쯔양, "전남친 가족 명의로 탈세·불법수술" .. 19 ㅇㅇ 12:17:45 5,622
1614969 자연방목 유정란 소비기한이 6.19.까지인데 3 ㅠㅠ 12:16:54 672
1614968 고구마순김치 삶아야하나요? 6 .. 12:11:55 1,262
1614967 같이 돈모으고 적립받아요 7 케이뱅크 12:08:59 1,068
1614966 발리 숙소추천좀 해주세요 2 ㅇㅇ 12:08:09 521
1614965 '낡은 부동산 공화국', 그들만의 '위험한 연착륙' 4 ... 12:04:52 1,097
1614964 다들 생활비 250이상은 쓰죠? 22 ... 12:00:35 5,188
1614963 맞고 사는 여자들 많은 가봐요. 15 음.. 12:00:15 4,990
1614962 남편 폭염 운동 또 시작됐어요 14 12:00:08 4,395
1614961 도움 안되는데 자꾸 끼어드는 사람 어찌하나요 4 ㅇㅇ 11:58:41 1,169
1614960 82쿡은 연령대가높은거같아요 62 ... 11:56:12 3,001
1614959 연예인들 기부 하는거요.... 32 ... 11:52:33 3,520
1614958 일자목으로 너무 고통스러워요 8 질문 11:50:12 1,6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