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시트콤찍은 이삿날

.... 조회수 : 1,576
작성일 : 2024-07-10 14:19:38

지난 주말 아파트 단지에 이사 차가 들어온 걸 보니 몇 년전 제가 이사한 날 에피소드가 생각나 적어봅니다. 묵은 짐들은 다 버리고 옷가지와 책, 그릇 정도만 있는 단촐한 이사라 사람도 많이 부르지 않았고, 일하시는 분들도 무난해서 이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어요. 문제는 짐이 거의 다빠지고 집주인 할머니와 부동산 아줌마가 마지막 점검을 하러 들렀을 때부터 시작되었어요.

그 집에는 입주 초기부터, 그러니까 대략 15년 정도된 오래된 블라인드가 곳곳에 있었고, 집주인이 한 거라 당연히 그대로 두고 나가려 했는데,  집주인 할머니도 아닌 부동산 아줌마가 저보고 블라인드며 커튼봉이며 다 철거를 해달라는 거에요.  제것이 아니고 원래 여기 있던 거다 했더니, 그건 아는데 사람 쓰는 김에 저것도 같이 시키라는 거에요. 이미 이사센터 아저씨들은 아래로 짐을 다 내려가 있고 남은 건 뒷정리 뿐이었는데, 제 것도 아닌 일 때문에 다시 불러들여 일 시키는 건 말이 안된다 싶어 거절했어요. 그건 알아서 하시라고. 그랬더니 아줌마가 그거 하나를 못해주냐는 식으로 따지고 드는 거에요. 거절과 우기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이번엔 집주인 할머니가 비데 문제를 들고 따지기 시작해요. 원래 설치되어 있던 비데는 누렇고 오래되 더러워져 제 돈으로 신형 비데를 사서 2-3년 사용하다 그건 두고 가려고 그대로 뒀는데, 할머니가 그걸 예전 걸로 바꿔달라고 하는 겁니다.

남편이 그거 넘 낡은거고 이게 몇 년 안쓴 거라 더 나을 거라고 해도 할머니가 꼭 예전 거로 돌려놓고 가래요. 다행히도 혹시 몰라 버리지 않고 창고에 보관해 둔 썩어가는 비데를 다시 설치해드렸는데, 이 상황을 다 지켜보고 있던 뒷정리 하던 직원 아주머니가 한 말씀을 하세요.

"할머니, 거 적당히 하이소."

"당신 뭐꼬?"

아주머니가 던진 그 한 마디를 시작으로 제 눈 앞에서는 할머니와 직원 아주머니가 엉겨붙은 육탄전이 펼쳐지고 맙니다. 남편과 부동산 아줌마가 뜯어 말리는 장면이 슬로우 비디오로 연출되면서, 이거 꿈 아니고 실화야?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ㅎㅎㅎ 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그만 하시라구요!!!!" 라고 고함을 쳤고,  마치 시트콤에서 보는 것처럼 둘이 놀라 저를 쳐다보며 소동은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제가 더욱 놀랐던 건 다 정리하고 마지막 부동산에 모여 계약을 마무리 지을 때 주인 할머니와 부동산 아줌마의 너무도 평온한 태도였습니다. 그 난리가 있었는데도 언제 그랬냐는듯 차분한 목소리로 저한테 차 마시고 가라고 (심장이 아직도 벌렁벌렁한데요?) 심지어는 가서 잘 살라고 (네? 진심이세요?) 하는 덕담까지 해주는데, 이거 몰카야? 라는 생각마져 들더군요. 

안 그래도 피곤하고 힘든 이삿날 우당탕 시트콤을 찍고 났더니 그날은 무슨 정신으로 이사를 마쳤는지 모르겠더라구요. 

 

 

 

IP : 58.226.xxx.130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24.7.10 2:32 PM (117.111.xxx.250) - 삭제된댓글

    시트콤이 아니라 봉준호 영화의 한 장면 같네요.ㅋㅋㅋ
    저도 몇 번 남의 집 살이하다가 이사를 다녔는데
    다행히 꼬장 피우는 주인은 없었어요.
    근데도 이사하는 당일까지 보증금은 받을 수 있을까
    콩닥대며 비위 맞추려고 에휴…

  • 2.
    '24.7.10 3:04 PM (211.109.xxx.17)

    ㅎㅎㅎㅎ 진짜 이건 영화인데요.
    너무 웃겨요. 그 난리를 피워놓고
    잘 살라고 덕담이라뉘~

  • 3. eHD
    '24.7.10 4:07 PM (211.234.xxx.253)

    ㅎㅎㅎ 이거 몰카야?
    빵터졌어요

  • 4. 김영하의 이사
    '24.7.10 4:17 PM (210.99.xxx.89)

    김영하 작가의 단편소설 중에 이사 라고 있어요. 여유 시간 되면 너튜부 검색하세요. 책 읽어주는 너튜버가 아주 재미나게 전해줍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616404 레벤호프 쓰시는분 어떤 요리에 쓰시나요 인기있는 이유가 있는지요.. ..... 2024/07/31 334
1616403 두 남자랑 사니까 공주대접받네요 23 2024/07/31 6,039
1616402 리츠 레몬맛이 제일 맛있는데 6 ㅇㅇ 2024/07/31 1,643
1616401 갑상선 세침하다 멍이 생겼는데 시티 찍어도 될까요 3 .. 2024/07/31 1,046
1616400 본인 스스로 야무지다고 하는 말 왜이리 거슬리죠 12 00 2024/07/31 2,296
1616399 동남아는 이런날씨가 늘 계속되나요? 25 어찌 견디는.. 2024/07/31 4,985
1616398 달러 환율 어떨까요? 8 victor.. 2024/07/31 2,182
1616397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 면회하고 왔는데요 13 Oo 2024/07/31 5,113
1616396 차 주말에만 타시는 분들...배터리방전..? 15 이야 2024/07/31 2,378
1616395 당근 알바 면접 볼 때요~ echoyo.. 2024/07/31 598
1616394 여중생 가다실4가 무료접종 해야할까요? 16 아이맘 2024/07/31 1,671
1616393 오래전에 빌려준 돈 300...어쩌죠 8 2024/07/31 3,894
1616392 아이들과 갈수있는 여행지 추천 부탁드립니다 13 2024/07/31 1,179
1616391 와 쪄죽겠네요 요리 할 엄두가 안나요 15 ..... 2024/07/31 4,161
1616390 티몬, 위메프 사태에 왜 자꾸 세금 투입 타령인지 9 아놔 2024/07/31 1,186
1616389 저도 돈좀 받으면서 댓글좀 쓰고 싶네요 ㅠ 1 .... 2024/07/31 699
1616388 증명사진 찍고와서 어이가 없어요. 14 oo 2024/07/31 4,049
1616387 카타르항공 합격→탈락 번복에, 한국 청년 69명 날벼락 5 ㅇㅁ 2024/07/31 4,707
1616386 가위에 생긴 녹 없애는 방법 있을까요? 17 츄파츕스 2024/07/31 2,071
1616385 여름에 휴가가는게 너무 싫다는 생각 10 ㅇㅇ 2024/07/31 2,812
1616384 대북 전단 비난하는 분들 31 .... 2024/07/31 1,427
1616383 가수 김종민이 사귀는 여자가 32 ........ 2024/07/31 34,395
1616382 0부인 박사논문 관상으로 궁합 알아본다 1 ㅋㄴ 2024/07/31 480
1616381 상가 양도세 질문 하나만 여쭈어 보아요. 2 ㅇㅇ 2024/07/31 375
1616380 견인성 탈모도 조심하라는데 3 2024/07/31 1,5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