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 번 언급한 일이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우리 블록에 유일한 아시안이다.
4년 전에 몇 집 떨어진 곳으로 이사와서 1년 정도를 살았던 브라질리언 가족을 제외하고는 이 집에 이사온 후로는 온통 하얀 사람들 속에서 살아온 셈이다.
집 근처에 학교 규모는 작지만, 운동장이 두 개가 있는 초등학교가 있다. 이 운동장은 새벽부터 몹시 바쁘다. 아이들 등교 전에는 사람들이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고, 수업 시간이 끝나면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라크로스를 연습하고, 미취학 아이들은 부모님과 함께 놀이터에서 떠들석하게 논다. 아이들이 노는 동안에는 견주들은 목줄을 하고 개를 데리고 나오고, 5시가 넘어서 아이들이 모두 집에 가면 개들이 신나게 나와서 뛰어 논다.
겨울에도 이 운동장은 쉴 틈이 없다. 타운에서 운동장 한 쪽 구석에 미니 아이스하키 링크를 만들어 아이들이 그 작은 몸으로 감당할까 싶은 보호장비를 갖추고 나와서 또 한참을 놀다가 간다.
이 운동장이 유일하게 한가한 시간은 여름의 한낮 뿐이다.
몇 개월 전부터 이 운동장이 조금 한가해지는 6시 이후에 브라질리언 아이들이 축구를 하러 오기 시작했다. 차를 타고 15분 정도 가면 브라질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블록이 있다고 들었는데, 거기에서 온 아이들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곳에서 하얀 색이 아닌 다른 피부색을 지닌 사람을 보면 몹시 반갑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고 나서는 이 아이들은 12시부터 3시 때로는 4시까지 와서 축구를 한다. 브라질이 이래서 축구를 잘 하는구나.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개를 데리고 나가서 아래쪽 운동장에서 보면 아이들 그 누구도 물병을 들고 있지 않다. 이미 다 마셔 버렸나. 더운 여름에 이렇게 뛰고, 물은 부족한 것 같고 아이들이 탈수 증상을 보이지 않을까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말했다.
나 애들 물 가져다 줄래.
괜찮아. 남자 아이들이야.
남자는 목 안말라? 신경 쓰여. 물 가져다 줄래.
그래.. 그럼 같이 가.
아예 아이스박스에 넣어 가져가서 편하게 먹으라고 할까. 우리 집 바로 여기라고 알려주고, 집에 갈 때 두고 가라고 하면 되잖아.
자기 물병도 귀찮아서 안가져오는 게 남자 아이들이야. 아이스박스를 우리 집에 가져올 리가 없어.오늘은 물 가져다 주고, 우리 집 앞에 아이스박스에 물 넣어 둘테니 애들에게 물 필요하면 가지고 가라고 하자.
아이들은 생각보다 더 좋아하며 물병을 받았다.
아이들에게 언제든 편하게 물을 가져가라고 하고, 다만 쓰레기는 꼭 쓰레기통에 넣으라고 부탁했다. 아이들이 물병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물을 주는 나에게 분명 뭐라고 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었다.
나는 개와 운동장에서 마지막 산책을 할 때, 보이는 쓰레기를 다 치우는데, 별 다른 이유는 없이 다만 내 눈에 거슬리는 쓰레기를 그냥 두기 싫어서였다. 지난 며칠 간 마지막 산책 할 때, 쓰레기가 눈에 띄게 줄어 들었다. 혹시나 이 아이들이? 궁금한 마음에 오늘 물을 가져가는 아이에게 물었다. 너희들 혹시 물병말고 다른 쓰레기도 치우니?
아이가 네 그래요. 하면서 쑥스러워 하면서도 자신들이 한 일이 꽤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
다른 표현 필요없이 정말 예뻤다.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 팝시클 한 상자를 꺼내 주면서 오늘도 이 말을 잊지 않았다. 쓰레기통. 그리고 정말 고마워. 아이들이 주는 감동은 너무나 아름답고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