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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The sun also rises. 1926. 어니스트 헤밍웨이

... 조회수 : 1,030
작성일 : 2024-06-24 11:44:35

이 책을 썼을 때 헤밍웨이는 젊었고,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어렸다. 

 

헤밍웨이의 문장을 좋아하고, 그의 대다수의 책들도 좋아해서 나름의 기대를 갖고 읽어냈다. 좋은 구절은 어김없이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좋아할 수는 없었다. 다 읽은 후 나는 그저 이렇게 내뱉었던 것 같다. 도대체 마음에 드는 인물이 하나도 없군. 

 

내 영어가 별로여서 그런가 하고 번역본이 있나 찾아보기도 했지만, 그 당시에 이 책은 국내에서 번역되지 않았다. 

 

몇 년 후 미국으로 유학을 와서 그 때는 친구였던 남편과 학교 앞 펍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으러 만났는데, 이 녀석이 먼저 와서 바에서 이 책을 읽고 있었다. 이런 구절이 좋았어 하며 몇 마디 나누다가 결국 말을 하고 말았다. 사실은 나 이책 별로야. 의미없고 방탕해.

 

녀석이 한참을 웃었다. 20대에 방탕하다는 말을 쓰는 사람은 처음 봤어. 너는 모든 것에 의미가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니?

 

이 자와 사랑을 하고, 연애을 하고 결혼을 해서 같이 살고 있다. 

남편은 지금도 여름이 느껴지는 날들이 다가오면 이 책을 읽는다. 가장 좋아하는 책은 아니라고 했다. 다만 여름이 오면 이 책을 꺼내 드는 것이 재미있다고 한다. 1970년대에 발행된 판본은 이제는 다 떨어져서 낱 장 낱장 다시 붙여서 보는 것마저도 불가능해져서, 그는 결국 새 책을 주문해야 했다. 

 

6년 전에 나도 이 책을 다시 읽었다. 나이 들어 가면서 너그러진 부분도 있고, 가벼워진 부분이 크고, 그래서 모두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 모든 인물들이 짠하기도, 대견하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여전히 멍청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올 해는 내가 먼저 이 책을 꺼내 들어 읽었다. 

 

'나는 대가를 모두 지불했다고 생각했다. 여자가 지불하고 지불하고 또 지불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말이다. 응보라든지 벌이라든지 하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저 가치의 교환에 지나지 않았다. 어떤 것을 포기하고 다른 어떤 것을 손에 넣는 것이다. 또는 어떤 것을 얻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모든 것을 위해 어떤 방법으로든 그 대가를 치렀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충분히 얻기 위해 나름대로 값을 치렀고, 그래서 나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것들에 관해서 배운다든지, 경험을 한다든지, 위험을 무릅쓴다든지 아니면 돈을 지불함으로써 값을 치렀다. 삶을 즐긴다는 것은 지불한 값어치만큼 얻어 내는 것을 배우는 것이고, 그것을 얻었을 때, 얻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

 

이 말을 진정 받아들이기에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이 책에 대해 내가 치룬 대가는 시간이다. 

 

남편이 가지고 있는 1970대 발행된 이 책의 표지를 다른 시대의 표지보다 좋아한다. 

부부 일러스트들인데, 같이 보셨으면 해서 링크를 첨부한다. 

첫 링크는이 부부의 작업물인데, 요리책이 특히 귀엽다. 중간 정도에 이 책의 표지가 나온다. 

https://fishinkblog.com/2021/06/21/ruth-and-james-mccrea-childrens-illustrator...

두 번째 링크는 이 부부가 헤밍웨이 책 표지 한 것만 모아 놓은 것 

https://graphicarts.princeton.edu/2018/05/23/ruth-and-james-mccrea/

 

 

IP : 108.20.xxx.186
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ㅇㅇㅇ
    '24.6.24 11:56 AM (118.235.xxx.7)

    책표지 공유 감사합니다
    인상적이네요

  • 2. ...
    '24.6.24 12:02 PM (108.20.xxx.186)

    책표지와 더불어 이 분들의 일러스트 작품들이 꽤 오래 전 것인데도, 생동감 있고 예뻐요. 그래서 공유하고 싶었어요. 저도 감사합니다.

  • 3. 책자체는
    '24.6.24 12:03 PM (223.62.xxx.59)

    좀 유치하죠
    헤밍웨이 팬이지만 치기어린 젊은 나이에 쓴 글이니 감안하고 읽어야죠.

  • 4. ...
    '24.6.24 12:13 PM (108.20.xxx.186) - 삭제된댓글

    저도 처음에 비슷한 생각이 들어서 별로였는데, 거의 20년 가까이 만에 이 책을 다시 읽고는 제가 어릴 때는 오히려 이해할 수 없었던 젊음의 시간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그 후로는 좋아하게 되었구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스에서 주인공이 그토록 동경하던 시기와 인물들이 헤밍웨이와 그 친구들인데, 헤밍웨이는 나이가 들면서 이 시절을 부끄럽게 생각했다는 것도 재미있어요.

    여름이면 이 책을 꺼내는 제 남편은 1차 대전 후 키득거림과 냉소를 같이 할 수 밖에 없던 젊음의 기록이라 말하더군요.

  • 5. ...
    '24.6.24 12:18 PM (108.20.xxx.186)

    저도 처음에 비슷한 생각이 들어서 별로였는데, 거의 20년 가까이 만에 이 책을 다시 읽고는 제가 어릴 때는 오히려 이해할 수 없었던 젊음의 시간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그 후로는 좋아하게 되었구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스에서 주인공이 그토록 동경하던 시기와 인물들이 헤밍웨이와 그 친구들인데, 헤밍웨이는 나이가 들면서 이 시절을 부끄럽게 생각했다는 것도 재미있어요.

    여름이면 이 책을 꺼내는 제 남편은 1차 대전 후 키득거림과 냉소를 같이 할 수 밖에 없던 젊음의 기록이라 말하더군요.

    의견 나눠서 감사해요. 즐거운 점심 시간 보내세요.

  • 6. ...
    '24.6.24 12:24 PM (108.20.xxx.186)

    의견 나눠 주셔서 감사해요. 라고 쓰려고 했는데, 중간에 '주셔'는 어디로..

    223님 이번엔 제대로 쓸께요. 의견 나눠 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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