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예술영화로는 심상치않게 제법 사람을 많이 모은다는 작품이죠
지난 토요일, 친구랑 봤습니다
보통은 혼자 보는데, 오랫만에 그 친구랑 만나자는 구실로 영화를 들이댔죠
더구나 이런 류의 영화는 혼자봐야하는데 그나마 그 친구는 이런 류의 영화를 같이 볼 수 있는 친구여서리...
이런 류의 영화라 함은 칸 영화제 수상작,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수상작 같은 수상 타이틀 붙은 영화를 말합니다 ㅎㅎㅎ
그래서 이 친구랑 '슬픔의 삼각형'도 같이 봤습죠
저나 친구나 수상 타이틀 말고는 사전 정보가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그냥 들이대고 봤습니다
기본 스토리가 어떤지, 어느 나라 작품인지, 감독이나 배우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냥...
그래서 이런 스토리인 줄 모르고 봐서 솔직히 좀 충격적이기도 하고 또 다른 면으로는 오염되지 않은 아주 날것스런 감상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다 보고 나오는데, 친구가 영화보는 내내 너무너무 무서웠다고 합니다
제 감상은 너무 평화롭고 아름답고 잔잔한 나머지 지겨워서 1초씩 수시로 졸면서도 영화가 어찌나 살벌한지, 도저히 잘 수가 없는 영화였다....
이 영화는 칸에서 그랑프리를 받기도 했지만, 영국과 미국의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외국어 영화상을 휩쓸었다고 합니다만, 특이한 점은 칸에서 음향상, 아카데미에서도 음향상을 받은 영화로, 이 영화에서는 음향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냥 중요한 것이 아니라 화면, 배우의 연기가 아니라, 소리가 핵심인 영화라고 생각해야할 정도로 가장 메인인 영화입니다
제 친구가 느낀 무서움의 근본이 아름다운 시각적 화면 뒤로 깔리는 사람들의 소리, 기계음, 불협화음의 불안한 음악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보이는 것과 달리 소리로 자극하는 상상력은 시각적 자극과 서사적 자극과는 차원이 다른,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아우슈비츠가 어땠는지 영화는 물론, 너무나 많은 자료와 역사로 알고 있어서, 어쩌면 이젠 너무나 클리셰로 치부할 수도 있는 끔찍함이라, 감동이나 충격이 둔감해질대로 둔감해져 있는 소재일 수 있는데, 이 영화는 그런 둔감함을 아주 조곤조곤 깨부셔버립니다
아이히만의 전범 재판을 지켜본 한나 아렌트가 그의 책에서 '악의 평범성'에 대해 썼다고 하잖아요
(저 그 책 사다 놓고 아직 못 읽었습니다)
이 영화는 그냥 '악의 평범성' 그 자체입니다
그게 고작 나치 독일이 저지른 죄악이기만 할까요?
소재는 아우슈비치이지만, 극장문을 나서는 순간, 내안에 나도 모르게 잠재하고 있을 '악의 평범성'에 대해서 호되게 두들겨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영화에 아주 독특하게 표현된 아주 실낱같은 인지상정을 확인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 얄팍한 인정, 인류애가 너무나 일상화된 '악의 평범성'을 진압할 수 있을지, 저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기대하기도 어렵지 않나...
혹시나 호기심에 보실 분은 꼭 극장에서 보시길...
앞에 쓴대로 이 영화는 음향이 영화 감상의 50% 이상, 아니 80% 정도의 중요성이 있는 영화라 아무리 집에 극장에 필적하는 음향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는 한, 절대적으로 극장에서 봐야하는 영화입니다
영화가 단지 배우 연기와 연출로 보여주는 것만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기술적 새로움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영화라, 새로운 체험이 될 겁니다
그리고 겁나 졸릴 수 있습니다
저는 수시로 정말 1~2초씩 졸면서도 꿋꿋하게 스토리 빼먹지 않을만큼 열심히 보기 봤습니다
지루해서 졸려 죽겠는데도 살벌해서 도저히 잠들 수 없는 영화입니다
집에서 보면 대략 10분이면 채널 돌아가고 플레이를 종료할 수 밖에 없을, 그래서 끝까지 보기 힘든 영화입니다
그래서 극장 관람을 적극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