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목련나무 피던 집에 살던 소년 2

조회수 : 2,277
작성일 : 2024-06-12 17:57:09

 

 

어릴때 처럼 청아하니 예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그 친구만의 쌀쌀맞은 매력이 있었다

 

외골수적인 면이 있었고 고생하고 자라지 않은 표가 났다.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았고

 

너그러운 면이 없었다. 스무살짜리의 패기와 자기만의 고집이 있었다. 그러면서 나약했다.

 

 

나약하고 어두웠다. 그러면서 매력이 있었다. 어릴 때보다 부드러운 것 같기도 했지만

 

여전히 차갑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나는 가끔 저 애는 다 가졌는데 왜 저렇게 행복해보이지

 

않는 걸까 하고 생각했다.

 

 

다 가졌는데. 이제는 좋은 학교까지. 모두 다 가졌는데 왜 저렇게 행복하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 무렵에 우리는 가끔 전화통화를 했다. 그 때는 핸드폰이 없었다. 늦은 시간에 전화가 걸려오면

 

전화기를 방에 가져와서 통화를 했다.  늦은 시간 가족들이 다 자고 있을 때 아주 오랫동안

 

통화를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그럴 때는 제법 친해진 것 같다가도 만나면

 

또 낯설었다. 

 

 

 

 

친구들은 자주 어울렸다. 형편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몹시 형편이 좋지 않은 친구들도 있었다.

 

그 친구가 가장 좋은 상황이었다. 여전히 모든 걸 다 가지고 있었고 여전히 쌀쌀맞고

 

그리고 멋있었다. 그 친구를 좋아하는 여학생들이 몇 있고 또 그 친구도 누구를 좋아하고 있다고

 

했다. 누굴까.  잘 안 되는 것 같았다.

 

 

 

남자들끼리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그 친구가 내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그 애는 지적이야. 나는 그 말을 전해들었다. 그런 칭찬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더구나 비슷한 나이의 남자에게 그런 칭찬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아름답거나 예쁘지

 

않았으므로 그런 칭찬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도 그 말을 생각했다.

 

 

그 말을 생각하면 자랑스러웠다.

 

 

 

나는 그 칭찬을 오래 기억했다.  그 애는 지적이야. 우울한 날 그 말을 떠올리면 위로가 되곤 했다.

 

 

 

그리고 우리는 뿔뿔히 흩어져 자기의 길을 갔다. 더이상 동창회도 없었고 더 이상 만남도 없었다.

 

 

친구는 휴학을 하고 고시공부를 위해 서울로 갔다. 

 

 

모두 잊었고 잊혀졌고 스무살 후반의 두려운 삶이 시작되었다. 힘든 날들이 지나갔다

 

 

친구의 집은 없어졌고 목련나무도 없어졌다. 그 자리에는 높은 빌딩이 들어왔다.

 

동네가 달라졌다. 동네는 번화가가 되었다. 나도 그 동네를 떠나왔다.

 

 

그 동네에는 더이상 친구도 목련나무도 아무도 살지 않았다.

 

 

 

어린시절은 끝이 났고 스무살도 끝이 났다. 우리는 정말 어른이 되었고 삶은 고단했고

 

 

고비고비 힘든 순간들이 있었다. 

 

 

 

 

다시 동창회였다. 우리는 마흔둘이었다.

 

 

세월이 이렇게 빠르게 흘러갈 거라는 것을 스무살에는

 

몰랐다.

 

 

 

스무살의 경주가 있었다. 봄이었고 4월이었고 아이들은 막 스무살이 되었다.

 

 

남자친구들은 어른들이 입는 양복쟈켓같은 옷을 입었고

 

여자친구들은 핑크색 립스틱을 바르고 핸드백을 들었다.

 

 

다들 어색하고 어수선하고 그리고 푸르고 예뻤다.

 

봄의 경주가 그렇게 아름다운 곳인지 스무살은 처음 알았다.

 

 

종일 경주를 걷고 잔디밭에서 처음 소주를 마셨다. 모두들 돌아가며 노래를 불렀다.

 

 

소주를 마시고 올려다본 하늘이 빙글빙글 돌았다. 스무살이었다.

 

 

 

 

어떤 중년남자가 들어왔다. 나는 그 남자가 내 앞에 다 와도 몰랐다. 지나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중년남자는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중년남자는 아무 말 없이 내 앞에 앉았다.

 

 

 

나는 시간이 지나간 것을 모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갔다. 세월이 우리를 지나 흘러갔다.

 

 

청아한 목소리로 교실 뒤 벽을 바라보며 등대지기를 부르던 소년이 아니었다

 

 

경주에서 얻어탄 짐칸의 트럭에 앉아 빙긋 웃던 스무살이 아니었다

 

 

그 애는 지적이야 하고 어느 술자리에선가 내 이야기를 해 주었다던 그 친구가 아니었다

 

 

예쁘고 차갑고 쌀쌀맞고 왠지 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어린아이는 없었다.

 

 

 

나는 중년남자가 그 친구인 것을 알았다.

 

 

세월이 지나간 자리에 그 친구가 있었다. 친구가 내 앞에 와서 앉았다.

 

 

 

 

3부로

IP : 211.203.xxx.17
9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ㅎㅎ
    '24.6.12 6:00 PM (14.5.xxx.38)

    재밌어요! ㅎㅎ 다음편을 기다리며...

  • 2. 얼음왕자도
    '24.6.12 6:15 PM (121.155.xxx.78) - 삭제된댓글

    중년남자가 되버렸군요.
    미소년과 얼음왕자 다??버리고???
    원글님은 누구랑 결혼을 하신건가요? ㅎㅎㅎㅎㅎ
    궁금해지네요 ㅎㅎㅎㅎ

  • 3. 작가님!
    '24.6.12 6:18 PM (175.114.xxx.59)

    3편도 기대할께요. 오늘 올리시는거죠?

  • 4. ㅇㅇ
    '24.6.12 6:31 PM (58.29.xxx.148)

    미소년 얼음왕자도 마흔이 넘으니 못알아볼 만큼 추레한 중년이
    되었나보죠
    세월이 안타깝네요

  • 5. ㅇㅇ
    '24.6.12 6:37 PM (182.211.xxx.221)

    변한 외모로 환상이 깨졌나요?ㅠㅠ

  • 6. ㄱㄴ
    '24.6.12 6:41 PM (211.112.xxx.130)

    만변하는 세월이 야속하네요..

  • 7. ㅇㅇ
    '24.6.12 7:05 PM (58.29.xxx.148)

    누군가의 한마디에 설레어 잠못자던 기억이 있지요
    그시절에는요

    그애는 지적이야 그말에 행복해하던 원글님 사랑스럽네요

  • 8. 123
    '24.6.12 7:14 PM (120.142.xxx.210)

    우와 문장문장이 너무 좋아요. 순식간에 읽었습니다!!

  • 9. 쓸개코
    '24.6.12 7:46 PM (175.194.xxx.121)

    그 애는 지적이야.
    그 애는 지적이야.
    그 애는 지적이야.

    걔도 아니고 '그애'라니!ㅎ
    평생 맴돌 영화속 명대사 같은 말을 남겨줬네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632518 영혼과 틀의 슬픈 부조화 25 .. 2024/09/22 2,776
1632517 200년 만에 내린 폭우에 김해·창원 피해 잇따라 12 세상에 2024/09/22 2,672
1632516 쥬얼리 좋아하고 많이 해보신 분들 랩다이아로 테니스 팔찌 하는 .. 5 고민 2024/09/22 1,926
1632515 너무 경박한 남편 2 11 지루한간병기.. 2024/09/22 4,467
1632514 헤어 클리닉 다들 하시나요? 15 00 2024/09/22 3,316
1632513 입시, 화작과 언매 둘다 하나요 8 ... 2024/09/22 1,102
1632512 코로나 두통 ㅠ 2 2024/09/22 659
1632511 이런 느낌 뭐죠? 2 ㅇㅇ 2024/09/22 932
1632510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7 2024/09/22 2,096
1632509 오래된 간장게장 1 냉털 2024/09/22 582
1632508 한국 부모들을 뜨끔하게 만든 샘 해밍턴의 말...jpg 34 비슷한생각... 2024/09/22 16,647
1632507 이제 지도상으로 청와대 보임 8 ㅇㅇ 2024/09/22 1,703
1632506 2018년 대학선택과 비교한 재밌는 기사 2 방금 2024/09/22 894
1632505 목동 매수하자니 남편이 싫다네요 28 2024/09/22 6,063
1632504 일찍 출발하는 비행기인데 2터미널 혹은 1터미널 근처 3 오동동 2024/09/22 924
1632503 비립종 글 썼는데요 (feat.쥐젖) 20 ㅇㅇ 2024/09/22 4,742
1632502 일요일 아침부터 버럭 했어요 7 살살 2024/09/22 1,994
1632501 전국노래자랑 대환장ㅎㅎㅎ 4 돌아요 2024/09/22 5,768
1632500 고부갈등으로 이혼하신 분들 얘기 듣고 싶습니다 31 2024/09/22 5,236
1632499 기름보일러 1 fdd 2024/09/22 343
1632498 넷플)할런코벤 작품 추천부탁드려요 2 한가 2024/09/22 552
1632497 백설공주 재미없는 분들도 계신가요 ㅠㅜ 28 ㅇㅇ 2024/09/22 3,678
1632496 배부르면 불쾌한 사람/포만감이 좋은 사람 10 ㅁㄶㄴ 2024/09/22 1,503
1632495 눈두덩이 제모. 3 궁그미 2024/09/22 871
1632494 정치인들 공공기관장들 급여가 너무과한게 5 정치... 2024/09/22 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