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주가 정말 약사인지 현성이 말대로 룸싸롱에 있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해요. 현주 어머니가 약사라고 하니까 그냥 약사라고 합니다. 현성이의 말 이후 정말 약사일까? 약국에서 그냥 일만하는건 아닐까 하고 이야기가 나왔고 엄마가 통화하는건 들었지만 아무도 그걸 확인할 엄두는 못냈어요. 오늘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우리 할아버지 이야기 쓸게요.
우리 할아버지는 막내아들로 태어나서 연상인 마누라가 가지고 온 돈과 생활력으로 팔자가 핀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그 팔자가 핀 게 거저 그렇게 된 건 아니고 할아버지도 승부사 기질이 있었고 잘 살고자 하는 열망이 매우 크신 분이었대요. 마을에서 텔레비전을 제일 먼저 산 집도 우리 집이었고 전화기도 제일 먼저 놨다고 해요. 그런 것들로 위안을 삼으시던 분이었어요.
할아버지는 할머니보다 두살 아래셨는데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한지 모르지만 할아버지가 몇년 생인지 구체적으로 기억하지 못하는 저도 할아버지가 할머니보다 두 살 어리다는건 아주 예전부터 알고 지냈어요. 저희 남편이 결혼하러 인사드리러 왔을 때도 할아버지는 저와 남편의 나이차를 아주 마음에 들어하셨어요. 자고로 남자는 어린 여자를 만나야지 잘 산다고 하실 정도로요.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마음 깊게 사랑하셨던건 아닌거 같아요. 집안의 재산을 충실히 불려주고 아이들을 낳고 며느리로서의 도리를 잘 하는 할머니를 인류애적인 관점에서 좋아하셨던거 같아요. 반면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정말 좋아하셨어요. 제가 보기에도 할머니는 평생 할아버지의 관심을 갈구하며 사셨어요. 쥬단학 아줌마, 아모레 아줌마를 집으로 불러 마사지를 받은것도 다 할아버지에게 예쁨을 받으려 하셨던거 같아요. 할머니는 시골에 사셨어도 늘 손톱끝을 둥글게 다듬으실 정도로 본인을 관리하는 분이셨고 머리는 빠글빠글하게 파마가 되어있었어요.
마당이 있는 집에서 엄마가 이것저것 심고 저도 봉숭아며 채송화며 키울 때 할머니가 집 안에서 절대 수국 키우는거 아니다. 수국이 꽃이 하도 탐스럽고 예뻐서 남자가 수국 꽃을 보면 가슴이 둥당거리고 설레어서 첩을 들이는거야. 그러니 수국같이 그런 탐스럽고 예쁜 꽃은 절대 마당에다 심는거 아니다 라고 말씀하셨었어요. 저는 수국이 참 좋았는데 그 다음부터는 보기만 하고 집에 사놓지는 않게 되더라구요.
네 수국은 할아버지가 들인 소실의 댁호였어요. 이름만큼이나 고왔대요. 진짜 이름이 수국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그 집 마당에 수국이 많아서 그렇게 불렀는지는 모르겠어요. 할아버지보다 아홉살이 어린 수국할매는 혼기를 놓친 화전민의 딸이었다고 해요. 산골에서 산을 태워 농사를 지으며 살던 부모가 불을 잘못놔서 모두 불에 타죽고 수국할매만 살아남았는데 화전으로 처녀 혼자 살기 힘들어 마을로 내려와서 잡일을 했었대요. 얼굴이 희고 예뻐서 동네에서 눈독을 들이는 사람이 여럿 있었대요. 제가 82에서 읽었던 글 중에 얼굴이 예쁜데 보호해줄 가정이 없는 여자는 울타리 없이 핀 꽃이라서 건드리려는 사람도 많고 꺾으려는 사람도 많다는 글을 읽었었는데 수국할매가 그랬던 모양이예요.
화전민으로 살다 읍으로 나와 일을 하던 수국할매는 동네에서 떠돌아다니던 군복입은 거지같은 놈한테 겁탈을 당하고 그 충격으로 자살을 시도했었는데 그 장소가 우시장이었다고 해요. 우시장은 항상 열리는게 아니라 장날에만 열리는 식이었는데 그럼 거간꾼이나 소 주인들이 모여서 쉬고 비오면 비라도 피하게 어설프게 지은 움막이 하나 있었대요. 평소에는 사람이 없이 비어있었는데 수국할매는 거기서 자살을 시도했었나봐요. 그러다 일찍 우시장에 나온 할아버지가 그걸 보고 살려줘서 그 다음엔 할아버지를 따라왔다고 해요. 장터로 내려가는 길 가에 수국이 탐스럽게 핀 초여름이었다는거 같아요. 수국할매가 할아버지를 따라서 집으로 들어왔을 때 그 수국을 꺾어서 들고 왔더래요. 예쁘게 들고 들어온게 아니라 꽃 잎 하나하나를 짓이기며 허드렛일을 시켜주길 서서 기다리고 있었대요.
할머니는 수국할매를 미워하지 않았어요. 수국할매는 본인의 분수를 아는 사람이었다고 해요. 할아버지가 준비해 준 작은 집에서 따로 살았는데 할머니가 가면 마당으로 내려와서 인사를 하고 아랫목을 내주고 설탕을 탄 시원한 물 한그릇을 가져다 주고 큰 절로 다시 인사를 하곤 했대요. 첩을 들이는게 아주 낯선 일이 아니었던지라 할머니도 수국할매를 그냥 집안의 일원으로 보셨던거 같아요.
할머니는 찹쌀, 멥쌀이 들어오면 제일 좋은것들로 골라서 수국할매한테 보냈대요. 거기서 밥을 잘 해서 할아버지 드시게 만들라구요. 고기가 들어와도 수국할매 집으로 보내고 철이 바뀌면 새 옷과 시원한 이불, 따뜻한 이불을 지어서 수국할매 집으로 보냈어요. 겨울이 되면 홍시를 보내고 가을에는 참기름을 짜서 보내고, 여름이 되면 오이소박이를 담가서 보내어 수국할매가 할아버지를 모시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게 만들어주셨다고 해요. 저는 한번도 보지 못했지만 당숙들이 지나가면서 저기가 수국할매 집이다. 느이 할아버지 저깄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주셨었어요. 어린 저는 그게 싫었는지 고개를 새침하게 돌리고 그 쪽으로 눈길도 안줬지만 설날에 할아버지가 하나 더 주는 흰색 봉투 안에 들어있는 용돈을 누가 보내주는지는 눈치껏 알아차렸었어요.
할아버지는 일년의 반은 수국할매 집에서 보내는 것 같았어요. 제가 시골에 가면 할머니가 좋아하셨던게 시골에 제가 오면 할아버지가 수국할매 집에를 안가셨거든요. 그래서 더 저한테 집에 있으라고 하셨었나봐요.
할아버지는 수국할매를 이뻐했지만 큰 일이 있으면 할머니를 찾았어요. 하루는 할아버지가 집에 오셔서 끙끙 앓아누우셨대요. 소 중계 일을 하고 수수료를 받았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잃어버렸다고 정말 몸져 누우셨대요. 집에서 우시장까지의 길을 몇 번이나 왔다갔다 하고 뛰어서도 가보시고 근처 돌도 뒤져보고 나무도 뒤적거리면서 하루종일 그 돈을 찾아 돌아다니셨대요. 정확한 액수는 기억이 안나는데 꽤 큰 돈이었나봐요.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다시 드러누우셨대요. 할머니는 그런 할아버지께 어떻게 생긴 돈이었냐. 번호가 써 있었냐. 몇 번 접었냐. 어떻게 접었냐. 돈이 새 돈이었냐. 낡은 돈이었냐 이런 것들을 띄엄띄엄 물어보셨대요. 그리고 할머니가 그 돈을 찾으셨어요.
엄마 말로는 그 돈을 찾은게 아니라 할머니가 할아버지한테 자세히 물어보시고 그렇게 돈을 접고 만든 다음에 거름밭에 떨궜다가 주워오셨대요. 돈 찾았소! 다행히 거름밭에 붙어서 멀리 안날아갔는데 냄새가 고약해서 빨아야겠소. 근데 꼭 생긴게 영감이 말해준거랑 비슷해. 하며 말씀하셨는데 할아버지가 정말 그 돈 찾았냐며 벌떡 일어서시더래요. 냄새는 좀 나지만 자기가 잃어버린 돈이랑 비슷했고 할아버지는 툭툭 털고 일어나셨대요. 그리고 그 돈을 샘터에 가서 잘 씻어서 주머니에 넣고 고생했다고 하시고는 수국할매 집으로 가버리셨대요.
할머니가 서울에 땅을 사러 가고 집을 팔고 집을 지어서 팔고 또 땅을 사고 할 때도 할머니는 늘 할아버지를 부르셨대요. 할아버지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도장만 찍고 가버리셨지만 할머니는 그렇게라도 할아버지랑 같이 서울로 올라오는 길이 즐거웠고 그렇게 올라왔다가 할아버지가 혼자 낼름 시골로 내려가시면 그게 또 그렇게 서러웠대요. 그래도 시골에 수국할매가 있으니 식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대요. (그 놈의 밥....)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의리가 있고 수국할매도 그런 사람이라 둘 사이에서 자식을 낳지 않은 것만도 고마워 하셨어요.
한번은 할머니가 수국할매한테 집과 돈을 떼어주고 팔자를 고치게 해 주겠다고 마음 먹은 적이 있었대요. 돈을 조금만 주면 데려간다고 하는 사람도 없고 또 돈 떨어지면 다시 돌아올까봐 아주 단단히 한 몫을 쥐어주고 보내려고 했대요. 여기저기 어떤 사람이 좋을까 하고 물색하며 할아버지 몰래 한번씩 그 집에 가서 남자도 보고 오고 하셨대요. 처음엔 빨리 떼놓고 싶던 마음이 나중에는 아유 저 놈은 여자 패게 생겼다. 안된다. 저 집은 시어머니가 너무 드세서 시집살이 시키겠다. 안된다. 거긴 자식이 너무 커서 가져간 돈 다 뺏기고 쫓겨날 것 같아서 안되겠다. 하며 안될 것 같은 집들을 치워버리니 마땅히 갈 곳이 없더래요. 야 저거 떼 놓으려고 시집 보냈다가 다시 돌아오면 더 문제가 될 것 같으니 그냥 우리가 끼고 살아야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더래요. 그때부터 수국할매는 돌아가시는 날까지 마을 구석에 있는 작은 집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사셨어요.
할아버지는 80세까지 정정하게 사시다가 돌아가셨어요. 할머니는 그 전부터 치매로 병원에 입원해 계셨었지요. 늘 말이 없고 조용하던 수국할매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이듬 해에 돌아가셨어요.
수국할매가 돌아가시기 전에 엄마를 불러서 할머니 드리라고 금반지 석돈과 금팔찌 하나를 주더래요. 우리 엄마 손에 금반지를 주면서 꼭 할머니 드리라고 병원에서 돌아오시면 드리려고 했는데 못보고 갈 것 같다고 했대요. 할머니 정신 좀 돌아왔을때 전해드리니 걔가 심성은 착하다. 딱 한마디 하셨대요. 우리 할머니는 그 이후 치매로 5년을 더 사셨어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할머니께 우리 엄마가 말씀을 드렸대요.
어머니, 아버지가 돌아가실 것 같아요. 전하시고 싶은 말씀 없으세요?
있어... 보고 싶다고. 보고 싶었는데 왜 한번도 안왔냐고.... 이제 죽어서야 보겠네.....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나서야 그토록 보고싶어하던 할아버지 옆에 누웠어요.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수국할매가 계셨지죠.
할아버지가 살아생전에 그리 부탁하셨대요. 자식도 없이 평생을 자신한테 의탁했으니
죽어서도 그리해야 하지 않냐구요. 저희 할아버지 묘자리가 참 좋거든요. 너무 높지도 않고
적당히 높아서 인사드리러 가기 좋은 곳에 두 분이 계세요.
평생 소를 좋아하셨던 분이라 묘에서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외양간도 있구요.
거기서 열댓걸음 떨어진 곳에 수국할매 묘가 있어요. 혼자 쓴 묘라 크지도 않고 관리도 할아버지
묘 관리 할 때 껴서 같이 하는 정도라 눈에 띄지 않지만 추석이나 한식때 가면 술이라도 한잔
부어놓고 절이라도 한번 하고 와요.
누가 누굴 더 불쌍하다고 하겠나요. 그냥 그렇게 살다가 가신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