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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울 할매 이야기.... 3

손녀딸 조회수 : 3,978
작성일 : 2024-05-03 22:24:08

할매가 그렇게 떠나셨지만

저는 그전에 할매랑 보낸 마지막 순간이 따로 있었는데

기말고사 이틀 앞둔 어느 밤에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

청도집 간다고 노란 쇼핑백에 하얀색 블라우스랑 치마를 챙겨서 담고

자취방 문을 나서는 ..

 

점심시간에 엄마한테 전화해서 꿈이야기를 했더니

무조건 저녁에 왔다가 가라고 하셨습니다 .

기말고사 바로 앞이라 거절하고 싶었지만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막차타고 청도집으로 갔어요

도착하니 이미 9 시

집에 들어서니 따듯한 물 한 대야를 건네주시며 할매 주무시기 전에

세수시켜 드리라고 하시더라구요

 

얼굴도 씻겨드리고 손도 씻겨드리고 발도 씻어드렸어요

손톱과 발톱도 깍아드리구요

그랬더니 할머니가 눈물을 보이셨어요

“ 나는 니한테 잘해준 게 항개도 없는데 왜 이렇게 잘해주노 고맙데이 ”

아마 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할매 눈물이었고

또 할매와 마지막 대면이 되었답니다 .

 

다음날 새벽 첫 기차 타고 대구 가느라 인사도 못 드리고 올라갔고

기말고사 다 치르고 다시 청도집 갔을 때는 할매는 혼수상태셨다가

다음날 돌아가셨거든요 .

 

청도집에서 5 일장을 치렀는데

산소에는 못 따라갔어요

어른들께서 산이 깊어서 힘드니까 여자들은 오지 말라고 하셨어요

저는 얼른 옥상으로 올라가서

할매 상여와 만장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 까지 한참을 배웅해드렸던

그날이 , 그 먹먹하던 아픔이 다시금 떠올려지네요

 

할매 돌아가시고 49 제 끝날 즈음에

쪽진머리에 은비녀 꼽으시고 옥색저고리 입으신 모습으로

제 꿈에 오셔서 얼굴만 보이고 돌아서 가셔서 너무 서운했고

이젠 정말 마지막이구나 했었습니다 .

 

울 할매는 돌아가시고도 사주가 안 좋아서 걱정이라던

저를 완전히 외면하실 수는 없으셨을까요 ?

제가 입사시험 치르고 결과 발표나던 날 밤

또 임용고시 치르고 발표나던 날 밤에도

어김없이 제게 찾아오셨어요

은비녀 쪽진머리에 옥색치마저고리 입으신 모습으로요

아무 말씀도 없으시고 그냥 편한 얼굴로 한번 보시고는 이내 가시더라구요

할매가 이렇게 꿈에 오시면 제게는 좋은 일이 있었습니다 .

입사시험도 임용고시도 다 합격했거든요

가족들한테 이야기하니까 다른 사람들 꿈에는 안 오셨다고 그러고

저 한테만 오신거 였어요

 

할매가 제 꿈에 맨 마지막으로 찾아오신 날은

저의 첫 번째 결혼에 대해 제가 법원에 이혼소송관련서류를

제출했던 날이었어요

이날은 커다란 대나무 빗자루를 두 개나 들고 할배랑 같이 오셔서

청소한다고 하시면서 대문 밖으로 비질을 하시는데 보는 제가

속이 다 뻥 뚫리는 것 같이 시원했거든요

 

이혼소송이 마무리 지어지는데 1 년이란 시간이 걸렸지만

그 이후에 제가 원하던 대로

아이는 제가 데리고 올 수 있었고

지옥같던 그 집 , 그 생활에서 벗어나게 되었어요

 

오랜 세월 풍파도 있었지만

할매가 하셨던 걱정처럼 초년고생은 다 끝내고

지금은 좋은 사람 만나 걱정없이 편안하게 잘 살고 있는데

이제 할매는 제가 걱정이 안 되시는 거 같아요

그날 이후로는 한 번도 안 찾아 오셨거든요

아마도 지금 잘 살고 있는 걸 위에서 보고 계시고

알고 계셔서 그런거겠지요 ?

그렇지만 만약에 한 번만이라도 제 꿈에 오신다면

이 말씀은 꼭 드리고 싶어요

 

항상 사랑이 부족했던 손녀딸 있는 대로 봐주시고

탓하지 않으시고 마음으로 늘 걱정해 주셔서 고마웠고

그 덕분에 지금 좀 편안히 잘 살고 있다는 말씀과

할매 살아 계셨을 때 더 잘 모시지 못해서 죄송했다는 말씀을요

 

정말로 울 김경순 할매 너무 보고싶네요

IP : 121.182.xxx.203
1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뭉클
    '24.5.3 10:29 PM (211.235.xxx.89)

    돌아가시고도 손녀가 너무 걱정되었나봐요.
    원글님도 그렇게 꿈에 할머니를 보시다니 대단하구요.

  • 2. 누군가에게
    '24.5.3 10:31 PM (61.101.xxx.163)

    사랑받은 기억은 평생 든든한 보험같은건가봐요.
    아직 할머니는 아니지만 저도 손주들 생기면 꼭 보험같은, 사랑 많이 주는 할매되고싶어요.ㅎ

  • 3. 쓸개코
    '24.5.3 10:38 PM (118.33.xxx.220)

    와.. 마지막 꿈은 어쩜 그런가요.
    할머니가 손녀 마음쓰지 말라고 시원하게 빗자루질 해주셨나봐요.
    고인되셔서도 할머니 사랑은 멈추질 않았군요.
    울 할머니도 저 참 예뻐하셨는데 꿈에 한번도 출연을 안 하십니다. 섭섭해요.

  • 4.
    '24.5.3 10:39 PM (114.203.xxx.205)

    할매가 원글님의 수호천사시네요!
    원글님 할매는 그릇이 큰 분이셨다 생각해요.

  • 5. 참외
    '24.5.3 10:45 PM (210.123.xxx.252) - 삭제된댓글

    저도 제.할머니와 비슷한 추억이 있어요.
    고3 학력고사 10일 전 돌아가셨는데, 갑자기 연락받고 부모님은 할머니께 가셨고, 저 혼자 집에 있었어요. 잠깐 잠이 들었던거 같은데 할머니가 띵똥하고 초인종을 누르고 오셨어요. 그리곤 제 손 꼭잡고 널 켜주겠다 하셨어요. 그리고 급하게 가셔야 한다면 현관문을 나셔셨는데 따라가보니 할머니가 없어졌었어요.
    나중에 알고보니 그 시간이 임종하신 시간이였더라구요.
    그 해 안전빵으로 썼던 학교라 할머니꿈도 있고 해서 당연 붙을거라 생각했는데 떨어지고 후기로 대학을 갔어요.
    그리곤 그 곳에서 남편을 만나서 잘 살고 있어요.
    할머니의 큰 뜻이 아닐까 ㅎㅎ

    결혼 후 어쩌다 신점보는 곳에 가게 되었는데 그 분이 제 등뒤에 할머니가 계신다고 하더라구요. 그 말에 무섭거나 놀랍지 않았던 기억이 있어요.

    글쓴이 님 곁에도 할머님이 지켜보고 계시지 않을까 싶어요.

  • 6. 글을 읽는
    '24.5.3 10:52 PM (175.119.xxx.159)

    내내 감동의 눈물이
    손녀에 대한 할머니의 더할수 없는 사랑과
    그사랑을 받고 자란 원글님이 너무 부럽네요
    할머니도 원글님도 이제 다 평안하신거 같아 정말 다행입니다

  • 7. .ㆍ
    '24.5.3 11:02 PM (1.239.xxx.97)

    원글님 글 찾아 읽고 있는데~먹먹하네요~어쩜 이리 글을 잘 쓰시는지~~눈에 그리듯 김경순할머님가 느껴집니다~~좋은 글 감사해요~~

  • 8. 그러게요
    '24.5.3 11:08 PM (125.178.xxx.170) - 삭제된댓글

    저도 모르게 울고 있네요.

    제 친정 아부지도 다른 식구들한테는 한번을 안 나타나시더니
    저한테만 두 번.
    한 번은 음식도 못하는 양반이 음식을 해서 먹어라 해주시고
    두 번째는 환하게 볓이 드는 창가를 등지고 서서
    저한테 웃고 계시는 거예요.

    잘 가셨나 봐요 그 이후는 7년째 꿈에 안 나타나시네요.

  • 9. 그러게요
    '24.5.3 11:17 PM (125.178.xxx.170)

    저도 모르게 울고 있네요.

    제 친정 아부지도 다른 식구들한테는 한번을 안 나타나시더니
    저한테만 두 번.
    한 번은 음식도 못하는 양반이 음식을 해서 먹어라 해주시고
    두 번째는 환하게 볕이 드는 창가를 등지고 서서
    저한테 웃고 계시는 거예요.

    잘 가셨나 봐요 그 이후는 7년째 꿈에 안 나타나시네요.

  • 10. ...
    '24.5.4 12:29 AM (183.102.xxx.152)

    저도 우리 할매 푸근한 가슴이 그리워서 눈물이 나요.
    김경순 할매요~~평안하이소!

  • 11. 마냥 밝기만
    '24.5.4 12:45 AM (116.41.xxx.141)

    할듯한 잠옷님에게도 고비가 있었군요 ~
    아고 읽다가 코끝이 아려오네요
    할매도 원글님도 평안하세요 22~

  • 12. ...
    '24.5.4 3:44 AM (106.101.xxx.168)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말씀에 할머니 고마움이 담겨있으신 것 같아요. 그래서 할머니가 수호천사가 되어주셨나봐요.

  • 13.
    '24.5.4 7:45 AM (124.50.xxx.21) - 삭제된댓글

    임용고사 시험 세대이신가요?
    제가 88년졸업이라 겹치는 시대적 부분이있어 공감하며 글따라 왔거든요
    그리고 임용고시 아니고 임용고사 이지요

    이전 글 내용으로 짐작하건데
    순위고사 세대로 짐작했는데요ᆢ

  • 14. 쓸개코
    '24.5.4 8:15 AM (118.33.xxx.220)

    원글님은 잠옷님 아니셔요.^^

  • 15.
    '24.5.4 8:17 AM (124.50.xxx.21) - 삭제된댓글

    댓글지웠습니다 원글죄송합니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ᆢ

  • 16.
    '24.5.4 8:20 AM (124.50.xxx.21) - 삭제된댓글

    당황해서 원글 아니고 원글님이라 읽어주세요ㅜ

  • 17. ...
    '24.5.4 9:05 AM (211.206.xxx.191)

    생전에도 하늘느ㅏ라 가신 후에도 늘 원글님을 지켜 주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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