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착한 일은 아니고

조회수 : 838
작성일 : 2024-04-04 23:18:03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에요.

 

어느 건물 1층 점포에 볼일이 있었는데 여긴 입구가 대로를 향해 있거든요.

보통의 가게나 카페처럼, 거기로 들어가면 돼요.

건물 주차장에 차를 대고 그 입구를 향해 가다가, 건물 옆에 난 유리문 앞에 섰어요.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라서, 급히 내려 걸어가던 제가 너무 거지꼴일 것 같아서요 ㅋㅋ

유리에 비친 머리를 보고, 대충 다듬고 얼른 지나쳐 가려는데 뒤에서 누가 

저를 부르는 것 같아요. 잘 안 들리는 소리로.

네? 하고 뒤돌아 보니

어떤 할머니가 저만치 멀찍이 서서 

저를 보고, "안 들어갈 거예요...?"

작은 소리로 묻더군요.

 

???

"네, 안 들어가는데요...?" 하고
내가 건물에 들어갈 건지 아닌지 저 분이 왜 궁금하시징?

하는 순간, 알 것 같았어요.

그 분이, 어른 보행 보조용 유모차 같은 걸 앞에 잡고 있었거든요.

유리문은 제가 거울처럼 비춰 볼 수 있었으니... 닫혀 있었고

그 분은 아마 그 무거운 문을, 밀어 열 힘이 없었거나

보행차를 끌고 문을 잘 열 수 없었던가 봐요.

 

가까이 가서 "들어가시려구요?" 하니까

"어... 들어가는 줄 알고 막 쫓아왔는데..."
하시는 거예요. ㅎㅎ

막 쫓아왔는데 아직도 저에게서 그만큼이나 멀리 있었던 거였어요.

아니 뭐 문 열어 드리는 게 힘든 일일까요.

이리 오세요, 열어 드릴게요, 하고 열어 드리고

그 분이 천천히 들어가시는 걸 보고

다시 나오실 거면 문 닫지 말까요? 네, 안 닫을게요~.

하고 저는 제 볼일 보러 갔어요.

 

뭐 착한 일 했다는 게 아니고 ㅋㅋ

아... 정말, 어릴 땐 몰랐는데.

요즘은 저도 아무 이유 없이 어깨가 아파요. 팔도 아프고.

타자 많이 치니 손목도 아파요.

체력은 별로여도 악력은 누구에게 크게 지지 않는다는 쪼그만 자부심이 있었는데

이젠 쨈병이며 돌려 여는 편의점 커피 병도 잘 못 열겠어요.

아직 열긴 여는데, 죽어라~ 힘줘서 열고 우와 손목 아파! 하고 고통스러워하고요.

나에게 이런 날이 오다니...

 

그러니 저에게도 천천히 걷는 날이 오겠죠.

지금은 쓱 밀고 지나갈 수 있는 두꺼운 유리문이, 큰 벽처럼 느껴지는 날도 올 거예요.

 

예전엔, 나도 언젠가 노인이 될 거라고 생각은 해도

그게 마치 사람들이 보드 타고 날아다니는 미래가 올 거라는 말처럼 

멀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는데, 이젠, 그 날이 그렇게 멀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나이든다는 건, 작고 약하고 희미해져 간다는 거.

언젠가 저도 똑같이 걸어갈 그 길을... 먼저 가는 사람들을 볼 때

멀고 낯설고 나랑 다르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도울 수 있는 건 쓱 돕고, 아무렇지도 않게 가기.

못 듣고 못 보고 지나치지는 않게, 잘 둘러보기.

그러고 싶어서 남겨 봐요.

IP : 112.146.xxx.207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24.4.4 11:25 PM (203.236.xxx.188)

    흐뭇하네요.
    복 많이 받으세요^^

  • 2. ..
    '24.4.4 11:34 PM (59.9.xxx.174)

    짝짝짝!!!
    참 잘했어요!!!
    ㅎㅎ 우리도 그런 날을 향해 천천히 가고 있죠.
    모임에 어떤 이가 다리가 아프다고 하니
    남 일 갖지않고요.
    암튼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야지 싶네요.

  • 3. 착한일
    '24.4.5 6:57 AM (59.6.xxx.156)

    맞죠. 착한 일 다정한 일 숨쉬듯하며 살고 싶어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574302 이낙연 총리가 민주당 대표일은 잘하지 않았나요? 77 ㅇㅇ 2024/04/14 3,559
1574301 양파 때문에 엄마께 화냈는데요 11 ㆍㆍㆍ 2024/04/14 3,609
1574300 미국에서 논란 중인 실내에서 신발벗기 문화  17 ..... 2024/04/14 12,243
1574299 결혼식 하객 부를 사람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14 e 2024/04/14 5,877
1574298 교감되기전 동료평가 솔직히 할까요? 15 평가 2024/04/14 2,688
1574297 당근마켓 문의드려요 4 ㄹㄹ 2024/04/14 1,050
1574296 전 KBS 박종훈 기자 8 ㅇㅇㅇ 2024/04/14 3,924
1574295 매사 늘 밀딩하는 심리 무엇일까요? 4 .. 2024/04/14 1,132
1574294 그러고보니 오늘이 4월14일 블랙데이 1 ㅇㅇ 2024/04/14 1,292
1574293 검찰 "민주당 때문에 사기 꺾여..뒤숭숭" 22 ... 2024/04/14 4,596
1574292 셀프컷 하시는분 계신가요? 25 .. 2024/04/14 3,222
1574291 대학생 해외연수 4 2024/04/14 1,137
1574290 뷰티 인사이드 영화랑 드라마랑 같은 내용인가요. 2 .. 2024/04/14 847
1574289 팩트폭행 당하는데 기분이 안나쁜 상대는.?? 7 ... 2024/04/14 1,598
1574288 집 깨끗하면 빨리 나간다고 4 0011 2024/04/14 4,858
1574287 논문 없이도 석사 학위 가능? 13 늦깍이 2024/04/14 2,456
1574286 50중반 기혼인데 노처녀 같다는 말 29 무지개 2024/04/14 6,116
1574285 탕수육은 어떻게 데우는 게 좋을까요 6 요리 2024/04/14 1,711
1574284 개신교 믿는 부모님들, 전도 자주 하시나요 5 .. 2024/04/14 1,071
1574283 초4 아들과 점심먹은 후기(?) 20 기특 2024/04/14 5,655
1574282 세탁기 있는 베란다벽 곰팡이 어째야할까요? 15 습기 2024/04/14 2,882
1574281 지금 선풍기 돌리고 있어요. 4 .. 2024/04/14 1,067
1574280 원희룡 prisoner 되지 않을까요? 4 .... 2024/04/14 3,029
1574279 전신마취 수면마취 차이점이 뭔가요? 6 00 2024/04/14 3,309
1574278 망고 또 핫딜하는곳 없나요?? 3 ..... 2024/04/14 2,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