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문법이론 자체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그 이론을 그대로 차용하는 사람을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죠. 예를 들어 상태동사는 진행형이 불가능하다는 이론은 그 규칙 자체가 아주 예외적일만큼 실제로 사용할 때는 무용지물에 가깝다고 느껴집니다. 예를 들어
https://promova.com/english-grammar/stative-verbs-in-english#stative_verb_list
상태동사: {believe, like, know, want, prefer, seem, own, have, contain, understand, exist, possess, occupy, live, feel, see, hear, smell, taste, look}
명백히 외국 교재인데, 여기에서도 "상태동사(stative verb)"은 진행형이 불가능하다라고 돼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유명 외국 신문 기사들이나 평론 글들을 보면 진행형이 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왜냐하면 상태동사라 하더라도 거의 언제나 일시적인 상태 또는 가변적인 상태를 나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신문에서 사용된 사례를 열거해 보자면
" I'm believing ," she said, "that God will turn this around for good". (美 뉴욕타임즈)
"나는 아직 하나님이 이 상황을 개선시켜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언급했다.
But they are also wanting more than just initials and names. (英 가디언지)
그러나 그들은 이름 첫 글자나 이름 이상의 것을 원하고 있다 ("원하고 있다"라는 진행형)
You might go so far as to say he is owning this day's play. (英 가디언지)
오늘날의 경기를 그가 지배하고 있다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지배하는"이라는 진행형 동사)
Read: Russia media is having a field day with the faked journalist "assassination". (美 Vice지)
He is having some success. (美 뉴욕타임즈지)
그는 어느정도의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be+ing라는 명백한 진행형)
Because his ability to taste has come back over time, Achatz feels that he is understanding the sense in a new way — the way you would if you could see only in black-and-white and, one by one, colors were restored to you. (美 뉴요커지)
그의 미각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회복됐기 때문에, 아하츠는 해당 감각을 다른 방법, 예를 들어 흑백으로만 보다가 색깔이 하나하나 회복되는 듯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이해하고 있다고 하는 be+ing, 즉 be+진행형 동사 )
Whether it's existing in the traditional idea of the film industry, I don't know. (영 가디언지)
전통적 의미의 영화산업으로 여전히 존재하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명백하게 "진행하고 있다")
He is occupying the middle ground in order to reassure white voters that he shares their valu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