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원페북
<586의 내로남불은 왜 생겼나>
ᆞ586 내로남불의 기원
ᆞ서슬퍼런 시절에 생긴 도덕감정이
ᆞ자신의 현실적 욕망과 분리될 때
ᆞ생겨나는 이중성이 내로남불
1. 투쟁하던 서슬퍼런 시절에 형성된 도덕감정
서슬퍼런 80년대 학생운동 시기는
연애하는 것, 화장하는것 심지어 공부하는것 조차도
죄악시 했던 시절이었다. 자기집이 잘 사는것도
티내지 않으려 했다. 꾀재재한 선배 아버지가
딱붙는 타이즈에 비싸보이는 싸이클 타고
아들 찾는다 학생회에 왔을때 깜짝 놀란적이 있다.
86년의 아버지가 그정도 삶을 즐긴다면
부자란 의미다. 부유함을 일부러 감춘것이다.
감히 학생회 사무실 책상에 책도 올려놓지 못했다.
학점 잘 나오면 열심히 투쟁 안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투쟁하던 시대의 도덕감정이다.
2. 세상과 삶이 바껴도 여전히 남아있는 도덕감정
사회 나와서도 도덕감정은 이어졌다.
골프도 몰래치고 해외여행 가는것조차도 말없이
갔다 왔다. 친구들은 노동현장에서 피땀흘리고
감옥갔다오는데 혼자 잘 사는데 대한 죄책감을
느끼던 세대가 586이다. 난 수배받아 도망다니던
친구 만나러갈때 오리털 파카 입고나가는게
미안해서 일부러 얇은옷을 입고 나간적도 있다.
노동현장에서 단체에서 '사회변혁'에 '헌신'하는
이들에게 늘 미안한 감정을 느꼈다. 그래서
뭔일이 생기면 그 미안함을 돈으로 대신하곤했다.
3. 욕망과 도덕 감정이 혼재하는 이중성
사회의 주축으로 자리잡으며
권력의 중추도 되었다. 세상에 눈 뜨며 돈도 벌고
자리도 잡았다. 가족 건사하며 현실에 젖어들고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고 사는것에 익숙해졌다.
점차 자기욕망에 충실해져 왔다. 하지만 80년대
그 서슬퍼런 시절 도덕감정은 여전히 한구석에
남았다. 몰래 챙긴돈으로 자식들 유학보내고
땅도 사면서 여전히 인간의 욕망을 인정하지 않는
이중적 도덕감정이 생겨났다. 자신은 현실과
타협하고 부조리도 저지르면서 뇌리에 박혀있는
도덕 감정은 그대로 남아 충돌한다.
4. 거리에서 촛불 들며 죄사함을 받는 586
586들은 이런 자기 욕망을 감추기 위해
마치 '예수쟁이'들이 평소 온갖 부조리 저지르고
주일에 교회나가 통성하며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는것처럼, 거리에서 촛불들고 진보정당 후원금
내고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현실 욕망의
죄사함을 받으려 한다. 땅 사고 투기하고 불법과
부조리도 저지르면서 겉으로는 늘 정의롭고
공정하고 평등함을 강조한다. 현실의 욕망을
과거의 도덕감정으로 숨기고 포장한다.
그 숨김과 포장이 바로 위선과 내로남불이다.
5. 자기 부조리를 상대에 전가시키는 비겁함
자신은 욕망에 충실하지만 정치인은, 상대는,
다른 사람은 그러면 안된다는 그 이상한 이중성.
국민의힘을 타도하는것으로 자기욕망의 죄사함을
받는게 586들이다. 관계 단절한 한 머리 꽃꽂은
미치갱이처럼 정치한다며 나대는 한 여자동기는
살고 싶은대로 살다 가끔 한번씩 '내 안의
새누리스러움을 반성합니다'라 말한다.
'새누리스러움'은 내로남불 이중성의 극치다.
자기 욕망을 더러운것으로 간주하고 새누리당에
전가시키는 아주 비겁하고 못된 이중성이다.
6. 상대를 악마화시켜 도덕적 우위를 확보
조국 사태는 그런 자기 욕망의 엇나간 이중성이다.
조국은 586 이중성과 내로남불의 최후의 보루다.
조국의 잘못을 인정하면 자신들의 이중성을
인정하는것이 되고, 이중적 도덕감정이 훼손된다.
내가 도덕적으로 우월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도덕적으로 열등한 대상이 있어야 된다.
도덕이란것 자체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상대를 악마화시켜 획득한 도덕성으로
자신의 비도덕성을 무마시키며 도덕적 우위를
확보하고, 그 도덕적 우위의 가면 뒤에 숨어
자신의 부조리를 합리화하는 것이다.
7. 사립유치원 사태는 이중성의 전형
박용진이 사립유치원을 부정할 때 가장 먼저
터트린것이 명품빽, 성기구였다. 국가에서 지급한
지원금으로 빽사고 성기구를 사는게 사립유치원장
들이라며 도덕성을 훼손시키고 국민들을 호도했다.
명확히 말하면 그 국가 지원금은 사립유치원에
보조 지급되는 돈이 아니라 원래 학부모들이
내야하는 유치원비를 국가가 대신 내주는거였다.
사립유치원장이 당연히 가져가야 할 사유재산을
마치 국가가 주는것 처럼 호도하며, 사립유치원의
사유재산을 강탈한것이 사립유치원 사태다.
8. 공공재와 공공재산을 구분못하는 586
국가가 감당하지 못한 유아교육을 개인에게
떠넘겨놓고 이제와선 공공재란 도덕적 명분하에
개인이 사유재산으로 설립하고 운영하는
유치원을 다시 국가의 것으로 강탈한것이다.
이는 민자사업 고속도로를 공공재라하여 수익을
강탈하는것과 같다. 이재명이 대선 출마 직전
민자사업 일산대교 무료화를 시도한것과 같다.
이들의 뇌구조엔 이중적 도덕성이 꽉 들어차 있어
공공재와 공공재산에 대한 개념마저 허물어버린다.
586들은 이것을 이해못한다.
9. 욕망에 충실하면서 변혁을 말하는 이중성
문재인시절 청와대 있던 후배놈에게 공공에 이익이
되는 환경 제품의 수입 규제를 논의해보려 제품을
소개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이놈은 돈이 되겠다싶어
이걸 가로채려 한것이다. "형 이거 우리가 합시다"
이미 무역상하는 선배에게도 알아본것이다.
이랫던 놈이 한번은 자기 친구 정치시켜보려 한다며
내게 의논을 했다. 왜 잘 살고 있는데 굳이 정치판에
끌어들이려하냐 반문했더니 "변혁해야죠"란다.
586의 도덕적 이중성은 대개 이렇다. 자신의 그릇된
욕망과 변혁을 분리시킨다. 일종의 정신분열이다.
10. 그릇된 욕망과 변혁의 분리가 586의 내로남불
이 그릇된 욕망과 변혁의 분리가 586들의 내로남불
이고, 이 내로남불의 변곡점 조국사태였다.
개인의 사적 욕망은 소중하다. 이 사적욕망이
없었다면 인류는 진보 발전하지 못했을것이다.
세상이 바뀌고 인간의 인식이 바뀌었지만 인간의
욕망은 더더욱 소중해졌다. 다만 그 발현되는
방식은 공정하고 정의로워졌다. 국가란 사적욕망을
공정하게 제어하는 체제고, 사회란 사적욕망이
정의롭게 유지되는 공동체다. 근대적 시민은
사적욕망을 소중히 하되 공공을 위해 스스로
공동체의 약속을 지키는 주체적 개인이다.
- 오늘 아침 침대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