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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민은 1975년, 박근혜에게 '죽은 육영수 여사가 꿈에 나와 박근혜를 구하라고 했다'고 편지를 보내고, "어머니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 나(최태민)를 통하면 항상 들을 수 있다."[1]고 하는 등 박근혜의 환심을 사고, 그 뒤부터 박근혜의 최측근으로 활동하였다.[2] 실제로 최태민은 박근혜에게 "어머니는 돌아가신 게 아니라 박근혜의 시대를 열어주기 위해 길을 비켜준 것일 뿐"이라는 말을 하거나, "아시아의 지도자", "여성 대통령"이라는 단어를 끊임없이 주입시키며 외부 활동을 권했다고 한다.#
하지만 최태민 주위에는 각종 이권 개입과 횡령, 사기 및 융자 알선을 비롯한 권력형 비리, 그리고 온갖 여성과 엮이는 스캔들 의혹이 들끓었다. <월간중앙> 1993년 11월 호는 당시 분위기와 관련해, 박근혜가 지역에서 열리는 구국봉사단이나 새마음봉사단 행사에 참석하면 관내 각급기관장과 그 지역에 연고가 있는 중앙부처 고위공무원, 국회의원들이 총출동했다고 전하고 있다. "측근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최태민 총재의 위상 또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다. 나중에 최태민 씨는 도지사와 경찰국장을 전화로 호출해 호통을 칠 정도까지 되었다."
1977년 중앙정보부 '수사자료'엔 "형식상 모든 업무는 박근혜가 관장하였으나 실질적으로 최태민이 전권을 위임받아 행정부, 정계, 경제계, 언론계 등 각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라고 기록되어 있고 "한마디로 미니 청와대였다"고 한다.# 박정희는 최초엔 최태민을 탐탁지 않게 여겼기 때문에 최태민을 몰아내고자 했으나# 박근혜가 눈물을 흘리며 끝까지 최태민을 두둔하였고,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박정희는 최태민을 내버려두는 등 최태민은 사망할 때까지 박근혜의 옆에 자리하였다.# 10.26 사건 뒤 김재규는 1980년 1월 항소이유보충서에서 최태민을 언급한다.
소문대로 박은 정말 최태민의 정신적 육체적 노예 엿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