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글에 올라온 중년 여성들의 자기 검열에 대해서 글을 읽었습니다.
일리 있는 글이죠. 사회적인 시선, 혹은 가치관이 중년 여성들의 여성성 표출을 제약하는 것도 현실이구요.
근데 저는 그게 우리 유전자의 자연스러운 세팅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말씀드리고 싶은 건, 그런 시선, 혹은 제약은 오히려 중년들을 보호하는 장치라고 생각해요.
이 선 밖으로 나가면 추해지니까 가급적 조심하라는 무언의 장치 아닐까요?
젊은 사람들은 과감한 패션이나 애정표현을 하더라도 우리가 귀엽다고 눈감아 줄 수 있습니다.
그게 우리의 본능으로 허용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뭘 해도 이쁘죠.
그런데 나이들어 살가죽 늘어지고 늙음이 얼굴에 자리잡아 있는데 과감한 화장이나 패션을 해봐야
나이든 게 더 도드라져 보입니다.
사실 요새는 뭘 어떻게 하고 다니든 앞에서 말하는 사람은 좀 적은데,
그런 패션으로 다니는 분들이 자기 도취가 심해요. 쉽게 말해서 자기가 예쁜 줄 압니다.
그런데 안 예뻐요...저도 앞에서는 말 못하고 여기서나 이렇게 얘기합니다.
저도 외모가 추해지기 시작하는 중년의 나이라서 이렇게 솔직하게 말해봅니다.
저도 제가 젊다고 생각할 때에는 누가 뭐라든 자기만족으로 양갈래머리를 하든
스키니쫄바지를 입든 그건 자기 마음 아니냐고 생각했는데
제가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깨달으니 소위 중년의 점잖은 패션을 사람들이 선호하는 이유를 알겠더군요.
그 점잖은 패션이 우리의 나이듦을 추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보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애정행위의 경우는 더 말 안해도 아실 겁니다.
서로 뜻이 맞아서 연애를 하든, 모텔을 가든 아무도 안 말립니다. 앞에서 티내지만 않으면 돼요.
나이든 사람들이 젊은 애들처럼 치장하고 애정행위 과감하게 한다고 생각해봐요.
그런 사람이 나한테 과감하게 고백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소름끼치는 일입니다.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네요. 저는 실제로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이게 사회적 가치관으로 훈련되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 전에 우리 본능이, 유전자가 시키는 감정입니다.
나이 들어서 이러저러해야 한다고 하는 규정이나 가치관은 우리를 압박하는 틀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추해지지 않게 보호해주는 안전판이기도 한 것입니다.
대문글 쓴 분이 젊은 연예인을 보고서 나이든 중년 여자들은 쟤네 엄마 참 좋겠다,
이렇게 말하는 쪽으로 교육되고 압박을 받았다는 논지로 말씀했습니다. 일리 있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역으로 이 상황을 뒤집어 봅시다. 만약 중년 여자가 젊은 남자 연예인을 보고서
저 남자와 섹스하고 싶다고 말했다 칩시다.
늙은 여자가 왜 그런 말을 하느냐, 도리에 어긋난다, 이렇게 광광대는 성토가 따라오죠.
그게 억울한 압박이기보다는, 그 젊은 남자 연예인의 입장에서 하게 되는 얘기입니다.
내 아들에게 나이든 여자가 사랑을 고백하면서 자고 싶다고 말하는 거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나이 많은 존재가 어린 사람들에게는 그런 존재입니다. 부모 역할 외에는 자기 욕망을 드러내면 인 되는 존재로 설정되어 있어요.
어린 사람들을 보호하고 우리는 그 디딤돌 역할을 하게 되기로 이미 본능에서 약정되어 있어요.
우리도 이런 본능적, 사회적 계약을 통해서 보호받으며 컸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성적 욕망을 '섹스하고 싶다' 등의 말이나 성행위를 시도하는 것 등으로 대놓고 드러내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입니다.
나이 든 사람이 젊은 이성에게 성적 욕망을 드러내면 그 사회적 계약을 깨는 존재가 됩니다.
대신 우리는 팬클럽에 가입해서 활동하거나, 혹은 엄마처럼 말하게 되는 것으로 승화시키는 쪽을 택합니다.
그것은 엄마처럼 말하고 행동하라는 압박이기도 하지만 우리 욕망의 건전한 승화이기도 하면서 우리 자신을 보호하는 틀인 것입니다.
이건 남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성매매를 할 상황에서 자기 딸이 생각나서 그만두는 남자들도 꽤 있을 겁니다.
세상은 그렇게 조금 조심하는 사람이 지키고 발전시켜 왔습니다.
욕망은 굉장히 이기적입니다. 그래서 그걸 드러낼 때 자신이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
세상의 질서를 훼손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잊고 마음대로 해보라고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되는 게 있습니다. 우리가 늙었다는 사실을...
늙은이들이 이러는 걸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더 나아가 이런 혐오는 사회적 압박이기 이전에 우리의 유전자가 시키는 거라는 사실을...
저는 이런 생각을 하다가 나이 드는 것이 우리에게 축복일 수도 있다는 결론까지 내리게 되더군요.
적당히 자기 욕망을 접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사회적 역할로 그 욕망을 치환시켜 표현할 줄 알아야죠.
배우가 비극적인 선택을 해서 가슴이 아프지만 나의 아저씨에서 이선균의 모습에 우리가 공감한 이유를 생각해 보면 이런 부분에 있죠.
젊은 여자애를 보고 자기 남성성을 어필해서 사귀고 싶어하는 중년의 남자보다는
어떻게든 잘 이끌어서 사회의 일원으로 살게 해주려고 돕는 아버지, 삼촌 같은 존재가
바로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