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편 읽고 독서모임하니 좋더라고요.
5,60대 여성분들에게 좋은 시 한편 추천해주심 진심 감사해요~~~
시 한편 읽고 독서모임하니 좋더라고요.
5,60대 여성분들에게 좋은 시 한편 추천해주심 진심 감사해요~~~
딱지 (이준관)
나는 어릴 때부터 그랬다.
칠칠치 못한 나는 걸핏하면 넘어져
무릎에 딱지를 달고 다녔다.
그 흉물 같은 딱지가 보기 싫어
손톱으로 득득 긁어 떼어 내려고 하면
아버지는 그때마다 말씀하셨다.
딱지를 떼어 내지 말아라 그래야 낫는다.
아버지 말씀대로 그대로 놓아두면
까만 고약 같은 딱지가 떨어지고
딱정벌레 날개처럼 하얀 새살이
돋아나 있었다.
지금도 칠칠치 못한 나는
사람에 걸려 넘어지고 부딪히며
마음에 딱지를 달고 다닌다.
그때마다 그 딱지에 아버지 말씀이
얹혀진다.
딱지를 떼지 말아라 딱지가 새살을 키운다.
선운사에서
최영미
백석 시인의
수라
그 시를 알게 된 후로 거미 함부로 대하지 못해요
거미만 보면 그냥 마음이 아련해져요
문정희의 ‘남편’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
돌아 누워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은 남자
나에게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 준 남자
어느날 고궁을 나오며
요즘 우리에게 꼭 필요한 시 아닐까요?
요 앞
시궁창에서 오전에 부화한
하루살이는,점심 때 사춘기를
지나고, 오후에 짝을 만나,
저녁에 결혼했으며,
자정에 새끼를 쳤고,
새벽이 오자 천천히 해진
날개를 접으며 외쳤다.
춤추며 왔다가 춤추며 가노라.
미루나무 밑에서 날개를 얻어
한달을 산 늙은 매미가 말했다.
득음도 있었고 지음이 있었다.
꼬박 한달 동안 노래를 불렀으나
한 번도 나뭇잎들은
박수를 아낀 적이 없었다.
칠십을 산 노인이 중얼거렸다.
춤출 일 있으면 내일로 미뤄두고,
노래할 일 있으면 모레로 미뤄두고,
모든 좋은 일은 좋은 날 오면 하자고
미뤘더니 가뿐 숨만 남았구나.
그 즈음 어느 바닷가에선 천 년을
산 거북이가 느릿느릿 천 년째
걸어가고 있었다.
모두 한평생이다.
한평생 반칠환
서시
한강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당신, 가끔 당신을 느낀 적이 있었어,
라고 말하게 될까.
당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당신과 언제나 함께였다는 것을 알겠어,
라고.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
끝없이 집착했는지
매달리며
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
때로는
당신을 등지려고 했는지
그러니까
당신이 어느 날 찾아와
마침내 얼굴을 보여줄 때
그 윤곽의 사이 사이,
움푹 파인 눈두덩과 콧날의 능선을 따라
어리고
지워진 그늘과 빛을
오래 바라볼 거야
떨리는 두 손을 얹을 거야.
거기,
당신의 뺨에,
얼룩진.
일 잘하는 사내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은가
젊은 눈망울들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다시 태어나면
일 잘하는 사내를 만나
깊고 깊은 산골에서
농사짓고 살고 싶다
내 대답
돌아가는 길에
그들은 울었다고 전해 들었다
왜 울었을까
홀로 살다 보니 홀로 남은
팔십 노구의 외로운 처지
그것이 안쓰러워 울었을까
저마다 맺힌 한이 있어 울었을까
아니야 아니야 그렇지 않을 거야
누구나 본질을 향한 회귀본능
누구나 순리에 대한 그리움
그것 때문에 울었을 것이다.
- 박경리 -
https://www.youtube.com/watch?v=X5Cjs7DiNPQ
구준회 시에 정보형이 작곡한 가곡, 눈이 내게 말한다.
시를 노래로 들어보세요.
감사합니다. 저장해뒀다 또 읽어봐야겠어요.
좋은 시들 많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가을이면 생각나는 시 한 편 올립니다
울음이 타는 가을 강(江)
박재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江)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물 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江)을 처음 보것네.
시 좋네요
좋은 시들이네요. 감사합니다.
다 좋네요 좋다
좋은 시 감사합니다~~~
팔원 -서행시초 3 -백석-
차디찬 아침인데
묘향산행 승합자동차는 텅하니 비어서
나이 어린 계집 아이 하나가 오른다
옛말속같이 진진초록 새 저고리를 입고
손잔등이 밭고랑처럼 몹시도 터졌다
계집아이는 자성(慈城)으로 간다고 하는데
자성은 예서 삼백오십리 묘향산 백오십리
묘향산 어디메서 삼촌이 산다고 한다
쌔하얗게 얼은 자동차 유리창 밖에
내지인(內地人) 주재소장(駐在所長) 같은 어른과 어린아이 둘이 내임을 낸다
계집 아이는 운다 느끼며 운다
텅 비인 차안 한구석에서 어느 한 사람도 눈을 씻는다
계집 아이는 몇해고 내지인 주재소장 집에서
밥을 짓고 걸레를 치고 아이보개를 하면서
이렇게 추운 아침에도 손이 꽁꽁 얼어서
찬물에 걸레를 쳤을 것이다
[
백석시가 좋은데 저는 이 시가 그렇게 마음아프고 백석의 정신을 잘 대변한다고 생각해요. 멋쟁이 백석은 그 당시 간도로 어디로 흩어질 수 밖에 없었던 많은 가난한 백성들을 잘 그려냈어요 저 내지인 소장은 일본인 말하는 것이구요 저 아이의 아픈 삶에서 당시 조선의 힘듦과 슬픔을 시각적,촉각적으로 너무 잘 표현했어요. 이런 시기에 읽기 좋은 시예요.
좋은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