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참 덥네요.
어제 김치 냉장고가 돌연사했습니다. 의문사이기도 하고, 자연사이기도 합니다. 안락사는 결코 아니에요 ㅎ2002년 생, 딤채이니까요.
이로써 저희 집을 떠난 가전 제품이 이제 다섯 손가락을 꼽게 되었네요.
5년전, 2018년 여름은 참 더웠습니다.
94년 여름이랑 거의 비길 정도였죠.
그해 8월, 갑자기 에어컨이 돌연사합니다.
매일 사상 최고 전력량을 갱신하던 날인데 에어컨은 당연히 재고가 동이 났고,
돈이 아무리 많아도, 에어컨을 구할 길이 없는데다
에어컨을 산다해도, 설치할 때까지 아무 기약없이 기다리기만 해야했었죠.
게다가 남편은 당뇨 합병증으로, 수술하고 집에서 요양 중이었고요.
저는 일하면서, 남편의 삼시 세끼 챙기느라, 3-4시간마다 약 발라주고 등등 힘들었습니다.
그 해, 고 3이었던 아이는 3월 모의부터, 잘 못치더니.내내 모의 고사가 지지부진했습니다.
급기야 6월 모의에서는 최악의 점수를 받았습니다. 공부를 한다고 했는데도, 이상하게 내내 점수가 신통찮았습니다.
그 와중에 에어컨 없이. 몇 주를 지내다 보니, "개같은 날의 오후"란 영화가 진짜구나 싶었습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신영복 선생님이 그러셨죠. 더운 날에 사람이 사람을 증오하게 된다고 .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일하고 장을 봐 집으로 오다보면, 정말 아스팔트에서 뜨거운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 뜨거운 여름을 나면서 저는 완전히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마음이 평온해졌습니다.
"어쩔 수 없지. 아무 걱정말고, 결과를 기다리자, 그때가서 또 무슨 수가 생기겠지"
6월 평가원에서 충격적으로 나쁜 성적을 받은 아이는, 그때부터, 한눈도 팔지 않고 공부했습니다.
시험 얼마 앞두고, "엄마, 저 다시는 수능공부 하지 않을 거예요. 모든 것을 다 쏟아부었어요" 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한 점의 후회 없다고 했어요.
저는 열심히 밥해줬고(라기보다는 고기를 많아 샀죠, ㅋㅋ고기값 정말 많이 나갔습니다), 부지런히 간식 사다 날랐고요.
지금쯤 수시 원서 한창일때, 친구들 , 엄마들 사이에 원서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을 때 아이는 놀라울 정도로 차갑고 침착하게 공부에만 집중했어요. 롤 다이아 였던 ㅠㅠ녀석은 게임도 완전히 끊고, 쉬는 시간에 농구하면서 스트레스 풀면서 귀마개하고서 내내 공부만 했다고 하더라고요.
9월 모의때는 도시락 뭐 쌀까 물었더니, 잡채만 싸달래요. 고기와 면을 가장 좋아하니까요. 그랬더니 헉, 퉁퉁 불고, 엉켜서, 도시락 열어보니, 잡채 덩어리가 있더래요. ㅠㅠ 숟가락으로 뜯어 먹었다네요 ㅋ
그래서 수능 때는 갈비찜, 연어 스테이크, 또 불고기, 달걀 말이, 김치랑 밥, 스타벅스 모카 커피 병에 든것 2개, 페라로 로세 초코렛 10알, 얼음물 한통, 이렇게 잔뜩 싸들고, 갔어요.
4키로로 태어난 아이가, 20배 이상 자라서, 추리닝 입고, 수능 시험 보러 가는데 어찌나 찡하던지..
그 해 수능은 국어가 불, 아니 핵 수준으로 어려워서, 수학을 4등급 받고도 인제 의대에 붙은 학생이 있을 정도로, 변수가 많았습니다. 국어가 너무 어려워서, 첫 시간에 혼이 나간 아이들이 수학을 망친 경우도 많았구요.
국어가 참 어렵네, 남도 어렵겠네, 난 열심히 해야지
수학이니까, 더 열심히 해야지.
일단 밥을 맛있게 먹겠어.
와, 영어다,
이제 마지막, 과학이야.그런데 감독관이 왜 저리 왔다리 갔다리 할까, 집중해야지.
그렇게 4교시를 본 아이는 최고의 성적을 받아서, 원하는 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어디선가, 에어컨이, 김치 냉장고가 갑자기 멈춰 섰다면,
혹은 뭔가가 멈춰 서버려 힘드시다면,
지금 고3 혹은 재수하느라, 딱 서버릴 것만 같으시다면 제 이야기가 응원이 되길 바라며 몇 자 적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