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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기다리는게 이런거군요

마늘부인 조회수 : 2,006
작성일 : 2023-06-08 09:09:22

2-3주 전쯤 장터에서 치자꽃 화분을 샀어요 
꽃망울이 튼실한게 다닥다닥 달리고 싱싱한 잎사귀도 가득해서 제 눈에 쏙 들어와 세련된 모양새의 다육이와 함께 집에 들였어요 
꽃망울이 꽤나 커서 곧 필거라고 생각했는데 매일 두고봐도 그대로길래 처음엔 기다려보자 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피지도 않고 말라버리는거 아닌가 조바심이 나더라고요 
그사이 먼저 자리잡고 잘 자라는 화초들은 열심히 꽃을 피워댔죠 
노랑색으로 피었다가 분홍으로 바뀌는 아가별 카랑코에, 쭉쭉 뻗은 진초록 잎사귀 사이에서 방울방울 하얀 복주머니 모양의 꽃을 맺어가는 댄드롱, 베란다에 들어오는 바람에 살랑거리며 연분홍 가녀린 꽃을 피우는 붉은 사랑초, 화분 한가득 보라색 한지로 접은듯 예쁜 꽃의 캄파눌라…
그런데 요넘은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이 지나고.. 뭐가 잘못되었나 싶고, 이리 많은 꽃망울이 왜 꿈쩍도 안하는지..ㅜㅜ

그런데 어제 아침, 여느때처럼 일어나자마자 침실 베란다에 가득한 초록이들에게 눈인사를 하는데 치자꽃망울 하나가 밤새 쑥 키가 커지고 갑자기 부풀어오른거예요 
뭐지? 이제 피려나?
아이 가졌을 떄 배에 튼살 생기듯 초록색 꽃망울에 하얀 줄이 쭉쭉 그어져서는..
그래도 저렇게 부풀기 시작했으니 피려면 또 며칠 기다려야겠지 하며 오전 일과를 마치고 침실 베란다 창가 책상에 앉아 초록이들을 보는데 아니! 몇시간 사이에 손바닥만한 하얀 꽃이 활짝 피어있네요^^

이거슨 데자부~
제가 첫아이 낳을 때 병원에 도착하니 8센티가 열렸지만 초산부라 아직 멀었다며 간호사가 친정엄마와 남편에게 집에서 주무시고 내일 오시라고 돌려보내는 사이 제가 아이를 낳는 바람에 가다가 연락받고 다시 돌아왔을 때의 일을 남편이 종종 얘기하곤 했는데 그때 남편의 심정이 그대로 느껴지더라는..
끝내주는 달달한 향기를 맡으며 사진도 찍고 식물일기도 쓰고 기분좋게 집안일하고 두세시간이 지났나.. 다시 책상 앞에 앉으니 그 옆의 꽃은 부푸는 것도 몰랐는데 어느새 반이상 피어있는 것을 보고 두번째 놀람 ㅎㅎ
바닐라 요거트를 스푼으로 휘저은 것처럼 뽀얀 꽃잎을 뒤틀며 피어대는 꽃이 참 예쁘네요 
최근에 정말 힘든 일이 있었는데 저에게 24시간 언제든 바라보기만 하면 힘을 주고 달래주는 요넘들 덕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이 순간들.. 50년 넘게 수많은 기다림을 겪었지만 여전히 어렵고 여전히 설레입니다



IP : 59.6.xxx.68
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23.6.8 9:14 AM (223.38.xxx.183)

    아름다운 글 감사합니다… 왜 눈물나죠 힝 ㅠㅠ
    저도 힘든 시간을 통과하고 있어선가봅니다.
    어렵고도 설레는 일..
    원글님 인생에도 저에게도 예쁜 꽃이 만발하길 기다려봅니다.

  • 2. 점셋님
    '23.6.8 9:20 AM (59.6.xxx.68)

    아름다운 댓글도 감사합니다
    힘든 일도 피해갈 수 없고 아름다운 꽃도 거저 주어지는게 인생인가봐요
    피었다 지더라도 각자가 가진 꽃망울은 꺾이지 않고 각자의 때에 다 피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때 피고 지는 꽃 앞에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좋은 하루 보내셔요

  • 3. 쓸개코
    '23.6.8 9:34 AM (211.184.xxx.152)

    꽃망울 부풀었다는데 읽는 제가 왜 설레죠.ㅎㅎ
    베란다 풍경이 눈앞에 예쁘게 펼쳐집니다.

  • 4. ...
    '23.6.8 9:50 AM (221.138.xxx.139)

    혹 며칠 전 치자나무 들이셨다는 분이신가요?
    꽃향기로 가득한 집...
    상상만 해도

  • 5. ^^
    '23.6.8 9:59 AM (192.109.xxx.235)

    쓸개코님,
    댓글 반가워요
    취향이 비슷한지 영화, 책, 음악, 나무, 꽃 얘기 나온 글에서 자주 뵙네요
    저는 한거 없는데 거저 주는 것들에 감사하는 요즘이예요

    221님,
    그분 글 저도 봤어요
    저는 좀 더 일찍 들였고요 치자꽃 향기 정말 취합니다 ㅎㅎ
    베란다 중문을 열어놓고 침실 문 열어놓으니 침실, 거실,.. 바람타고 온 집에 향기가 가득해서 황홀…

  • 6. 쓸개코
    '23.6.8 10:04 AM (211.184.xxx.152)

    꽃얘기 좋아합니다. 모르는 꽃 얘기 올라오면 검색해보기도 해요.^^
    글에서 치자꽃향이 솔솔~ 나는듯 ㅎ

  • 7. 폴링인82
    '23.6.8 10:27 AM (118.235.xxx.117)

    치자꽃향기는 담아서 품고 싶죠.
    예쁘기도 하고 향기도 진하면서 그윽하고
    꽃망울 개화시기와
    첫아이 출산 시기를 비유하여
    저도 웃음 터졌네요.
    재밌는 글 감사해요.
    꽃보다 예쁜 첫 아이도 잘 컸겠죠.

  • 8. ^^
    '23.6.8 10:54 AM (192.109.xxx.239)

    폴링인82님,
    좋은 댓글 감사해요
    큰아이는 심신이 건강한 사회인으로 잘 컸어요

    호기심 많은 제가 이제서야 식물에 관심이 생겨서 뒷북치는 중인데 볼수록 신기합니다
    며칠 피면 지는 꽃이고 가지도 한손으로 꺾을 수도, 죽일 수도 있는데 시간과 물과 바람과 빛이 아니고서는 꽃을 피울 수는 없네요
    아이를 가지고 낳는 것도 생각나고, 이솝우화 ‘햇님과 바람’도 생각나고…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안에 세상이 보여요
    너무 진지했나요? ㅎㅎ
    하여튼 요즘 요넘들이 저의 숨통이고 보물상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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