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에 성리학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조선왕조가 성리학을 국교로 하면서...
고려로 부터 강제로 빼앗아간 정권을 정당화시킬려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고 하네요..
조선말기이전까지는 제사라는게 왕족이나 양반들만의 문화였고
일반 양인,노비들은 상관없었는데..
조선말에 신분제도가 무너지면서 유력한 양반족보를 사기 시작하면서
양반 흉내낼려고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네요..
대부분 제사를 지낸 사람들은 노비 후손들이 많음
다 아는데도 못 없애니 참 ...
양반인 척
누군가 나서서 없애야죠
근데 요즘은 친정 부모 안스럽다고 제사 지낸단
딸이 많더군요
당시 귀했던 기름 두른 전
짧은 지식을 덮을 홍동백서 좌포우혜
1690년 양반 자체가 10%였음.
40% 노비
하루 세끼 아침,점심,저녁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순조 때 실학자 이규경은 당시 풍속을 기록하며 추석부터 이듬해 정월까지는 조석 두끼,
그 사이 농번기에는 하루 세끼 먹는데 장정은 7홉,
아이가진 여자는 한끼에 5홉을 먹었다고 기록했다네요
이름은 있었나요?
김씨이씨박씨최씨....대부분이 노비였을텐데
대부분이 노비는 아니었죠 농민이 더 많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