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했어요.
지금도 편하지는 않지만 이십대에는 정말 큰 컴플렉스여서 힘들었어요.
시간이 지나고 어른이 되면서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이십대에는 그것이 전부인 것만 같았고 자신감이 없어 꽤나 우울한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아이를 낳은 후에 언제고 아이가 출신학교를 물으면 뭐라고 하지 그런 걱정을 하기도 했는데
정말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고 세상의 일을 알아가기 시작하자 어느날 내게 와서
엄마는 어느 대학을 나왔냐며 물었어요.
어어 올 것이 왔구나 하며 우물쭈물 대답하지 못하고 지나갔습니다.
아이는 엄마를 정말 좋아해서 엄마를 진심으로 믿고 따랐어요.
그래서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어요. 아이가 몇 번을 묻고 또 물었지만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서 대답을 못했어요. 어어 하면서 또 지나갔습니다.
묻다가 안 묻다가 반복하면서 시간이 많이 지났어요.
어느 날 아이가 이제는 정말 엄마가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알려달라고 했어요.
그 날은 왠지 말이 나와서. 아이에게 술술 내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말이야. 고등학교에 가고 나서부터는 공부를 못 따라가겠더라고.
정말 어려워졌거든. 열심히 했어야 했는데 열심히 하지 않았어.
한번 놓쳐버리니까 그 다음부터는 정말 힘들어졌어.
외할머니한테 너무 미안하지. 그렇게 열심히 키워주셨는데.
그 부분이 너무 미안해.
그랬겠네. 외할머니한테 미안했겠네.
그렇지. 너무 미안해. 지금이라도 그 때 열심히 하지 못해서 미안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 외할머니는 엄마에게 최선을 다해 주셨는데 엄마는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거야.
후회해.
그렇게 아이한테 다 털어놓고. 마음이 홀가분했어요.
큰 숙제를 마친 기분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좀 지난 어느 날 저녁에 아이가 나에게 왔어요.
엄마. 엄마는 스무살때 좋은 대학에 못가서 너무 슬펐다고 했잖아.
그랬지. 너무 슬펐지. 친구들은 다들 좋은 대학에 가고 엄마 혼자 남았거든. 너무 힘들었어.
엄마. 엄마가 그 때 좋은 대학에 갔으면 아빠를 안 만났을 거 아니야.
그렇지. 아빠를 안 만났겠지.(부부싸움할때 단골 대사)(아이가 기억함)
그럼. 엄마. 내가 안 태어났을 거 아니야?
그렇지. 네가 안 태어났겠지.
그러니까 엄마. 엄마는 나를 만나려고 그 때 대학에 떨어진거야. 그래서 지금 나를 만난거야.
정말? 그러면 그 때 대학에 잘 떨어졌네?
그렇지. 엄마.
엄마가 그 때 좋은 대학에 갔으면 아빠를 안 만났을 거고.
아빠를 안 만났으면 내가 태어나지 않았을 거잖아.
그러니까 엄마는 나를 만나기 위해서 그 때 대학에 떨어진 거야.
엄마. 다음 생에 태어나면 좋은 대학에 가요. 그리고 아빠도 만나지 말고
멋진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요. 하지만 엄마 이번 생에서는 나를 만났으니까
나와 행복하게 살아요. 나는 엄마가 좋은 대학에 가지 않고 나를 낳아서 너무 좋아요.
아. 스무살에 대학에 떨어졌을 때
오십살이 된 어느 날. 대학 낙방의 위로를 이렇게 멋지게 받으리라고는 상상이나 했을까요.
그래요. 나는 이 아이를 만나기 위해서 스무살에 대학에 떨어졌던 거예요.
이제야 알게 되었어요.
나는 너를 만나기 위해서 그 때 그 일을 겪었구나. 너무 잘 되었네.
이 아이가 제 아이예요.
갑자기 생이. 내 삶이 보석처럼 아름답게 빛납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