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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수도권 지방살이 정주와 이주에 관한 이야기

펌글 조회수 : 929
작성일 : 2022-04-06 13:21:33
Sabina Seo

<정주와 이주>
어쩌다보니 이렇게 이 동네, 저 동네 기웃거리며 살게 되었는데 그러다보니 지금 살고 있는 이곳 예천이 평생 살 곳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언젠간 어디론가 좀 더 큰 도시에 가서 정착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곳이 어디일지는 전혀 모르겠다.
내가 취직되는 곳이겠지. 언제, 어디서, 어떤 자리로 가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내가 가장 오래 살았던 서울, 잠시 살았던 대구, 대전, 그리고 예천까지 동네별로 특색이 달라서 “대한민국이란 무엇인가” 하는 현타가 오기도 했다. 과연 이곳들을 모두 같은 나라로 묶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 고민을 했다는 소리다.
한곳에만 살고 있는 사람들은 본인이 살고 있는 곳이 곧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이란 아파트 가격이 미친듯이 오르고 입시 경쟁이 치열해서 환장할 곳인데, 또 시골 사람에게 대한민국이란 농사를 백날 지어도 손에 쥐는 돈은 얼마 안 되는 곳이며 아프면 갈 병원이 마땅치 않은 곳이기도 하다.
코끼리의 서로 다른 부분을 만지면서 각자 이곳이 내 나라고 우리나라려니 생각하는 것.
그러다보니 내 눈에는 나무처럼 한 곳에 뿌리내리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신기하기만 하다.
다른 동네가 더 궁금하지는 않을까? 내가 가르치는 학부생들 중에는 찐 안동러들이 있다.
이곳에서 태어나서 자라서 지역 대학을 가고. 많은 학생들이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데 또 다시 이곳 근처로 배치를 받게 되겠지. 안동 인근으로 배치받는다면, 예천, 청송, 의성, 영주, 봉화, 영양 등등.
나는 학생들에게 젊을 때,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멀리, 먼 곳으로 가서 살아보는 경험을 하라고 추천한다.
내가 살아온 곳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니까, 더 멀리 보고 더 많은 기회를 가지라고 말이다.
인생에서 거의 첫 번째로 멀리 갈 수 있는 기회는 대학 진학이다.
서울에는 이미 서울에서 나고 자랐거나 서울으로 대학 진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것이 큰 일이 아닐지 모르지만 중소도시에 살아가는 사람들 입장에서 서울로의 진학은 너무나도 큰 일이다.
모두가 대학을 진학하는 것도 아니다. 대학을 진학하지 않고 동네에서 바로 일거리를 찾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그리고 서울로 진학을 할만한 성적을 갖추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서울에서 진학을 할 수 있을 가정의 경제적 여건을 갖추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서울에서 (사립) 대학을 다닌다는 것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일년에 2천만원은 족히 소모하는 일이며 4년으로 잡았을 때 8천만원에 달하니까.
마지막으로 아직까지 이 동네 젊은 처자들의 발목을 잡는 요소가 또 남아있다. 순결 이데올로기.
딸을 바깥으로 내돌리고 싶지 않은 정서다. 딸이 자취라도 하는 순간, 본인이 소유한 딸의 가치가 매우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또 그 자체를 상상하기도 싫어하는 부모들이 여전히 있다.
아들의 경우, 바깥 세상 구경을 흔쾌히 허락할 수 있지만 딸의 경우, 여전히 글쎄, 하는 양반들이 너무나 많다. 첫 번째 기회는 학생 본인의 의지보다는 돈을 대줄 수 있는 보호자의 의지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 기회에서 멀리갈 기회를 놓치고 나면, 취직이나 결혼같은 두 세 번째 기회들이 오긴 한다.
이 지긋지긋한 동네를 벗어나 꼭 대도시로 가서 취업을 할 것이라는 결의를 다지는 학생들을 보기도 했다. 이제는 내가 내 돈을 벌러 갈 것이니, 부모, 삼촌도,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막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나는 학생들에게, 다시 돌아와도 좋으니 언젠간 다른 동네에 가서 살아보라고 권장하곤 한다.
그런데 대학까지 이 동네에서 다니다 보면, 이제 이 동네가 너무 익숙해져서,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이 곳을 무작정 떠나기가 매우 두려워진다. 이미 입에, 몸에 베어버린 경상도 억양 때문에 윗쪽 지방에 가면 바로 이방인으로 티가 날 것이라는 걱정도 함께 한다. 동네 이웃들이랑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얘기가 나왔다. 동네 이웃이 바로 여기서 K양이다.
똑똑하고 공부 잘 하던 K양, 고3 시절 학교장 추천으로 E여대 수시면접을 보러 올라갔다.
고3 담임선생님과 함께 모의 면접 연습을 열심히 하고 자신감을 가지고 면접장에 들어갔다. 면접장에는 교수님 몇 분과 함께 면접을 보는 수험생들이 있었다.
첫 번째로 여자교수님이 질문을 했고 한 학생이 첫 번째로 대답을 했다. K양은 그 광경을 보고 머릿속이 하얘졌다고.
교수님의 말도, 대답한 학생도 또박 또박 서울말을 쓰고 있었다. K양은 그 전까지 서울말을 쓰는 사람과 단 한번도 말을 해본적이 없었다.
서울말은 그저 TV에 나오는 말이었고, 살아 숨쉬는 누군가 내 옆에서 서울말을 쓰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담임교사와 모의면접을 준비했어도 서로 사투리로 물어보고 사투리로 대답했을 뿐, 단 한번도 서울말을 고민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면접에서 서울말을 듣고 나니 이미 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K양은 면접에 대한 대답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보다는 어떻게 서울말로 말을 꺼낼 수 있을지, 서울말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그 고민으로 복잡해졌다.
K양은 그렇게 수시면접을 망치고선 다시 경상도로 돌아왔다.
술자리에서 웃으면서 이야기한 면접의 흑역사지만 묘하게 아쉬움이 남는 에피소드다.
대학교 면접에서든, 직장 면접에서든 경상도 억양을 차별할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여성일수록 사투리에 대해 과도하게 의식하고 있으며, 말투 때문에 타 도시로 가면 핸디캡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러가지 걱정에 휩싸이다보면 이 동네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아야 할 수만가지 이유들을 찾게 된다.
한편, 대학을 수도권으로 가면, 취직을 다른 곳으로 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그렇게 서울은 거대한 청소기처럼 지방에서 올라온 인재들을 빨아간다.
그럴수록 지방에는 노인들과 토박이들만 남게 되고 그럴수록 더욱 더 배타적인 곳이 된다.
안동에서 만난 아재들은 안동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살기 좋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듣고 안동을 벗어난 적 있냐고 했더니 군대 시절을 빼고 없단다.
그러면서 어떻게 비교가 되겠냐고 되받아쳤는데, 어쨌든 살기 좋고 너무 편한 도시라고 말한다.
남성/정규직/시스젠더/이성애자/가부장제에 익숙한 사람에게 안동은 살기 좋은 곳이겠지만 이곳은 보수적인 문화와 타인의 사생활에 대한 호기심 혹은 궁금증 때문에 외지인에게 결코 쉬운 동네는 아니다.
이것은 경상도 북부지방의 문제만도 아니고, 전라도도, 충청도도, 강원도도, 제주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심지어 미국이나 유럽의 시골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한 번뿐인 인생, 한 번쯤은 이곳을 벗어나 타도시에서 살아보고 생활하라고 조언을 하지만, 그 조언을 듣고 학생들이 이곳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도시의 문화 생활, 쿨하게 타인에게 무관심한 문화, 먹고 즐길 거리가 많은 대도시에서 소도시나 기초군의 생활은 너무 지루하게 느껴질테니까.
또 한편으로 나는 (내 밥벌이를 위하여) 지방대의 소멸을 걱정하고, 이 동네의 소멸을 걱정한다.
젊은이들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동네는 지역 경제가 잘 돌아가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활력이 없다.
할매, 할배들만 모여있는 작은 동네를 어슬렁거릴 때면, 묘한 슬픔과 죽음의 그림자가 느껴지기도 한다.
경로당의 어르신들이 다 떠나고 난 뒤에 이 작은 마을은 어떻게 될까. 이미 빈집이 가득한 동네들이다.
그럼에도 인생에서 기회를 위하여, 그리고 지긋지긋한 가부장제를 벗어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대도시로 나가보라고 학생들에게 권해야 하는 것인지(많은 부모들은 자식을 곁에 두고 싶어하고 멀리 나가라고 권하지 않을테니까.) 공무원 시험이나 임용 시험 등 이곳에서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기반을 찾으라고 해야하는지 고민스럽기만 하다.
IP : 121.160.xxx.11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펌글
    '22.4.6 1:21 PM (121.160.xxx.11)

    원글
    https://www.facebook.com/sabina.seo/posts/10219429509801146

  • 2. ...
    '22.4.6 2:11 PM (39.7.xxx.129)

    저도 타지에서 학생들 가르치는 입장이라 공감이 많이 되네요

  • 3. como
    '22.4.6 3:49 PM (182.230.xxx.93)

    저도 공감200 프로요...같은 대한민국안에 서로 다른모습
    각자 자기가 살아가는 방식이 맞다고 생각하는바이기에 돌아다녀본 입장에서 가치관 혼란 무지무지 옵니다.ㅋㅋ
    하물며 대화도 안 통해서 입을 다무는게 차라리 낫다는....
    뇌구조가 서로 다른 종족들의 만남이라고 해야하나...

  • 4. 펌글
    '22.4.6 4:06 PM (121.160.xxx.11)

    대체로 잘 모르는 상황에 대해서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하는 글이 저는 좋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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