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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진달래꽃

조회수 : 548
작성일 : 2021-12-16 08:58:30

아버지와 엄마는 늘 가난했다.


가난해서 집안의 큰 행사에 두 분이 같이 참석할 수가 없었다. 차비가 부족해서 였다.


아버지의 여섯형제 모두 부부가 참석한 잔치사진에는 늘 아버지만 있거나 엄마만 있었다.


아버지 형제들을 큰아버지. 큰어머니. 작은 삼촌. 작은 숙모. 이렇게 짝을 지어 찾다보면 우리 부모님만 외로이 아버지 혼자 계시거나 엄마만 혼자 사진 속에 있어서 마음이 안 좋았다.


한 해는 엄마가 아이를 낳고 병이 났다. 병이 나도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했다.


엄마는 너무 많이 아파서 온 몸이 퉁퉁 부었는데 그 때 엄마에게는 돈이 조금 있었다.


다가오는 할머니의 환갑에 금반지를 해 드리려고 엄마가 조금씩 모은 돈이었다.



아버지는 엄마에게 그 돈을 달라고 했다. 그 돈으로 병원에 가자고 했다. 엄마는 울면서 안된다고 했다.


다른 형제들은 다 금반지를 사 올텐데 엄마만 빈 손으로 갈 수 없다고 했다.


엄마는 그 돈을 내놓지 않고 울었다. 화가 난 아버지가 엄마에게 퉁퉁 부은 얼굴이 세상에서 제일 보기 싫다고 화를 냈다


. 아직 어렸던 엄마는 그 말이 너무 오랫동안 가슴아팠다고 했다. 남편에게 그런 말을 들어서 엄마는 너무 슬펐다.



두 분은 너무 가난했다. 그렇게 가난했는데 드디어 집을 샀다. 노란 대문이 있는 집이었다.



방이 세개 있고 마당도 있었다. 그 집을 사고 나서 배를 타던 아버지는 집을 떠나게 되었다.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객지>에서 직장을 다니시고 우리는 <우리집>에 살았다.


저녁에 골목에서 노는데 친구들의 아버지는 퇴근을 하는데 우리 아버지는 오지 않았다.


우리는 <연산동>에서 아버지 없이 늘 우리 다섯만 살았다. 밤이 되면 엄마는 늘 아버지가 안 계셔서 무섭다고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를 지켜줄 사람이 없어서 엄마는 어둠 속에서 자는 우리를 보며 혼자 깨어있곤 하셨다고 했다.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나면 무서웠다고 했다.


아버지는 6개월에 한번 집에 오셨고 집에 오시면 일주일정도 방에서 잠을 주무셨다.


아버지 주무시니까 조용히 하라고 엄마가 말씀하셨다.


오후가 되면 일어난 아버지가 학교에 다녀온 나에게 산에 가자고 하셨다.


아버지는 가게에 가서 가장 비싼 부라보콘을 사 주시고 내 손을 잡고 산으로 산책을 가신다.


그리고 언덕위에 도착하면 나에게 구구단도 시키고 노래도 시키셨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손을 잡고 오래 서 계셨다.



2학년 때 비가 오는 오후였는데 부모님들이 복도에 막 서 계셨다.


거기에 우리 아버지도 있었다. 아버지는 키가 크고 얼굴이 검었다.


나는 어색해서 어쩔 줄 몰라 아버지에게서 좀 멀리 떨어져 왔다갔다 하다가 친한 친구에게 <우리 아버지야>하고 말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언니 교실은 어디냐>고 물으셨다. 처음이었다. 아버지가 학교에 오신 것은.


아버지는 언제나 멀리에 계셨다. 그렇게 가까이에 계시니 이상했다.


내가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어도 아버지는 <객지>에 계셨다. 아버지의 직업이 그러했다.


아버지는 배를 타셨고 배는 늘 멀리에 있었다.


아버지는 친구들의 아버지처럼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오지 않으셨다.


친구의 아버지가 뚜벅뚜벅 퇴근하는 모습을 골목에서 놀다가 지켜보곤 했다.


어디선가 우리 아버지도 과자봉지를 들고 뚜벅뚜벅 걸어오실 것만 같아서 골목끝을 바라보곤 했다.



내가 여고생일 때 아버지의 배가 난파를 당했다.


폭풍우가 치던 밤이었다.


칠흙같이 어두운 밤에 아버지는 바다로 떨어졌다.


비가 쏟아지고 앞을 분간하기 어두운 밤이었는데 아버지는 헤엄을 쳐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아버지는 그 때 아무도 생각나지 않았고 막내딸이었던 내 생각만 났다고 했다.


내 얼굴이 그 날 밤 그 어두운 바다에 환하게 떠올랐다.


아버지가 그 날 그 자리에서 돌아가시면 더이상 환하게 자라지 못할 내 얼굴을 떠올리자


아버지는 이상할 정도로 힘이 나서 그 날 밤 끝없이 헤엄을 쳐서 어딘가에 닿을 수 있었다고 했다.


평생을 아버지와 엄마는 떨어져 사셨다. 견우와 직녀처럼.


가난한 견우와 가난한 직녀는 네 명의 아이를 낳았고 그 때부터 가난한 견우와 가난한 직녀는


아버지와 엄마로만 삶을 살았다.




내가 스무살이 되었을 때. 학교에 다닌 적이 없었지만 시를 좋아하셨던 엄마는


엄마가 평생 지니고 계셨던 1962년도판 <진달래꽃>을 나의 스무살 생일선물로 주셨다.



엄마가 글자를 모르셨기때문에 아버지가 카드를 대신 적어 주셨다. 책에는



엄마가 처녀때 보던 시집을 선물로 주노라. 라고 아버지의 글씨가 적혀 있었다.


글씨를 모르지만 시를 좋아했던 엄마는 특히 김소월의 시를 좋아하셔서 어린 나에게



먼 훗날 당신이 나를 찾으시면 그 때의 내 말은 잊었노라. 라는 시를 많이 들려주셨다.


그래서 학교에 가서 김소월의 시을 배우면 낯이 익었다. 시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페이지페이지마다 엄마가 들려주시던 김소월의 시가 가득 들어있었다.


엄마는 소중한 건 모두 나에게 주셨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가난했던 아버지와 가난했던 엄마는 평생을 떨어져 살면서 자식을 키웠다.


손발이 부르트도록 일을 해서 먹이고 입히고 공부를 가르쳤다.


막상 자신들은 평생을 떨어져 살아야 했는데.


아버지와 엄마가 떠나신지 오래되었다.


이제 생각을 하는 날보다 하지 않는 날이 더 많다.


그래도 밤 하늘 어딘가의 아버지 견우별과 엄마 직녀별이 지금도 환하게 반짝이고 있을 것 같다.


아버지와 엄마가 지금도 나를 보고 있을 것 같다. 정말 좋은 부모님이셨다.


그렇게 가난했는데. 정말 최선을 다해 삶을 꾸리셨다.




오래되고 소중한 책 진달래꽃을 보며 아버지와 엄마를 떠올려 본다.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저 산에도 가마귀 들에 가마귀


서산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IP : 211.203.xxx.17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눈물이
    '21.12.16 9:12 AM (106.101.xxx.100)

    원글님 늘 건강하세요

  • 2. 찬물을
    '21.12.16 9:17 AM (125.15.xxx.187)

    끼얹는 소리 같지만
    원양어선을 타면 월급이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육지에서 직장생활을 못해요 .
    월급이 비교가 안되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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