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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은 본래 세습직이었으나, 1894년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폐지됨으로써 세 부류로 분화했습니다. 기생의 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가무와 악기 연주를 제대로 배운 무리가 1패, 기생노릇을 그만두고 부잣집 첩이 되었다가 쫓겨나거나 제발로 나와 다시 기생노릇을 하는 무리가 2패, 기생 딸이 아닌데도 이런저런 이유로 기생노릇을 하는 무리가 3패였습니다. 3패를 ‘시곡 기생’이라고도 했는데, 이들이 지금의 수표교 동쪽 일대인 ‘시곡(詩谷)’에 모여 있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입니다. 1패와 2패는 가무와 연주의 전문가들이었으나 3패는 젓가락이나 두들기는 정도였습니다. 1908년 일제는 3패를 ‘창기(娼妓)’로 분류했습니다. 이후 3패는 ‘기생 대접’을 제대로 받기 위해 가무와 연주를 열심히 배워 익혔습니다.
1920년대 초, 어느 기업의 연회석상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기생을 더 불러 오라는 주최 측의 요구를 받은 요릿집 주인은 3패 기생들을 불렀습니다. 3패 기생들이 방에 들어오자 1패 기생들이 ‘천한 것들과 자리를 함께 할 수 없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이에 분개한 3패 기생들이 1패 기생들에게 달려 들어 패싸움을 벌였습니다. 동아일보는 이 사건을 “기생과 창기의 계급투쟁”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습니다.
저 시절의 젓가락이 요즘의 탬버린쯤 될 겁니다. 선관위가 ‘탬버린’에 대해 언급하는 것도 규제한다는 믿기 어려운 소문이 돌기에, 문득 생각나서 적어본 옛 이야기 한 토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