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날 밤 달을 보러 마당에 나갔습니다.
제주의 밤하늘이 어두워서일까요?
아니면 제주의 달은 원래 그런 걸까요?
전 평생 저렇게 자신감 넘치는 달은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 봤던 달은 뭔가 은은하고 조용조용한 내성적 성격인 것 같았는데,
오늘 보름달은 허리에 손을 얹고 가슴에서 빛을 뿜어 내는 히어로 같습니다.
달이 자존감이 대단해 보이더군요.^^
너무 놀래 소원 비는 것도 잊고 바라 보았네요.
잊었던 소원을 빌고 들어와 그렇게 추석날이 마감되었습니다.
억지로 눈을 뜬 아침입니다. 댕댕이가 깨웠어요...
우리 댕댕이 털을 좀 정리해주기로 합니다.
푸들이라 털이 참으로 잘 자랍니다. 무궁무진 영원하게!
털이 저렇게 자라 있는 상태는 마치 털복숭이 인형처럼 귀엽긴 하지만, 잘 만져보면 뭉친 곳도 있고 입가랑 눈가에 털은 위생상에도 안 좋기도 하거든요.
특히 발바닥 털이 자라서 방바닥에서 자꾸 미끄러지더라구요.
털을 정리해주고 목욕도 씻겼습니다. 바다로 산으로 다녔으니 할 때도 된 듯 합니다.
저렇게 미용하고 목욕하면 세상 세상 저렇게 새초롬할 수가 없답니다. ^^
댕댕이 목욕용 수건들을 빨아서 마당 빨랫줄에 널었습니다.
빨래를 탁 털어서 빨랫줄에 널어줄 때 햇살이 내리쬐고, 바람이 지나가는 것이... 이게 뭐라고 이렇게 좋을까요?
그래도 아마 빨래가 많으면 짜증나겠죠?
어제 쉬어 줬으니 오늘은 오후에 저지 오름을 가볼까 합니다.
지도를 열어 동선을 보니.... 점심 먹고 천천히 가도 해질녘의 새별 오름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지 오름이 있는 동네는 카페도 많고, 꽤 번화하더군요.
저지 오름은 깊은 숲길입니다. 그래서 덥지 않고 좋았습니다. 비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숲의 향기도 진하게 나더군요.
저는 정상까지 오르지는 않고 적당한 지점에서 앉아 놀다가 되돌아 내려왔습니다.
제가 정상정복을 별로 고집하는 편이 아니라서요.
저지 오름에서 새별 오름으로 이동하는데, 내비게이션에서 최단거리를 선택했습니다...
새별 오름을 열 번쯤 가본 것 같은데 한 번도 지나지 않은 도로로 이동을 하는 것 같습니다.
최단거리 코스는 새별 오름 공동묘지를 지나는 동선이군요...
밤도 아니고 특별히 무서울 것은 없었지만....
길이 차 한 대가 겨우겨우 지나가는 스키니에다가 구불구불....
제 걱정은 마주 오는 차를 만나거나, 이대로 길이 끊겨버리면 차를 돌릴 방법이 없어 보이므로 그것이 무서웠습니다. 이런 s자 코스 후진은 못합니다. 절대로!!!
가슴 졸이며 나아갔더니 다행히 주차장과 연결되어 있네요..
앞으로는 내비의 추천을 겸허히 받아들여야겠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새별 오름을 다른 방향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긴 했습니다. 당황해서 제대로 즐기지는 못했지만 말입니다.
저의 상상대로 새별 오름은 해질녘이 훨씬 더 좋았습니다. 새벽은 아직 가보지 않았지만...
대낮보다는 해질녘입니다. 햇살이 비스듬히 비춰주니 억새는 그냥 하얀 꽃밭인 것처럼 보였답니다. 그리고 이 장면의 주인공은 새별 오름이랍니다. 오름 안으로 올라가지 마시고 주변의 언덕길로 올라가서 새별 오름을 바라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정상정복에 무게중심이 있으시다면 어쩔 수 없지만요...
새별 오름 주변에 보면 언덕길들이 여러 갈래 있거든요. 그 길들 중 한곳으로 올라가서 새별 오름을 바라보면... 마치 결혼식의 화동 같기도 하고, 청초한 신부 같기도 하고, 정말 너무너무 사랑스럽답니다.
오늘은 바람도 적당히 불어서 시원하기까지 했지요..
이 시간에 오길 정말 잘했다고 스스로에게 칭찬해줬습니다. 제가 도착한 시간은 대략 5시경이었습니다. 언덕길 어디쯤에 주저앉아서 사진도 찍고 한참을 놀다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캠핑용 접이식 좌식의자를 하나 항상 들고 다니는데, 이게 가볍고 부피도 적어서 들고 다니다가 적당한 곳에 앉아 있기 정말 좋답니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장소가 있으면 주저앉아 노는 거지요. 궁금해 하실 분이 분명히 계실 테니, 그라운드체어로 찾아보시라고 알려드립니다. 다리가 없이 바닥에 앉는 구조로 된 것입니다. 가격도 만얼마밖에 안하거든요.
저는 지금 숙소 거실에 소파가 없는 마루라서 TV시청할 때도 애용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하루를 보냈습니다. 점점 뭔가 드라마틱한 요소가 없어지고 심심한 일상이 되어가고 있지요? 저는 며칠 여행이 아니라서 계속 드라마틱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럴 수도 없구요. 그냥 이렇게 슴슴한 매일 매일을 보내는 게 좋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