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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ㅡ 가족전체가 대한민국 최고의 건국훈장을 받은 명문가
기레기아웃 조회수 : 1,352
작성일 : 2021-08-18 22:05:51
https://news.v.daum.net/v/20210817170121020
홍범도 장군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
https://news.v.daum.net/v/20210225085431194
홍범도 장군 아들·부인 건국훈장 애국장 받는다
1892년 태어난 홍양순 선생은 1907년 함남 북청에서 홍범도 의병부대에 들어가 일본군과 교전하고, 1908년 함남 정평에서 일본군과 전투 중 순국했다.
단양이씨는 1908년 3월 함남 북청에서 남편 홍범도의 의병활동과 관련해 체포돼 취조를 받던 중 심한 고문으로 숨졌다.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는 이들의 공적은 독립기념관에 소장된 '홍범도 일지'(이인섭 필사본, 1958) 등의 자료를 통해 확인됐다. 보훈처에 따르면 '홍범도 일지'에는 "그때 양순은 중대장이었다. 5월 18일 12시에 내 아들 양순이 죽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보훈처는 "홍범도의 부인과 아들이 의병부대에 참여하고 이 과정에서 순국하는 등 독립운동이 한 인물뿐 아니라 전 가족의 숭고한 희생 속에 진행된 사례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저런 명문가에서 후손이 끊어져 버렸으니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ㅠㅠ
홍범도 장군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
https://news.v.daum.net/v/20210225085431194
홍범도 장군 아들·부인 건국훈장 애국장 받는다
1892년 태어난 홍양순 선생은 1907년 함남 북청에서 홍범도 의병부대에 들어가 일본군과 교전하고, 1908년 함남 정평에서 일본군과 전투 중 순국했다.
단양이씨는 1908년 3월 함남 북청에서 남편 홍범도의 의병활동과 관련해 체포돼 취조를 받던 중 심한 고문으로 숨졌다.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는 이들의 공적은 독립기념관에 소장된 '홍범도 일지'(이인섭 필사본, 1958) 등의 자료를 통해 확인됐다. 보훈처에 따르면 '홍범도 일지'에는 "그때 양순은 중대장이었다. 5월 18일 12시에 내 아들 양순이 죽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보훈처는 "홍범도의 부인과 아들이 의병부대에 참여하고 이 과정에서 순국하는 등 독립운동이 한 인물뿐 아니라 전 가족의 숭고한 희생 속에 진행된 사례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저런 명문가에서 후손이 끊어져 버렸으니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ㅠㅠ
IP : 220.71.xxx.170
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기레기아웃
'21.8.18 10:06 PM (220.71.xxx.170)2. ㅡㅡ
'21.8.18 10:10 PM (223.38.xxx.30)이렇게 여러 순국선열의 피로 지켜진 나란데
교이쿠같은 사쿠라가 세금으로 호의호식한다니
피가 거꾸로 솟을려고 합니다.3. ㄸㅗㅇ덩어리들
'21.8.18 10:25 PM (39.7.xxx.115)조중동
국민의힘
검찰
판사들
잘처묵, 잘사는데.... ㅠㅠ4. 부인
'21.8.18 10:26 PM (39.7.xxx.115)일본놈의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돌아가심
5. 너무 어림
'21.8.18 10:35 PM (61.254.xxx.178) - 삭제된댓글아드님이 16살에 돌아가셨어요, 아직 애긴데 ㅠㅠ
6. 누가 짐승인가
'21.8.18 10:41 PM (61.254.xxx.178) - 삭제된댓글이렇게 여러 순국선열의 피로 지켜진 나란데
교이쿠같은 사쿠라가 세금으로 호의호식한다니
피가 거꾸로 솟을려고 합니다.
2222222222222222
만약 바지사 지 놈이 장사같은 걸 해서 지 손으로 벌어먹는 놈이고, 지가 이뻐서 황까무라를 자기 가게 사장을 시키든 회장을 시키든 하면 누가 관심이나 주겠어요, 세금이 투입되는 공적인 자리에 무자격자를 내리 꽂으니 누구나 반발하는 거지요, 황까무라는 천부인권을 침해당한 양 독이 올라서는 어이상실, 콧구멍이 두 개니 숨을 쉬고 삽니다ㅠㅠ7. 독립운동가집안
'21.8.18 10:48 PM (1.231.xxx.128)홍범도장군, 홍양순 그리고 부인이신 단양이씨 감사합니다
8. 기레기아웃
'21.8.18 11:16 PM (220.71.xxx.170)전우용 샘 트윗 ㅡ
1945년 11월 23일에 환국한 백범 김구는 그 즉시 일본으로 사람을 보내 순국 의사들의 시신을 찾도록 했습니다.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3의사의 유해가 국내로 돌아온 것은 이듬해 6월 3일의 일이었습니다. 김구는 직접 부산에 내려가 현지에서 추도식을 지낸 후 유해를… https://t.co/PLLzjeWu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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