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너무 더워 엄두가 안 나서, 어제 저녁, 오늘 저녁 동네 마트에 다녀왔습니다.
아파트 입구에 있는 경비실 문이 열려 있더라고요.
경비실에 에어컨이 없는 줄 알고 가까이 가서 봤더니 에어컨은 있는데, 아주 낡은 선풍기만 돌고 있어요.
왜 에어컨 안 트시냐고 했더니, 괜찮다고.
아니다, 지금 33도다. 밤이라도 더우니 어서 트시라고 말씀드려도
괜찮다고 말을 아끼시더라고요.
(저는 새벽 출근, 늦은 퇴근이라 경비아저씨와 대면할 일이 없었습니다)
오늘도 혹시나 해서 봤더니 다른 아저씨(교대) 땀을 뻘뻘 흘리고, 어제와 같은 상황.
왜 에어컨 안 트시냐고 했더니 대답을 안 하세요.
혹시 누가 못 틀게 했냐고 여쭸더니 대답을 얼버무리시기에 다시 여쭸더니,
경비실 바로 옆동에 에어컨 없는 세대가 10세대 정도 있는데,
입주민도 에어컨이 없는데 경비실에서 에어컨 트는 건 안 된다고 했답니다.
엄연한 근무시간인데, 에어컨 트는 건 안 된다고 했대요.
세상에나...
언제부터 그랬냐고 여쭸더니, 작년부터 그랬다는 거예요.
뉴스에 나오는 고약한 아파트 주민 기사 나올 때마다 정말 나쁜 사람이라고 흥분(?)을 했는데,
우리 아파트 단지가 그런 고약한 아파트였습니다.
경비 아저씨께서는 본인이 말을 해서 분란 일어날까봐 말을 아끼시는데,
아니다, 자기 가족이라고 생각해야지. 본인 집에 에어컨 없다고 경비실 에어컨 못 틀게 하는 게 말이 되냐고.
소소하게 흥분하고, 당장 내일 관리사무소에 연락해보겠다고 했어요.
그런 말이라도 해줘서 시원하다고, 됐다고, 우리는 됐다고 하시는데...
교대 하시는 다른 아저씨께서 오시더니,
아니다, 에어컨 바람이 약해서 안 트는 거라고 극구 변명(?)을 하시더라고요.
저녁에도 30도가 넘는, 숨만 쉬어도 땀이 흐르는, 더구나 좁은 경비실에 무슨 바람이 들어가겠나요?
에어컨 없는 입주민은 더운 바람이라도 맞바람도 있고, 시원한 옷이라도 입을 수 있잖아요.
물론, 경비아저씨는 직장이지요. 그런데 근무시간에 에어컨 못 틀게 하는 건 정말 갑질, 심술로 밖에 생각이 안 되네요.
같은 주민으로서 너무 죄송해서,
집에 들어와서, 미개봉 새 텀블러 씻어서 얼음만 가득, 냉장고에 있던 시원한 식혜 500ml, 목 뒤에 대는 아이스팩 6개.
(더 드리고 싶은데 드릴 게 없어서)
챙겨서 바로 경비실에 가서 전해드렸어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냉장고 냉동실 제대로 되는지, 전기 주전자는 있는지, 24시간 교대라 잠자리는 있는지 (주무시는 곳이 지하인데 에어컨 여부는 못 여쭸네요)
온갖 오지랖 다 떨고 들어왔습니다.
서울 마포구 골짜기 (경기도와 인접) 서민 아파트 104동 에어컨 없는 입주민님!!!
경비아저씨도 우리와 같습니다.
더위 느끼십니다.
고약하게 그러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