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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여 살린다'는 설화-- 누더기 된 중대기업처벌법

작성일 : 2021-05-12 22:12:52
김훈-----
대기업이 국민과 국가를

먹여살린다는 자비의 설화가

입법과정의 담론을 지배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은 9일 끝난 정기국회에서 소위원회의 안건으로조차 채택되지 못했다. 거대 양당이 이 법의 필요성을 말로만 외치다가 입법절차를 시작하려니까 무서워서 피해버린 꼴이다.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가중시키거나 이윤 추구를 불편하게 하는 일의 두려움은 한국사회에 토착된 풍토병이다.

대기업이 국민과 국가를 ‘먹여 살린다’는 자비의 설화가 입법 과정의 담론을 지배하고 있다. ‘먹여 살린다’는 이 설화는 이윤과 임금의 관계를 설명하는 경제이론이 아니라 한 시대 전체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자본과 노동의 관계 위에 군림하고 있다.

"‘먹여살리는 자’는

‘감옥에 못 간다’ 소리치고

정치는 이 고함에 화답한다

징역·벌금…껍데기뿐인 법

무엇이 ‘과잉처벌’인가"

이 이데올로기는 노동의 주체성을 부정해서 자본에 복속시키고, 국가의 행정력과 선출된 정치력을 무력화시키고, 더 잘사는 사람들의 존재를 내세워 희생자들을 ‘소수자’로 몰아붙이고, ‘먹여 살리는 자’가 이윤 추구의 과정에서 저지르는 온갖 탈규범적 행태들을 정당화해왔다. 이것은 다수가 신봉하는 미신이다. 밥벌이하다가 죽는 죽음과 불구가 되는 사고를 줄이려는 많은 노력들은 이 미신 앞에서 좌절되었고, 좌절을 거듭할 때마다 미신은 더욱 번창했다.

이번 입법절차의 발단에서부터 정치권은 사용자 단체의 논리를 수긍하고 있는데, 그 핵심은 중대재해의 형사적 책임을 물어서 기업총수에게 실형을 언도하는 것은 ‘과잉처벌’이라는 주장이다.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에서도 사업주가 안전조치를 소홀히 해서 노동자가 사망하면 사업주에게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게 되어 있다. ‘7년 이하’라니까 당연히 ‘7년 이상’은 없을 테지만 ‘7년 이상’뿐 아니라 7개월도 7일도 언도한 적이 거의 없고, 벌금은 ‘1억원 이하’의 범위 안에서 대체로 500만원 정도였다. 법은 껍데기뿐이었다(2018년부터 2019년 사이에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피고인 1065명 중 집행유예 없이 실형을 받은 사람은 21명으로 전체의 2% 정도이고 평균 형량은 9.3개월이다. KBS 2020년 12월6일 보도).

이러니, 중대재해의 기업주 처벌이 과잉처벌이라는 말은 무엇이 ‘과잉’인지 아무런 비교기준이 없다. 이 말은 ‘감옥에 못 간다’고 소리치는 것과 같다. 이것은 ‘먹여 살려주는 자’의 무서운 고함이다. ‘감옥에 못 보낸다’는 정치의 메아리가 이 고함에 화답하고 있다.

‘감옥에 못 가는’ 또 하나의 논리는 노동의 최하위 현장에서 벌어진 사고의 책임을 최상부의 최고경영자(CEO)에게까지 올려서 밀어붙일 법리적 연결고리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CEO는 사고와 무관하다는 주장이다. 이 또한 ‘먹여 살려주는 자’의 논리다. 노동자가 몸으로 당면하는 현장이 최하이고, CEO의 위상이 최상이라는 인식이 이 논리의 기본틀이다. 법은 최하층에서 최상층에 이르는 여러 단계의 아랫부분에서 인과관계의 고리를 끊고 스스로 물러간다. 물러가면서 이 물러감을 다시 논리화한다. 논리 안에 정의는 없고 말의 형식만이 존재한다. 말의 형식이 결국 법제를 이루는데, 국회는 이 위력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노동자들은

돌덩이처럼 떨어진다

부딪히고 깨진다"

내가 이 답답한 글을 쓰는 동안에도, 지식인·분석가·활동가들이 TV에 나와서 이 문제로 특집좌담을 하는 동안에도, 국회에서 권력의 지분을 놓고 악다구니를 하는 동안에도, 노동자들은 고층 공사장에서 떨어져 죽고 있다. 인간의 살아 있는 몸이 한 덩이의 물체로 변해서 돌멩이처럼 떨어진다. 땅에 부딪쳐서 퍽퍽퍽 깨진다. 오늘도 퍽퍽퍽, 내일도 퍽퍽퍽.

IP : 186.111.xxx.69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21.5.12 10:32 PM (121.131.xxx.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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