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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어보 보신분만 스포있어요

스포 조회수 : 2,394
작성일 : 2021-04-03 20:58:31
정약전이 흑산도에 있다가 우이도로 가는데



유배중에 거처를 옮겨도 되나요?


IP : 122.35.xxx.162
1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21.4.3 9:02 PM (122.35.xxx.16) - 삭제된댓글

    전 안 봤는데 높은 관리들은 유배가도 대접받고 좀 자유로왔대요.

  • 2. 정약용도
    '21.4.3 9:06 PM (1.237.xxx.156)

    강진 유배 십몇년동안 주막집에서 시작해서 산방.제자집.다산초당까지 옮겨 살았잖아요.그와중에 주막집딸을 소실로 삼아 딸도 낳음..
    흑산도나 우이도나 이웃한 섬이니 자가격리처럼 방밖으로 나오면 안되는 게 아닌 유배생활에선 가능했었던듯요

  • 3.
    '21.4.3 9:08 PM (1.232.xxx.106)

    헉. 정약용이 딸을 낳았어요?
    귀양 풀리고 한양갈때 소실과 딸은 버리고 갔나요?
    칠십대에 죽기전 부인한테 시써주고
    슬픈날은 잠깐.
    기쁜날이 더 많았다오.
    합환주를 마십시다.어쩌구 저쩌구.이 지랄하더니만.ㅎ

  • 4.
    '21.4.3 9:15 PM (223.62.xxx.173)

    영화보면 형 정약전도 과부랑 살면서 애들도 둘 낳고 살더군요.

  • 5. 스포
    '21.4.3 9:17 PM (122.35.xxx.162)

    정약전도 유배생활중 딸 아들 얻는데
    나중에 그 아들이 대를 잇는다는군요

  • 6. 윗님
    '21.4.3 9:18 PM (116.123.xxx.207)

    그 시대가 첩을 암묵적으로 용인하던 때라
    지금에 비춰보면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긴 한데
    정약용 선생도 유배 중 그런 일 있었다네요
    게다가 이분이 생각보다 잔소리가 엄청
    많으셨다고도 하더라구요

  • 7. 볼려다가
    '21.4.3 9:25 PM (210.221.xxx.92) - 삭제된댓글

    볼려다가
    설땡구 ㅜㅜ

  • 8. 오마이뉴스
    '21.4.3 9:26 PM (110.35.xxx.66) - 삭제된댓글

    정약용이 본가에 올 때 혼자 몸이 아니었다고 한다.
    흔히 이 부문은 전기ㆍ평전에서 빠지고, 연구자들의 각종 논저에도 찾아보기 어렵다. 또 '사실성'에 있어서 정확한 기록으로 정평이 있는 「자찬묘지명」에도 언급하지 않았다. 자식들을 포함 측근들의 기록에도 보이지 않는다
    ...
    임형택 교수가 1999년 서울의 고서점에서 한시 16수를 발견하였다. 여러 가지 필사해 놓은 책 사이에 「남당사(南塘詞)」라는 16절의 한시가 들어 있었다. 필사된 책 중에는 정약용의 『아언각비』의 일부도 끼어 있어서 시중의 화제를 모았다. 「남당사」의 서문이다.

    ▲ 주막집 동문매반가의 주인 할머니와 딸. 다산 정약용이 유배봇짐을 풀 수 있도록 골방을 내어준 은인이다. 사의재 뒷편에 동상으로 서 있다.


    정약용은 강진 유배시절 소실 정씨(鄭氏)를 두었고 홍임(紅任)이란 딸을 낳았다. 정씨는 정약용이 강진에서 처음 머물던 주막집 노파의 딸로 이후 10여 년 동안 지극정성으로 남편을 모셨다고 한다.
    해배되어 본가인 마재로 돌아올 때 정씨는 홍임과 함께 따라 왔으나 정실부인 홍씨에게 내침을 당하여 친정으로 가지않고 남편과 살았던 옛 거처인 다산으로 돌아가 살면서 원망과 사모하는 마음을 노래하였는데 이것이 「남당사」란 것이다. 16절 중 두 수를 소개한다.

    갈 생각만 하는 님 내 마음 슬퍼지니
    밤마다 한 심지 향 하늘에 닿았겠네
    어이 알리 온 집안이 환영하던 그날이
    아가씨 집 운명 외려 기구하게 될 때임을.

    어린 딸 총명함이 제 아비와 똑같아서
    아비 찾아 울면서 왜 안 오냐 묻는구나
    한나라는 소통국도 속량하여 왔다는데
    무슨 죄로 아이 지금 또 유배를 산단 말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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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 '소실 정씨' 모녀의 실체
    김삼웅
    입력 2020. 11. 03. 17:24
    추천해요0댓글 0음성으로 듣기번역 설정글씨크기 조절하기
    [65회] 정약용이 본가에 올 때 혼자 몸이 아니었다고 한다
    [김삼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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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당 안에 걸린 다산 정약용 선생 초상. 안경 낀 모습이 이채롭다.
    ⓒ 전용호

    정약용이 본가에 올 때 혼자 몸이 아니었다고 한다.
    흔히 이 부문은 전기ㆍ평전에서 빠지고, 연구자들의 각종 논저에도 찾아보기 어렵다. 또 '사실성'에 있어서 정확한 기록으로 정평이 있는 「자찬묘지명」에도 언급하지 않았다. 자식들을 포함 측근들의 기록에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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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형택 교수가 1999년 서울의 고서점에서 한시 16수를 발견하였다. 여러 가지 필사해 놓은 책 사이에 「남당사(南塘詞)」라는 16절의 한시가 들어 있었다. 필사된 책 중에는 정약용의 『아언각비』의 일부도 끼어 있어서 시중의 화제를 모았다. 「남당사」의 서문이다.

    다산의 소실이 쫓겨남을 당해 양근의 박생이 가는 편에 딸려 남당의 본가로 돌아가게 하였다. 박생이 호남의 장성에 이르러 부호인 김씨와 은밀히 모의하여 뜻을 빼앗으려 했다. 소실은 이를 알고 크게 곡을 하면서 마침내 박과 결단하여 끊고 곧장 금릉으로 달려가 남당 본가로는 가지 않았다.

    다산의 옛 거처로 가서 날마다 연못과 누대와 꽃나무 주변을 서성이며 근심스런 생각과 원망과 사모하는 마음을 부쳤다. 금릉의 악소배들이 감히 다산을 한 발짝도 엿보지 못했다. 듣고 몹시 서글퍼서 마침내 「남당사」 16절을 짓는다. 가사는 모두 여인의 마음에서 나온 것을 말했을 뿐 한마디도 보탠 말이 없다. 모든 이가 살필 진저. (주석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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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막집 동문매반가의 주인 할머니와 딸. 다산 정약용이 유배봇짐을 풀 수 있도록 골방을 내어준 은인이다. 사의재 뒷편에 동상으로 서 있다.
    ⓒ 이돈삼

    풀이하면 정약용은 강진 유배시절 소실 정씨(鄭氏)를 두었고 홍임(紅任)이란 딸을 낳았다. 정씨는 정약용이 강진에서 처음 머물던 주막집 노파의 딸로 이후 10여 년 동안 지극정성으로 남편을 모셨다고 한다.
    해배되어 본가인 마재로 돌아올 때 정씨는 홍임과 함께 따라 왔으나 정실부인 홍씨에게 내침을 당하여 친정으로 가지않고 남편과 살았던 옛 거처인 다산으로 돌아가 살면서 원망과 사모하는 마음을 노래하였는데 이것이 「남당사」란 것이다. 16절 중 두 수를 소개한다.

    갈 생각만 하는 님 내 마음 슬퍼지니
    밤마다 한 심지 향 하늘에 닿았겠네
    어이 알리 온 집안이 환영하던 그날이
    아가씨 집 운명 외려 기구하게 될 때임을.

    어린 딸 총명함이 제 아비와 똑같아서
    아비 찾아 울면서 왜 안 오냐 묻는구나
    한나라는 소통국도 속량하여 왔다는데
    무슨 죄로 아이 지금 또 유배를 산단 말가. (주석 5)

    정약용은 "하룻밤 지는 꽃은 1천 잎이고 / 우는 비둘기와 어미 제비 지붕 맴돌고 있다 / 외로운 나그네 돌아가란 말 없으니 / 어느 때나 침방에 들어 꽃다운 잔치를 여나 / 생각을 말아야지 / 생각을 말아야지 하면서도 애처롭게 꿈속에서나 얼굴 보고지고." - 1806년에 「아내 생각」이란 시를 짓는 등 부인 홍씨에 대한 정을 못내 그리워 하였다.

    꿈속에서도 접근하려는 여인을 내쳤다는 시를 짓기도 하였고, 1813년에는 부인 홍씨가 혼사 때 입었던 낡은 치마를 보내오자 가위로 잘라서 아들ㆍ딸에게 글과 그림을 그려 주었던 살가운 남편이고 아버지였다.

    그런데 유배지에서 소실을 두었다?

    「남당사」의 작자가 누구냐를 두고 학계 일각에서 논란이 일었다. 다산초당의 은밀한 일을 알고 있는 한 문인일 것으로 추정되기도 하지만, 정약용 연구가 정민 교수는 바로 정약용 본인이라는 주장을 편다. 4가지 논거 중의 하나를 소개한다.

    둘째, 다산 아닌 다른 사람이 이런 시를 지을 수가 없다. 다른 사람이 이 시를 지었다면 그 뜻은 다산의 야박한 처사를 나무라고, 여인의 원망을 동정하는 데 있다. 다산의 제자라면 감히 스승의 소실과 관련된 일을 이렇듯 시시콜콜히 적어 결과적으로 스승을 욕 뵈려 들 수는 없다. 무엇보다 그 내용이 다산만이 알 수 있고, 다산이라야 가늠할 수 있는 사연이다.

    시의 사연으로 보아 모녀가 강진으로 내려간 뒤로도 다산이 그들을 계속 살펴주었음을 알 수 있다. (주석 6)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되었을 때는 40세의 아직 청정한 나이였다. 언제 끝날 지 기약없는 귀양살이 신세에 따뜻한 여심이 곁에 있었고, 두 사람 사이에 홍임이라는 딸이 생겼을 것이다. 오늘의 도덕관념으로는 정약용이 아니라 그의 할아비라도 용납되기 어려운 불륜이지만, 당시는 임금부터가 궁녀를 몇씩이나 두고 양반들은 소실을 당연시하던 시절이다.

  • 9. 이지랄은요
    '21.4.3 9:26 PM (1.237.xxx.156)

    성종도 폐비 윤씨밖에 없는줄 알았는데 후궁만 13명..

  • 10. 다산 소실 관련
    '21.4.3 9:30 PM (110.35.xxx.66)

    정약용이 본가에 올 때 혼자 몸이 아니었다고 한다.
    흔히 이 부문은 전기ㆍ평전에서 빠지고, 연구자들의 각종 논저에도 찾아보기 어렵다. 또 '사실성'에 있어서 정확한 기록으로 정평이 있는 「자찬묘지명」에도 언급하지 않았다. 자식들을 포함 측근들의 기록에도 보이지 않는다
    ...
    임형택 교수가 1999년 서울의 고서점에서 한시 16수를 발견하였다. 여러 가지 필사해 놓은 책 사이에 「남당사(南塘詞)」라는 16절의 한시가 들어 있었다. 필사된 책 중에는 정약용의 『아언각비』의 일부도 끼어 있어서 시중의 화제를 모았다. 「남당사」의 서문이다.

    ▲ 주막집 동문매반가의 주인 할머니와 딸. 다산 정약용이 유배봇짐을 풀 수 있도록 골방을 내어준 은인이다. 사의재 뒷편에 동상으로 서 있다.


    정약용은 강진 유배시절 소실 정씨(鄭氏)를 두었고 홍임(紅任)이란 딸을 낳았다. 정씨는 정약용이 강진에서 처음 머물던 주막집 노파의 딸로 이후 10여 년 동안 지극정성으로 남편을 모셨다고 한다.
    해배되어 본가인 마재로 돌아올 때 정씨는 홍임과 함께 따라 왔으나 정실부인 홍씨에게 내침을 당하여 친정으로 가지않고 남편과 살았던 옛 거처인 다산으로 돌아가 살면서 원망과 사모하는 마음을 노래하였는데 이것이 「남당사」란 것이다. 16절 중 두 수를 소개한다.

    갈 생각만 하는 님 내 마음 슬퍼지니
    밤마다 한 심지 향 하늘에 닿았겠네
    어이 알리 온 집안이 환영하던 그날이
    아가씨 집 운명 외려 기구하게 될 때임을.

    어린 딸 총명함이 제 아비와 똑같아서
    아비 찾아 울면서 왜 안 오냐 묻는구나
    한나라는 소통국도 속량하여 왔다는데
    무슨 죄로 아이 지금 또 유배를 산단 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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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 '소실 정씨' 모녀의 실체
    김삼웅
    입력 2020. 11. 03.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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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회] 정약용이 본가에 올 때 혼자 몸이 아니었다고 한다
    [김삼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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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당 안에 걸린 다산 정약용 선생 초상. 안경 낀 모습이 이채롭다.
    ⓒ 전용호

    정약용이 본가에 올 때 혼자 몸이 아니었다고 한다.
    흔히 이 부문은 전기ㆍ평전에서 빠지고, 연구자들의 각종 논저에도 찾아보기 어렵다. 또 '사실성'에 있어서 정확한 기록으로 정평이 있는 「자찬묘지명」에도 언급하지 않았다. 자식들을 포함 측근들의 기록에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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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의 소실이 쫓겨남을 당해 양근의 박생이 가는 편에 딸려 남당의 본가로 돌아가게 하였다. 박생이 호남의 장성에 이르러 부호인 김씨와 은밀히 모의하여 뜻을 빼앗으려 했다. 소실은 이를 알고 크게 곡을 하면서 마침내 박과 결단하여 끊고 곧장 금릉으로 달려가 남당 본가로는 가지 않았다.

    다산의 옛 거처로 가서 날마다 연못과 누대와 꽃나무 주변을 서성이며 근심스런 생각과 원망과 사모하는 마음을 부쳤다. 금릉의 악소배들이 감히 다산을 한 발짝도 엿보지 못했다. 듣고 몹시 서글퍼서 마침내 「남당사」 16절을 짓는다. 가사는 모두 여인의 마음에서 나온 것을 말했을 뿐 한마디도 보탠 말이 없다. 모든 이가 살필 진저. (주석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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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막집 동문매반가의 주인 할머니와 딸. 다산 정약용이 유배봇짐을 풀 수 있도록 골방을 내어준 은인이다. 사의재 뒷편에 동상으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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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이하면 정약용은 강진 유배시절 소실 정씨(鄭氏)를 두었고 홍임(紅任)이란 딸을 낳았다. 정씨는 정약용이 강진에서 처음 머물던 주막집 노파의 딸로 이후 10여 년 동안 지극정성으로 남편을 모셨다고 한다.
    해배되어 본가인 마재로 돌아올 때 정씨는 홍임과 함께 따라 왔으나 정실부인 홍씨에게 내침을 당하여 친정으로 가지않고 남편과 살았던 옛 거처인 다산으로 돌아가 살면서 원망과 사모하는 마음을 노래하였는데 이것이 「남당사」란 것이다. 16절 중 두 수를 소개한다.

    갈 생각만 하는 님 내 마음 슬퍼지니
    밤마다 한 심지 향 하늘에 닿았겠네
    어이 알리 온 집안이 환영하던 그날이
    아가씨 집 운명 외려 기구하게 될 때임을.

    어린 딸 총명함이 제 아비와 똑같아서
    아비 찾아 울면서 왜 안 오냐 묻는구나
    한나라는 소통국도 속량하여 왔다는데
    무슨 죄로 아이 지금 또 유배를 산단 말가. (주석 5)

    정약용은 "하룻밤 지는 꽃은 1천 잎이고 / 우는 비둘기와 어미 제비 지붕 맴돌고 있다 / 외로운 나그네 돌아가란 말 없으니 / 어느 때나 침방에 들어 꽃다운 잔치를 여나 / 생각을 말아야지 / 생각을 말아야지 하면서도 애처롭게 꿈속에서나 얼굴 보고지고." - 1806년에 「아내 생각」이란 시를 짓는 등 부인 홍씨에 대한 정을 못내 그리워 하였다.

    꿈속에서도 접근하려는 여인을 내쳤다는 시를 짓기도 하였고, 1813년에는 부인 홍씨가 혼사 때 입었던 낡은 치마를 보내오자 가위로 잘라서 아들ㆍ딸에게 글과 그림을 그려 주었던 살가운 남편이고 아버지였다.

    그런데 유배지에서 소실을 두었다?

    「남당사」의 작자가 누구냐를 두고 학계 일각에서 논란이 일었다. 다산초당의 은밀한 일을 알고 있는 한 문인일 것으로 추정되기도 하지만, 정약용 연구가 정민 교수는 바로 정약용 본인이라는 주장을 편다. 4가지 논거 중의 하나를 소개한다.

    둘째, 다산 아닌 다른 사람이 이런 시를 지을 수가 없다. 다른 사람이 이 시를 지었다면 그 뜻은 다산의 야박한 처사를 나무라고, 여인의 원망을 동정하는 데 있다. 다산의 제자라면 감히 스승의 소실과 관련된 일을 이렇듯 시시콜콜히 적어 결과적으로 스승을 욕 뵈려 들 수는 없다. 무엇보다 그 내용이 다산만이 알 수 있고, 다산이라야 가늠할 수 있는 사연이다.

    시의 사연으로 보아 모녀가 강진으로 내려간 뒤로도 다산이 그들을 계속 살펴주었음을 알 수 있다. (주석 6)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되었을 때는 40세의 아직 청정한 나이였다. 언제 끝날 지 기약없는 귀양살이 신세에 따뜻한 여심이 곁에 있었고, 두 사람 사이에 홍임이라는 딸이 생겼을 것이다. 오늘의 도덕관념으로는 정약용이 아니라 그의 할아비라도 용납되기 어려운 불륜이지만, 당시는 임금부터가 궁녀를 몇씩이나 두고 양반들은 소실을 당연시하던 시절이다.

    .....

    https://news.v.daum.net/v/20201103172403530

    오마이뉴스 기사.

    학계서는 아직 인정 받는 사실은 아니군요

    최근 나온 얘기고

  • 11.
    '21.4.3 9:41 PM (1.232.xxx.106) - 삭제된댓글

    정약전이 과부랑 살면서 아들 낳은건 알았는데
    약용은 하도 애처가코스프레를 많이해서
    긴 유배생활동안 학문에 전념하면서
    혼자서 해결?한줄 알았네요.ㅎ
    내가 바보지.
    남자는 좆의 숙주이거늘. 이 진리를 잠시 잊었네요.
    약용은 좀 다른줄.ㅎ
    그나저나 소실 불쌍.
    오늘날과 같은 관점으로 상간녀라고 볼 수는 없고
    어려울때 개털된 늙은 남자 시중들었는데
    버려졌군요. 딸까지 낳았는데도.ㅜㅜ
    본부인 입장에선 자기는 사오십대 독수공방하며
    허벅지찌르고 살았건만
    남편은 유배가서도 어린여자랑 허구헌날 그러다 애까지낳고
    꼴보기싫었겠죠.
    그래도 측은지심으로 품어줄 수는 없었을까.
    이게 다 정약용 때문임.
    두 여자의 고통.
    본가에 데리고 갔는데 마누라 눈치보여 다시 내려보내고.
    마누라는 마누라대로 괴롭고. 하아.

  • 12. ㅇㅇ
    '21.4.3 10:36 PM (112.161.xxx.183)

    본처입장도 기가차고 첩도 어이없고 정약용도 여자 문제는 깔끔하지 못했네요
    데리고 간다고 하던가 허락 못받음 근처에 집을 얻어주던가 이도저도 아니고 뭐에요ㅜㅜ

  • 13. 재미있나요?
    '21.4.3 10:41 PM (175.195.xxx.148)

    너무 보고싶은데 설%# 꼴보기싫어서 갈등 중이여요

  • 14.
    '21.4.3 11:10 PM (1.232.xxx.106)

    저 기사가 사실이라면
    당시엔 첩을 두는게 가능했으니
    첩을 오늘날 상간녀로 볼 수는 없고
    귀양온 서울나리 끈떨어진 중년남자를
    주막집 딸인 젊은 여자가 정성껏 뒷바라지하고 애까지 낳았는데
    결국 버림받은거네요.
    데리고 살려고 서울로 같이 오긴 했는데
    부인이 내쫓아 정약용은 그저 구경만.ㅜㅜ
    그럴거면 첩을 두지 말았어야지.
    책임도 못질 일을 왜 하는지.
    부인은 부인대로
    사오십대 생과부로 독수공방했는데
    남편은 젊은여자랑 살다가 애까지낳고.ㅜㅜ
    열받아서 첩을 쫓아냄.
    이해는 가지만 그 여자도 불쌍한 인생인데
    한집에서 못살겠음 근처에 집이라도 얻어 살라고 할 수 없었을까.
    이래저래 여자들만 고통받고.
    참 구질구질하네요.

  • 15. 추천해요
    '21.4.3 11:14 PM (121.162.xxx.29) - 삭제된댓글

    개봉일에 보고 싶었는데 설씨도 좀
    그렇고 해서 미루다가 봤는데 영화
    좋았어요.
    동생 약용보다 더 과격한 방식으로
    천주교를 받아들인 정약전의 고뇌가
    잘 그려졌고
    어부 청년 창대를 통해 보여진 사회상도
    좀 아팠던..
    흑백이 아니라 컬러로 봐도 화면 좋았을 것
    같아요. 왕의 남자 이후 최고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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