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vs 이재명>
2020년 6월 당시 이낙연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은 페이스북에 "기본소득제 취지를 이해한다. 그에 관한 찬반 논의도 환영한다"고 썼다. 그는 2월2일 "(기본소득은) 알래스카 빼고는 그것을 하는 곳이 없고 기존 복지제도의 대체재가 될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한마디로 이재명표 기본소득을 걷어찬 셈이다.
이재명은 곧바로 반격했다. 그는 2월6일 트위터에 "다른 나라가 안 하는데 우리가 감히 할 수 있겠냐는 사대적 열패의식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열패(劣敗)는 자신이 속한 정당 대표에게 쓸 단어가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곧바로 "이 대표는 명색이 우리가 속한 민주당의 대표다. '사대적 열패의식'이라는 반격은 비판이 아니라 비난으로 들린다"고 꼬집었다. '열패'라는 단어는 두고두고 말썽을 부릴 소지가 크다.
이 지사는 2월7일에도 페이스북을 통해 "필요한 정책이라면 외국에 선례가 없다며 지레 겁먹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가능한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길을 찾아내는 정치인의 일"이라며 이 대표에 대한 반격을 멈추지 않았다. 내가 이낙연 대표라면 무지 신경이 거슬릴 것 같다.
<홍남기 vs 이재명>
사사건건 대립하는 두 사람은 기본소득을 놓고도 한 치의 양보 없이 맞섰다. 홍 부총리는 작년 6월 서울 프레스센터 강연에서 "전 세계에 기본소득을 도입한 나라가 없다"고 말했다. "지금은 복지체계를 어떻게 개편할 것인지를 논의할 때"라는 것이다. "의료 등 어려운 사람에 대한 지원을 다 없애고 전 국민 빵값으로 일정한 금액을 주는 것이 더 맞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기본소득 주장은 생뚱맞다는 것이다.
이 지사는 지난해 10월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며 직격탄을 퍼부었다. 이어 12월엔 "전쟁 중 수술비 아낀 것은 자랑이 아니라 수준 낮은 자린고비"라고 홍 부총리를 비꼬았다. 경제부총리와 경기 지사가 이렇게 대놓고 싸우는 건 처음 본다.
▶다른 나라는 어땠나
미국 알래스카부터 보자. 이낙연 대표가 "알래스카 빼고는…"이라고 한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세계에서 기본소득제를 제대로 실시하는 곳은 사실상 알래스카주가 유일하다. 자원이 풍부한 알래스카는 1976년 주헌법에 따라 알래스카영구기금(APF·Alaska Permanent Fund)을 만들어 석유에서 발생한 수익을 조건없이 주민들에게 나눠준다. 만인의 백과사전 위키피디어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기금은 640억달러(약 72조원) 규모로, 해마다 평균 1600달러(약 180만원)을 모든 주민에게 공짜로 준다.
하지만 알래스카 사례는 참고용일뿐 우리가 따라할 모델은 아니다. 알래스카는 땅은 넓지만 인구는 71만명 조금 넘는다. 서울 송파구 인구(약 67만명·2021년 1월 기준)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자원 덕에 미국 50개 주 가운데 소득은 8위권이다. 알래스카 모델은 중동의 작은 석유부국한테나 어울린다.
주요 선진국 가운데 기본소득 실험을 제대로 한 나라는 핀란드가 있다. 유하 시필레 중도당 대표가 이끄는 우파연합이 2년(2017년 1월~2018년 12월)에 걸쳐 기본소득을 실험했다. 장기 실업자 2000명을 임의로 뽑아 매달 560유로(약 76만원)를 주었다. 560유로는 실업수당과 비슷한 금액이다. 기본소득 실험에선 실직자가 새 직장을 구하든 말든, 빈둥빈둥 놀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다. 결과는 실망스럽다. 가장 바란 게 구직효과인데, 기본소득을 받지 않는 그룹과 별 차이가 없었다. 일자리는 늘지 않았고,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스위스는 2016년 국민투표에서 민의를 물었다. 유권자 77%가 반대했다. 찬성론자들은 기본소득을 헌법에 넣으려 했으나 공감을 얻지 못했다.
▶증세걸림돌
이재명표 기본소득의 최대 장애물은 증세다. 이 지사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끊임없이 증세 필요성을 강조한다. 말은 쉽지만 실행은 어렵다. 오죽하면 증세를 정치인의 무덤이라고 했을까.
지금도 집을 가진 이들은 재산세, 종부세로 부글부글 끓는다. 집으로 번 돈을 다 세금으로 내라고 하면 "예, 알았습니다"하면서 순순히 응할까? 턱도 없다.
조세저항은 이재명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설득력 있는 해법을 내놓지 못하는 한 기본소득은 신기루에 불과하다.
▶전례가 없다
기본소득도 모델이 없다. 이 지사는 '사대적 열패의식'을 버리라고 하지만 소주성 결과를 뻔히 아는데 어떻게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