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한테 1-2년 내로 돌려드릴테니 5천만 좀 빌려달랬더니, 사는 집은 담보대출 못 받아준다, 돈고 없고, 노후에 집이라도 있어야 부부가 살지 어쩌구 하시더군요. 그러려니 하고 싼 데로 들어갔어요.
이번에 제가 그 집을 세입자 내보내고 입주하는데 며칠 동안 몇 억 목돈이 필요했어요. 그간 모은 돈을 다 끌어모아도 몇 천이 모자랐는데 절친이 두 말 않고 목돈 전체를 입금해주네요. 무슨 일이 있어서 대출을 많이 받아놨는데 당장 쓸 돈 아니라구, 이 계좌 저 계좌에서 끌어모으려면 귀찮을테니 걍 통째로 쓰고 달라구.
이자는 줘도 안 받고 (무슨 일 있을 때마다 축하금 조로 목돈 주면 꼭 그걸로 둘이 같이 밥먹었어요) 밥이라도 거하게 살까 했더니만 어디 가자고 하곤 그 식당도 자기가 계산했어요.
엄마는 알고보니 살던 아파트 아들 밑으로 다 털어넣고 5년 전에 이미 껍데기만 남았었는데, 저한테는 그걸 숨기고 대출 5천도 못 받아준다고. 때마다 내려가서 챙겨드리고 돈 드리고 한 딸은 외면하고 아들만 죽도록 밀어줬네요. 아들이 딸보다 시원치 않으니 안쓰러운 마음에 그러나보다 했지만 이 정도로 탈탈 털어서 아들 준 줄 몰랐어요. 그나마 털어 준 보람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누가 들어도 말도 안 되는 헛소리 하는 걸 아들이라고.
참 나이 드니 가족이 친구보다 못 한 때가 오네요.
이번에 저희 집에 또 다른 친구가 머무르고 있는데 얘도 참 좋은 친구거든요. 외국서 직장 다닐 때 항상 저를 불러서 자기 집에나 호텔에 재워주고 밥 먹이고 차 태워서 여행 데리고 다녀 주고. 그러니 저도 얘한테는 어지간히 퍼줘도 아깝지가 않아요. 얘 식성 아니까 좋아할 만한 걸로 냉장고 미리 채워두고 집도 준비해놓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