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604년
노자라는 철학자는 도덕경(The Way)이라는 작은 책을 펴낸다.
전설에 따르면 노자는 그의 마지막 일생을 중국의 한 작은 마을에서 보내게됐다고 한다.
노자는 평생토록 인생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며 살아왔고,
고타마 시달타(Gotama Siddhartha : 석가모니 : 부처)처럼,
본인의 자아와 전생을 똑바로 응시하고 인지하며 살아왔다.
이렇게 함으로서 작은 부분이나마 능력과 기억을 되찾았고 마침내 영생을 되찾은 것이다.
나이가 들자 노자는 산 속으로 들어가 육신을 떠나기로 마음 먹는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노자가 세상을 뜨기 전 본인이 깨달았던 인생의 철학과 가르침을 글로 남겨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노자가 얘기하는 영혼을 되찾는 법(The Way)의 짧은 글을 소개한다.
그것을 보는 자는 볼 수 없을 것이며(억지로 보려하면 보이지 않고)
그것을 듣는 자는 들을 수 없을 것이고(억지로 들으려고하면 들리지 않을 것이며),
그것을 잡으려는 자는 잡을 수 없을 것이다(억지로 잡으려들면, 잡히지 않을 것이다).
무형의 존재, 움직임이 없는 움직임(보이지 않는 존재, 보이지 않는 움직임=통합의식 곧 영혼을 일컫는다),
영원 불멸한 영혼이야 말로 모든 삶의 원천이다.
영혼은 바로 자신이다(그러므로, 자신의 본모습은 육이 아니라 영이다).
벽은 생겨나고 방을 만든다. (창조주에 의해 무의 공간에서 창조물이 생긴다.)
하지만 그 안에 생겨난 공간이 가장 중요한 법이다. (창조물보다 수 많은 작업이 가능한 창조의 공간이 더 중요한 법이다.)
그릇은 진흙으로 만들어진다. (창조물은 재료의 결과물일 뿐이다.)
하지만 그릇 안의 생겨난 공간이 가장 쓸모있는 법이다(무의공간에서 이미 창조된 물질이나 형상보다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이 더 쓸모있는 법이다).
행동은 어떤 무형의 물질에 무의 힘이 가해져서 생겨나는 것이며(왜냐하면 행위나 물질의 형상은 인간의 의식이 물질의 의식에 결맞음[주파수맞춤]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이어서/창조는 의식이 무의식을 사용하는 힘이어서),
이는 무형의 영혼이 모든 삶의 원천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인간의 영혼은 만물의 창조주와도 같은 것이다.)
사람은 육신이 있기에 고통을 받는다. (자유로운 영혼이 육신에 갇혀 경험을 하는 존재인데)
만약 육신이 없다면 고통도 받을 수 있겠는가(인간의 본래의 모습을 깨닫지 못하는가)?
사람은 그의 영혼보다 육신에 신경을 쓰게되면(본래의 모습보다 허상에 마음을 쓰면),
그는 육신이 되어버릴 것이고 영혼의 길은 영영 잃게 되는 것이다. (의식이 원하는 방향대로 이루어질 것이니 그것이 굳어지면 자신의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이다.)
자아와 영혼은 환상을 자아낸다. (의식이 창조하는 것은 환상이니)
인간의 가장 큰 환상은 현실이 환상이 아니라고 믿는 것이다.
환상을 창조하는 자는 현실보다도 더한 현실을 창조할 것이고(의식이 빚어내는 환상은 우리가 느끼는 현실보다 더한 현실일 것이고),
영혼의 길을 따라가는 자는 우주의 길 또한 찾아낼 것이다(이 섭리를 알고 내면의 주체를 따르는 자는 도를 터득한 것이며 영원히 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