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치않은 집콕 생활을 수개월 하다보니 의도치 않게 장금이 놀이나 하게 되었습니다.
퇴근시간이 다소 늦은 자영업자라 집밥은 기껏 저녁 한끼이나 제대로 먹는 한끼가 고작 그뿐이라 집콕 하는 동안은 열심히도 만들어 먹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젠 1인분 냄비밥도 능숙하게 되었지만, 매일 그렇게 하기엔 점점 귀찮고 꾀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슬기롭지 못한 집콕 생활의 장보기는 쿠팡과 우체국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쿠팡이야 그냥 탄산수, 커피나 궤짝으로 사들이는데 사용하고, 우체국 쇼핑이 거의 취미생활이 되다시피 했습니다.
모든 품목이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성공작들도 상당수 있었습니다.
어제 저녁, 그그저께 도착한 연잎밥, 어제 도착한 메추리알 장조림에 대천김 잘라 놓고, 미역 냉국만 후다닥 10분만에 한그릇 만들어 먹었습니다.
번듯하게 잘 차린 집밥 한상이었지만, 제가 한거라곤 미역 냉국 한가지...
3개월간의 우체국 쇼핑의 걸작이 몇가지 있긴 하지만, 제게는 이 연잎밥이 최고 걸작 같습니다
같은 무게의 햇반보다 무려 두배 이상 비싼 밥이지만, 전자렌지에서 해동시키는 동안 이미 우아한 연잎향이 부엌을 가득 채우면서 설레게 만드는데,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그 기품이 당당해서 오로지 연잎밥 하나로 최고급 한정식집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현미라는데도 쫀득하게 찰기가 많아서 주문을 잘못했는 줄...
현미찹쌀이라는 언급은 없는데도, 내가 해먹던 현미밥과는 완전히 다른 질감
도착한 날 바로 하나 녹여먹었을 때는 해물된장찌게, 양념 게장, 홍어무침이랑 먹었더니, 너무 짙은 반찬들이 연잎밥의 풍미를 해치는 것이라 어울리는 담백한 반찬류를 검색했지만, 마땅치가 않았는데, 어제 조합은 제 입맛에는 너무나 환상적이었습니다.
내가 한 것보다 훨씬 맛있었던 메추리알 장조림까지... 달지도 짜지도 않고, 노른자 향이 은은했던 메추리알.
당분간 질릴 때까지, 이렇게 해먹지 싶습니다.
연잎밥 비싸서 살까말까 고민하다 구매 버튼을 눌렀는데, 비싸도 이건 계속 사먹을까 합니다.
제가 우체국 쇼핑에서도 세일 품목만 골라사서 너무 좋았던 것들도 세일이 아니면 재구매도 안하는 쫌생이인데, 연잎밥은 세일도 안하는데, 너무 좋습니다.
다 먹고 배부른데도, 너무 맛있어서 무려 한시간동안 하나 더 녹여 먹을까 말까를 계속 고민했었다는... ㅎㅎㅎ
나이를 먹으니 생각이나 행동보다 입맛이 먼저 꼰대가 되나 봅니다.
심지어 몇달간 내손으로 해먹은 음식만 억지로 먹었더니, 이제 배달음식, 식당음식을 못 먹을 지경이 됐다는...
치킨, 떡볶이, 부대찌개가 싫어서 못 먹겠고, 담백한 음식이나 찾는 꼰대 입맛이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말입니다
참고로 우체국 쇼핑에서 제가 건진 걸작들은 점심 대용으로 사보았던 견과류바, 깨강정, 명인이 만들었다던 우엉, 연근 부각, 토종순대 등등입니다. 근데 쿠폰 세일 때 사서 좋았지만, 정상가로는 추가구매는 못하고 있습니다. 비싸서 ㅠㅠ...
그냥 저냥이었던 건, 청어알 무침, 명란젓 좋아하는데, 청어알은 제 취향은 아니더군요.
김치는 여기저기 이동네 저동네 것을 사먹어봤는데, 다 그냥저냥 괜찮지만, 충성을 바칠 곳은 아직 없었어요.
최악은 돼지갈비와 마늘
돼지갈비는 자투리만 모아 놓은 것 같이 이게 갈비인가 싶었고요.
마늘은 올 때마다 편차가 커서 믿을 수가 없었어요. 중소 혼합이라고 표시됐는데 처음에는 중 사이즈가 이렇게 큰가 싶게 실하고 똘망한 마늘이 오더니 두번째는 중 사이즈는 없고 잔챙이 소짜만 잔뜩 들었더라는...
암만 갈아 놓을 마늘이지만, 기분은 별로입니다.
의외로 우체국 쇼핑이 축산물, 농산물, 해산물 등 생물은 주문하는게 좀 위험하고 반 가공, 가공 식품류가 제일 성공확률이 높았습니다. 제 경우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