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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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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날의 기억

행복 조회수 : 951
작성일 : 2020-05-23 19:26:57
형제가 나이차 별로 안나는 4남매에 집안형편도 어려워서 엄마는 전업이셔도 하루종일 집안일로 동동거리셨어요
도시락 4개 새벽이른 아빠 아침 우리들 아침식사
좁은 재래식 주방에서 곤로하나 아궁이 하나로 음식하시고
따뜻한물도 안나오는곳에서 추위 떨면서 혼자 밥하고 손빨래 하시느라 참 고단하셨죠 그래서 자식들에게는 신경을 거의 못쓰고
알아서 먹고 준비물 챙기고 씻고..어릴때부터 엄마 손길 별로 안타고 알아서들 그렇게 컸어요
그맘때 우리동네 친구들도 다 비슷비슷 했구요
불행한 기억 없음 행복한거라더니 우리부모님은 큰 싸웅 한번도 자식 앞에서 안하시고 도시락은 없는 살림에도 정성껏 사주셨고
술못마시고 유쾌한 아빠덕에 아빠농담으로 어려워는 했지만
재미 있었어요
형제들이 착실하고 성실하고 조용한편이라 크면서 싸움도 안하고
알아서 할일하니 혼날일도 크게 없었고
부모님 기대치도 높지 않아 성적으로 혼나는법도 없었구요

그런데 자라면서 다른집이 부러울때 참 않았었죠
공부에 관심주고 이끌어주고 준비물도 챙겨주고 힘들때 안아주고 조언해주고 부모님 그늘아래서 보호받고 자라는 친구들 볼때 많이 부러웠죠 나는 그런게 하나도 없었거든요
힘들고 지칠때 의논할사람 터놓고 속상한일 말할사람 그런사람이 부모님이 될수 있다는게 놀라웠어요

그래서 유년시절 특별히 행복했다는 기억이 없어요
오히려 학교 선생님 친구들이 훨씬 특별하게 큰 행복을 만들어줬던거 같아요

그런데 지나고 보면 엄마가 늘 정성스럽게 싸주셨던 도시락
국민학교시절 3학년부터 고등졸업때까지 한번도 안빼먹고
방학때는 야자로 두개씩 쌌었고
고등생이 3명이나 됐었을때 각각두개씩 막내까지 7개를
매일 다른반찬 두세개에 김치랑 직접 기름바르고 석쇠에 구운 김은 쿠킹호일에 따로 싸주셨고
겨울에는 보온도시락에 뜨거운 물 넣고 국 까지 해서 넣어주셨던 엄마..거기에 보리차 매일 끓여 마실물은 여름이면 시원하게 얼음 넣고 살얼음 만들어 아침에 챙겨주시고
겨울에는 미지근하게 물만들어 식사후 먹으라고 따로 또 보온병에 챙겨주셨어요 4형제 모두에게..
친구들과 함께 도시락 꺼내놓고 먹었을때라 집안형편이 반찬으로 인해 어느정도 보였을때 였거든요
맨날 김치만 유리병에 싸오는 친구
반찬하나만 싸오는친구
김하나만 가져오는 친구
보온 도시락 못싸오는 친구
반면 반찬 서너가지 이쁘게 담아 오는 친구
김치하나를 싸와도 정성드려 깨뿌리고 볶음 김치로 가져오는 친구
볶음밥 하나 싸와도 밑반찬 두세가지 싸오는 친구

그런무리에서 주눅들지 말라고 엄마는 냄비밥 하시면서도
우리도시락에 새벽 아빠밥 우리등교전 식사까지 언제나 참 부지런히 준비해주셨어요
김치에 생선하나 무말랭이하나 놓고 밥먹어도 도시락 반찬에는
소시지 계란말이 어묵조림 야채볶음밥 가끔 김밥까지
친구들이 내 도시락반찬 맛있고 이쁘다고 막달려들여 집어먹고
나는 또 그게 참 좋았고요

한명한명 도시락을 졸업할때쯤
막내 고3때 막내한명 이제 도시락 한해만 싸주면 이지겨운 생활도 끝이라던 엄마 ..근데 막내 대학가서 저녁도 집에서 안먹고
우리형제 모두 아침 한끼 겨우 같이 먹게 됐을때
홀가분 하면서도 많이 서운해 하셨죠

요즘 고등아이들이 집에 있어 삼시세끼 꼬박 챙기다 보니 꾀가 나서 즉석식품 반조리 식품 포장 외식 골고루 해서 먹는데
우리때는 외식도 일년에 한번 할까말까
즉석 반조리 포장 배달음식 따위는 전혀 없었어요
아주 가끔 아빠 월급날 아빠가 사오시던 통닭 한마리
그거 6가족이 모여 먹을때 진짜 진짜 행복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엄마가 해주셨던 그정성스런 도시락 십몇년이
결코 쉬운게 아니였구나 세삼 지금 깨달았어요
저녁때면 늘 도시락 가방서 도시락도 꺼내놔라 하시고
내일 도시락반찬은 뭐 싸줘야 하나로 고민하셨는데..
곤로에 아궁이에 찬물로 그걸 혼자 준비하셨던 엄마
그걸 받아 먹은것도 큰 행복이구나 느끼네요



IP : 112.154.xxx.39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저도
    '20.5.23 8:01 PM (14.4.xxx.220)

    그래요..
    무심한 엄마였는데 초등때부터 고등때까지 10년가까이 도시락 싸준 엄마에게 감사해요..
    요즘엔 다 급식인데 점심먹을때마다 엄마 은혜가 생각나요..
    엄마한테 섭섭한게 생각나다가도 점심도시락에 사르르녹네요

  • 2. 도시락
    '20.5.23 8:04 PM (121.135.xxx.24)

    도시락반찬보다는 도시락의 상태에 따라 엄마의 사랑과 정성이 구분되는 듯해요.
    저렴한 반찬 하나라도 정성스럽게 싸주는 도시락과
    반찬통안에서 이 반찬 저 반찬 막 섞여서 죽도 밥도 아닌 도시락
    전 후자인데 ... 님 정도면 꽤 행복한 사람입니다.

  • 3. ....
    '20.5.23 8:06 PM (221.157.xxx.127)

    진짜 예전어머니들 존경 스럽네요 ...

  • 4. 엄마
    '20.5.23 11:41 PM (112.149.xxx.254) - 삭제된댓글

    사업하셔서 바쁘셨는데 5학년때부터 고등 졸업때까지 매일 김밥 싸주셨네요.
    알록달록한 김밥 아니고
    고기볶고 단무지 잘게 썰어서 한입에 쏙 넣게 싸주셨어요.
    입짧고 김치 안먹고 국물도 안먹어서 십년 가까이 싸셨죠.
    매일 밥 싸놓고 아침 차려놓고 출근해서
    저녁까지 차리셨던 엄마.
    세탁기도 없던 시절에 이불 뜯어서 빨아가면서 살림했는데 사장님이셨던 대장부 엄마.
    이제 많이 늙으셨네요.

  • 5.
    '20.5.24 2:40 AM (39.112.xxx.199)

    따뜻한 원글.......부디 지우지 말아주세요. 유년의 기억을 소환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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