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남친은 현재 코로나 때문에 굉장히 힘들어합니다.
졸지에 백수됐다며.. ㅠㅠ
10대 때 밴드 공연도 할 정도로 음악을 아주 좋아했대요.
본인 말로는
1순위는 음악
2순위는 여자
이랬답니다 ㅎㅎ
음악을 넘어 우연히 영화에 빠져서 영화 시나리오 및 연출이 꿈이었대요.
영화스탭을 통한 게 아닌, 직접 시나리오를 쓰는 감독을 꿈꿨답니다.
(상당수 영화인들이 그렇듯이?) 직장 안 다니고 계속 백수로 살았구요.
뭔가 될 듯 말 듯 하다가 결국 영화계에 진입하지 못하고 결국 자의 반, 타의반 다른 쪽으로 전향을..
저랑 몇 년을 사귀면서
그동안은 저한테 영화 관련 언급을 거의 하지 않았어요.
영화도 웬만하면 안 보려고 했구요.
전 그냥 자기 희망이 물거품돼서 꼴도 보기가 싫은가보다, 그렇게 생각을 했었죠.
사실 저는 영화나 음악 좋아하긴 해도 많이는 모르니 깊은 대화를 안 한 것일 수도 있겠네요.
근데
어쩌다가 코로나 이후로 같이 영화를 보는 일이 잦아졌어요.
어느 날 코믹영화를 본 후에
자기가 예전에 썼던 TV 단막극용 줄거리를 얼핏 얘기하더군요.
코믹멜로물(?)인데 되게 재밌어서 제가 ㅋㅋ대며 웃었거든요.
그러다가 문득 호기심이 생겨서 남친의 시나리오(프린트해서 책처럼 ㅎㅎ)까지 읽게 됐네요.
저 태어나서 이런 실제(?) 시나리오는 처음 읽어봤어요 ㅎㅎ
제가 볼 때는
(시나리오적인 완성도는 이 분야는 제가 잘 모르니 패스하더라도) 분명히 글재주가 있다고 느꼈거든요.
남친은 글재주는 공모전에서 중요할 수 있어도 무조건 재미가 우선이라고.
어쨌든
시나리오는 소설이랑 형식이 다르니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내용이 재밌어서인지 흥미진진하게 읽혀지더라구요.
주인공들을 유명한 특정배우로 생각하고 읽으라고 팁을 줬는데 그래서 더 쉽게 읽었던 것 같아요.
만약 이게 TV에서 단막극으로 제작됐어도 호평받았을 것 같다고 칭찬했더니 으쓱으쓱하던데요 ㅋㅋ
그래서 제가 또 재밌는 거 없냐고 물었죠.
남친이 좋아하고 추구하는 장르는 스릴러쪽인데,
쓴 작품들은 죄다 졸작이라 내세울 게 없다며 코믹 영화 스토리를 짧게 들려줬어요.
우와~ 이건 줄거리 10초도 안 돼서 무지 재밌겠다는 감이 팍 오는 거예요.
그래서 또 시나리오 보고 싶다고 했더니
"아~ 이거 아무한테나 보여주는 거 아닌데..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해야 돼~"
이렇게 위세(ㅎㅎ) 떨면서 보여줬어요.
영화용이라 런닝타임이 긴 관계로 단막극이랑은 또 달랐지만, 끝가지 아주 재밌게 읽었답니다.
일단 소재가 되게 참신하고 기발한 데다가 캐릭터랑 상황이 너무 웃겨서 ㅋㅋ
하지만 이 작품도 공모전 몇 군데에 보냈는데 모두 낙방했다고 씁쓸한 표정을 짓는 남친.
모르겠네요..
제가 볼 땐 이런 수준이라면 완성도를 떠나서
대중적으로 히트할 것 같은데 왜 떨어졌지, 의아심이 들 정도의 확실한 대중성을 지닌 매력이 느껴졌거든요.
하긴 아마추어가 공모전에 보낼 땐 읽고 판단하는 심사위원을 잘 만나는 운도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제가 장난으로 한국 영화를 이끌 거장 감독이 어쩌다가 이렇게.. 아깝다고 했더니
"그러게 말이다. 실업자돼서 이렇게 썩고 있으니.. 세계 영화계의 큰 손실이지 ㅋㅋ"
이러는데 빵 터지면서도 좀 짠하다고 그래야 되나요ㅠㅠ
남친은 이제는 완전히 굳어서 돌머리가 다 됐다며 한숨 쉬더니
자기가 실패한 이유는
일단 지나친 자신감에 열심히 하지 않고 탱자탱자 놀았다고.
보통 영화인들은 소재고갈로 다작은 커녕 1편 만드는 것도 힘들다는데
남친은 반대로 너무 많은 아이디어가 오히려 이게 독이 돼서 제대로 된 1편 쓰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하더군요.
생각한 소재는 100편이 훌쩍 넘는다는데 쓴 건 고작 10편 조금 넘었다고..
결국 영화계 인맥도 중요한 건데
현재 유명감독인 2명을 거론하며 자기가 인맥을 맺을 수 있는 여러 기회들을 스스로 차버렸다고..
당시 남친은 인맥은 실력이 아니라 부정한 방법이라고 생각을 했다며 지금은 후회가 된다고 하네요.
전 오늘까지 쉬기 때문에 뒤척이다가 새벽이라 그런지 이런 글을 쓰네요 ㅎㅎ
남친과 제 관계의 미래는 솔직히 잘 모르겠네요.
저도 남친도 서로 비혼주의자라서 ㅎㅎ
음..
내 꿈은 뭐였고, 지금은 뭘 바라보며 살까 생각해 보니
사람의 꿈은 참 오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