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도오고 사무실엔 앉았는데 일도 시작하기 싫고.. 커피 한잔 놓고 옛날 일을 생각해봅니다.
평생 후회되는 일이 있으세요? 저는 두가지 있어요.
그 중의 하나가 비가 오는 날 있었던 일이에요.
대학교 1학년? 2학년? 기억은 가물가물한데 저는 시골에서 올라와서 대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고
imf 때 집이 망해서 집에서 돈을 하나도 못 받고 대학생활을 했어요. 과외를 여러개 했지만 등록금과 생활비로 항상 돈을 모잘랐고 그래서 보증금 없이 한달에 10만원짜리 집에서 살고 있었네요. 서울에서 10만원 짜리 집이면 진짜 허술했죠.
공동 화장실도 문이 제대로 안 잠길 정도였어요.
비가 오는 날이었고 문을 걸어놓고 잠이 들었는데. 제가 정말 예민한 사람이거든요.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일어나보니 어떤 남자가 제 몸위에 올라타 있는 거에요. 윗 옷을 올리고 가슴을 만지려는 상태
그때 청 반바지에 하얀색 티를 입고 있었던 까지 기억이 나네요..
발로 뻥 차고 몇번 더 발로 밟은 뒤 바로 올라타서 팔 비틀었어요. 그 옆에 하늘색 커튼 끈이 있었는데 비튼 팔을 묶었네요.
그 남자도 너무 놀랬는지 큰 반항은 안하고 체념하더라구요. 제가 키가 큰 편이고 운동을 해서 근육이 좀 있는데 남자는 꽤 왜소하고 말랐어요. 그렇게 끌고 집 바로 옆에 있는 파출소에 갔어요. 그때 새벽 2시 정도
완전 의도적이었던게 그날 비가 많이 왔거든요. 아마도 소리 지르는 걸 못 듣게 할려고 새벽을 노린게 아닌가 싶어요.
그 남자를 끌고 비를 쫄딱 맞고 파출소에 갔는데.
어떤 경찰이 앉아 있었고 되게 삐딱한 태도로 앉아서 남자 지갑을 보데요. 같은 학교 대학원 생이었어요. 좋은과 대학원.
그러더니 혀를 끌끌차며 학교 선배가 아가씨를 너무 좋아해서 이렇게 한거 같은데 앞길이 구만리 같은 선배 미래 망치지 말고 그냥 한번 봐주라는 거에요. 무슨 일이 일어난것도 아니지 않냐. 뭐 피해입은거 없죠? 이러면서.
남자 인생망치지 말라면서. 사랑이 죄냐.. 뭐 그런 말도 했던거 같아요.
저 꽤나 당차고 똑똑한 대학생이었는데. 그때 왜 그랬을까요?
그냥 한참을 듣다가 알겠다고 하고는 집에 돌아갔어요.
다음날 제 집 문 앞에는 cd하고 쪽지. 그리고 3만원이 들어있는 하얀 비닐 봉투가 걸려있었구요.
저한테 그렇게 하기 전에 제 지갑도 뒤져서 돈도 가져갔던 모양이에요.
너무 좋아서 참지 못하고 그렇게 했다고 미안하다고 적혀 있었어요.
그때. 고발을 반드시 했어야 했는데. 그 뒤로 그 놈은 제 생각엔 잘 되어서 엄청 여자들을 괴롭히면 살았을것 같아요.
나오면 많은 확율로 높은 직위에 올라갈수 있는 대학원이니까.
지금은 저도 나이를 많이 먹어서 가족도 이루었고 사회적으로도 지위가 높아졌는데도 이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후회스러워요. 이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반드시 죄값을 치루게 했을꺼에요.
그냥 비가 오니까 이런 저런 생각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