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전날이 되니 문득 생각이 나서 2014년 6월 지방선거 당시 경기도의 한 지역에서 개표사무원 알바했던 경험 얘기해 봅니다.
저는 그 때 마침 일을 쉬고 있어서 심심도 하던 차에 지역신문에서 개표사무원 모집 공고를 보고 온라인으로 신청해 참여하게 됐지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인터넷으로 공정(?)하게 접수받아 뽑는 것보다 동네 통반장 통해 추천으로 알음알음 먼저 오프라인 신청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는 것. 그래서 함께 오신 분들이 서로 앞집옆집뒷집 아는 아주머니들이 많았고, 이따금 저처럼 온라인으로 접수한 젊은새댁이나 대학생들이 한 두명 껴있었어요.
선거날 오후에 개표장에 모여 사전교육을 받고, 거기서 주는 좀 이른 저녁을 먹고, 7시 쯤부터 도착하는 투표함들을 순서대로 받아 같은 번호가 찍힌 표를 한데 모아 개표기로 보내는 업무를 했더랍니다. 일은 딱히 어려울 것도 없고 테이블 위에 투표용지가 다 정리될 쯤이면 또다른 투표함이 투표용지를 한가득씩 쏟아놓았죠. 개표 작업하는 강당 2층 관람석(무슨 실내경기장이었어요)엔 개표감시원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고(그분들도 시민), 기자들이 와서 멀리서 개표하는 사진을 찍어가기도 했어요.
인상 깊었던 건, 같은 테이블에 어떤 어머니... 선거 기간 내내 모 후보의 유세단으로 매일 손뼉 치고 율동하는 알바 하시고, 선거 당일엔 오전에 투표소 참관 알바 하시고, 오후엔 개표사무원 하러 오셨다고... 힘들고 고단하지만 오늘까지만 하면 끝난다, 올 여름 고3 딸아이 학원비 한 몫 벌어놨다 하시던 모습을 보며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죠.
개표 중간 즈음에, 우리 테이블로 와야 할 투표함이, 잘못 해서 다른 테이블로 갔다가 막 개봉하려던 찰나에, 다시 우리 테이블로 옮겨져 왔어요. 테이블 제일 앞쪽에 있던 대학생이, 이게 왜 다른 쪽에서 반쯤 뜯겨서 왔느냐 물으니 나와 있던 선관위 직원(공무원)이 짜증을 내며 "뭐가 문제냐, 알바 하러 왔으면 부지런히 일이나 해라" 라며 투표용지 확 쏟아놓고 가버리더군요. 우리 테이블서 나설 사람이 저 밖에 없어 보여, 그 직원 불러다가 따졌습니다. "지금 여기 나와 있는 우리들도 시민이고, 유권자다. 일당을 받긴 하지만 투표 감시하러 나온 것도 있는 셈인데, 어디 알바 취급으로 큰 소리를 치냐. 정확히 설명하라, 그렇지 않으면 정식으로 항의하겠다." 선관위 직원이 실언한 점 죄송하다 사과하고, 투표함 순서가 꼭 정해져 있는 건 아닌데, 그래도 처리물량을 공정하게 맞추려고 다시 이쪽 테이블로 가져왔다, 개봉하기 전이니 부정한 거 아니다, 다시 설명하고 돌아 갔습니다. 한 시간 쯤 있다 다시 들려 다른 문제는 없냐 인사치레 해주고 가시더군요.
밤 10시가 넘어 개표에 한창 속도가 붙고 투표함도 몇개 남았는지 셀 수 있는 정도가 됐는데, 갑자기 개표 속도가 뎌뎌지더군요. 여럿이 온 아주머니들이 아고아고 힘들다 하시면서 팔 다리도 두드리고, 간식이 들어오고, 좀 쉬어가는 분위기가 됩니다. 그러다 11시가 좀 넘어 또다시 열심히 개표를 하고, 딱 12시30분쯤 개표 작업이 끝납니다. 네 12시 자정 넘겨야 그 자리에 있는 개표사무원도, 공무원들도 수당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당초 6~7만원이던 수당이 다음날 통장에 10만원이 찍히더라고요. 집에 갈 때 제과점 롤케익도 하나씩 주고요. 이미 여러 번 오셨던 분들은 이 비밀을 알고 계셨던 거 였습니다. ㅎㅎ
밤 늦은 시간이라 차로 같은 방향 분들 두분 내려드리고 집에 오니 새벽 1시 반이었습니다. 별 생각 없이 참여한 개표 작업이었지만 TV 뉴스에서나 보던 장면 속에 한 번 들어가 본 경험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중간에 선관위 직원의 무례함에 분노했고, 한편으론 개표 현장의 어수선함 때문에 부정선거 감시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도 했더랍니다. 혹시 내일(아니 오늘) 투표소나 개표소에서 참관하거나 일하시는 분들도 모두 수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