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유럽 미국은 왜 그간 의료체계
그냥 평소 건강식먹고 운동해서 잔병치레를 안해서 그런건지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도록 그간 내비둔건가요...
무슨 보험 의료회사 로비가 막강하다지만
그럴거면 국가권력은 뒀다 모하는지...
1. ...
'20.4.6 7:53 PM (1.245.xxx.143)로비 당했구요
돈있는 사람들이 정치를 할테니 그들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테죠2. ....
'20.4.6 7:53 PM (220.87.xxx.31)우리처럼 위기극복이 취미인 나라가 아니고 태평성대 편안히 사느라 대비를 못했겠죠
3. ㅇㅇ
'20.4.6 7:55 PM (211.36.xxx.110)그럼 너무 태평성대도 좋은게 아니군요...
4. ...
'20.4.6 7:55 PM (80.194.xxx.87) - 삭제된댓글민영화가 많이되면서 국가 의료시스템이 뒤쳐지기 시작... 지금 같은 위기 상상도 못했고 이제와서 완전 멘붕상태
하지만 이번일로 앞으로 달라지겠지5. ...
'20.4.6 7:56 PM (80.194.xxx.87) - 삭제된댓글민영화가 많이되면서 국가 의료시스템이 뒤쳐지기 시작... 지금 같은 위기 상상도 못했고 이제와서 완전 멘붕상태
하지만 이번일로 앞으로 달라지겠지요6. 국가가
'20.4.6 8:00 PM (112.145.xxx.133)독재여야 그 많은 반대를 무시하고 밀어붙이죠 우리나라 건강보험이 박정희 때 생긴것처럼
7. 윗님
'20.4.6 8:13 PM (125.184.xxx.144)지금의 건강보험 체계가 박정희때된 거라구요? 제대로 알고 말씀하시는지 저 40대후반 중학교때 의료보험이 되었네요~저희언니가 고등학교 1학년때 병원에 입원했다 병원비가 너무비싸 10일만에 퇴원했던기억이 생생한데요 그로부터 몇달되지않아 의료보험이 제대로 된걸 생생히 기억하는저~그당시 언니가 결핵이라 개인병원에서 의료보험하면 2,500원인데 좋은약을 못쓴다고 해서 5,000원에 저희어머니가 의료보험안하고 언니가 1년을 병원다닌. 기억이 생생한데요~
8. 크리스티나7
'20.4.6 8:26 PM (121.165.xxx.46)84년까지 의보 없어서 맹장수술이 그 당시 150만원이 나왔었어요. ㅠㅠㅠ
9. 무식하면
'20.4.6 8:42 PM (182.220.xxx.86) - 삭제된댓글용감함. 박정희때 의료보험은 선택이었음. 즉 돈있는 사람이 사보험 드는 식으로. 의료보험증 자체가 돈 있다는 표시였음. 직장인과 지역민등 전국민 의보 가입 의무화는 노태우 때부터 시작됐을꺼임. 전두환때까지 이걸로 말 많아서 노태우가 본인 정권의 탄생이 깨끗하지 못해서 이걸로 점수 딸 요량으로 의보 확대함.
10. 펌글
'20.4.6 8:53 PM (45.33.xxx.155)한국 건강보험 정리
https://m.clien.net/service/board/park/14771960
미디어 검색 후 정리했습니다.
한국의 건강보험제도가 훌륭하다면 그 공은 김대중 대통령님을 빼고 말할 수 없습니다.
1963년 「의료보험법」이 처음 제정(오랫동안 시범사업으로만 운영)
1977년. 의료기관이 돈이 없다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해 사망자가 속출하자 박정희는 14년 동안 유예했던 의료보험법을 전격적으로 시행(대기업 종사자 중심의 의료보험제도) 출범 당시 전 국민의 8.8% 가입
의료보험의 산파라 할 수 있는 김종인 당시 비서관➜“당시 학생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날 때인데, 김정렴 청와대 비서실장을 만나서 (중략) ‘학생운동과 노동자들의 분배 요구가 맞물려 합쳐지게 되면 큰일난다. (중략) 의료보험제도라도 우선 도입하자’고 했던 겁니다”
1989년 노태우 전국민의료보험 실시(‘6월항쟁’이 전국민 건강보험 도입의 일등공신)
1989년 전국민 의료보험을 시작할 때만해도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수백 개의 조합으로 쪼개져있었다. 400개가 넘는 의료보험조합들 간에는 재정격차가 너무 심각했다. 그래서 소위 강남구처럼 부자조합은 적립금이 넘쳐났고, 철원군처럼 가난한 조합은 늘 적자에 시달렸다. 조합은 낙하산 인사와 각종 부패의 온상이기도 했다. 농어촌 지역의 경우 암 환자가 한 명 생겨도 건강보험 재정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1989년 7월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는 중요한 구조적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환자 본인부담 의료비의 비율이 거의 60%에 달했다. 이후 참여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2006년에는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이 64.3%에까지 이르렀다.
2000년 7월 1일 김대중. 건강보험 통합
수백억원에 이르는 적립금을 기업 의료보험조합에 쌓아두고 ‘사금고’처럼 사용하던 기업들과 이들을 대변하는 전경련, 경총 등이 강력하게 저항했다. 의료보험 재정이 넉넉한 편이던 직장의료보험조합들과 한국노총도 반대했다. 직장 노동자들의 의료비 부담이 높아진다는 이유였다.
건강보험 통합은 세계적인 건강보험 모델이 됐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통합은 당시 건강보험도입을 추진하던 대만에 큰 영향을 줬다. 한국과 대만의 사례 뒤,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새로이 건강보험을 도입하려는 나라들이 대다수 한국형 모형을 채택하고 있다
2000년 10월 시행 국민기초생활보장법
2000년, 4인 가구의 월 최저생계비는 93만원이었다. 소득인정액이 93만원 미만인 경우 국가가 그 차액을 지원했다. 당시로서는 거의 혁명적 변화였다. 심지어 집권 여당 내부에서도 엄청난 반발이 있었을 정도다. ‘왜 돈을 공짜로 주느냐, 재정을 생산적인 곳에 써야지’ 하는 식이었다. 이때 동력을 만들어낸 주인공이 바로 대통령이었다
당시 한국의 목줄을 쥐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세계은행의 권고까지 무시하면서 김대중은 복지제도에서 독자적 업적을 이뤄냈다. “고용보험의 경우 IMF와 양대 노총이 모두 요구했고, 실업 대란이었기에 기능상 필요했다. 하지만 의료보험 통합이나 국민연금 확장은 꼭 지금의 형태로 이뤄지지 않았을 수 있다. 세계은행의 요구는 국민연금을 대폭 축소하고 민영화하거나 사적 연금 형태로 개편하라는 것이었지만 김대중 정부는 이를 사실상 거부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형 복지국가의 설계자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국민연금, 국민건강보험 등은 혁명적 변화였다. 김대중 정부는 한국 복지국가 역사에서 새로운 발전의 큰 분기점이 되었다. 우리는 ‘김대중 체제’를 살아가고 있다.11. 세누리미통미한
'20.4.6 9:52 PM (188.149.xxx.182)절대로 뽑아주면 안됩니다.
이명박과 싸바싸바 의료민영화 하려던 협잡군 나라팔아먹을 넘들이에요.
네버에버 에비........미통미한당 뽑으면 미국 꼴 납니다. 안그럴거 같아요?12. 00
'20.4.6 10:19 PM (67.183.xxx.253)우리나라도 의료민영화 되면 미국처럼 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