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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너무 열심히 살았더니..

너무 조회수 : 6,692
작성일 : 2020-04-06 00:26:01
고등학교때 공부를 안했어요. 여차저차 전문대를 갔는데 싫더라구요. 멀쩡한 4년제 가고 싶어서 재수한다고 공부했어요. 재수는 실패...그냥 돈 벌겠다고 직장을 찾는데 고등학교 졸업은 할 수 있는 일이 백화점 점원 혹은 알바 밖에 없더라구요. 하루에 알바 오전 오후로 뛰면서 돈 벌어서 미국으로 유학가고 싶어서 열심히 했어요. 실내인테리어 배우고 싶었거든요. 물로 부모님은 남보다 못한 존재라 기대는 못하고요.
오전오후로 알바하느라 몸이 다 망가지고 알바한 돈으로는 유학도 못가겠고 직장이 있어야 제대로된 돈을 벌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고졸에 갈 수 있는데는 뻔하죠...안되겠다 싶어 그냥 전문대라도 야간에 가겠다고 했어요. 낮에는 제가 돈벌어서 생활비 벌고 학비만 달라고 했죠. 일단 전문대라도 가서 편입할 생각이었어요. 부모님이 다행이 오케이 해서 서울권 전문대 야간으로 다니고 낮에는 알바를 했어요.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알바는 다 해봤네요. 콜센터, 서울시청 학생알바(정직원들 보조), 장난감공장, 커피숍, 칵테일바, 백화점 식품관, 백화점 수영복 판매...
편입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죽기살기로 영어공부해서 사범대에 합격했어요. 물론 경쟁률 치열했지만 영어를 비교적 잘 해서 쉽게 갔어요. 나이가 3년을 꿇었으니 대기업 취업은 힘들거 같아서 임용고사 치룰수 있는 사범대를 선택했고 편입해서 다니는 동안에도 도서관 알바하며 또다시 치열하게 살았네요. 부모님이 돈을 잘 안주셔서 그냥 제가 벌어서 제가 쓴다는 마인드였어요. 그렇다고 집이 가난한 것은 아니지만 딸한테 쓰는 돈은 아까워해요.

임용을 준비할까말까 고민했는데...적성에 맞을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요. 그래서 4학년때 임용을 볼때 대충 보고 일단 떨어지고 졸업하고 기간제를 한 다음에 적성에 맞으면 임용고사를 보자고 마음 먹었어요. 왜냐면 집에서는 너한테 들어간 등록금이 얼마인데 빨리 갚으라고 압박이 심했거든요. 그래서 적성에 안맞는다고 안할수도 없는 상황이라 일단 떨어지고 봤어요.

졸업후에 기간제를 4달을 하고 마음의 결정을 했어요. 아 나도 잘할수 있구나. 해도 되겠다. 그래서 독서실을 다니면서 공부모드에 돌입. (저는 학원은 안 맞아서 혼자 하는 타입) 기간제하면서 벌었던 3개월치는 모두 엄마드리고 마지막달 월급은 제가 가졌더니 난리가 났어요. “너 왜 이번달 월급 안주냐. 빨리 갚아야지.” 진짜 우리 엄마지만 너무한다는 생각과 함께 “나 공부하는 동안 쓰려고요. 엄마 다 주면 나는 엄마한테 용돈을 받아야하는데 그럼 또 힘들잖아요” 그랬더니 뭐라뭐라고하고 키워봐야 소용없다는 둥 ㅠㅠ 엄마한테 돈 받으려면 별의별 소리를 다 들어야해서 제가 공부하는 기간동안 쓸 돈은 쟁여둔거였어요. 어찌됐든 빨리 돈을 벌어야 이 돈지옥에서 탈출하니 열공모드에 돌입해서 생각보다 높은 점수로 커트라인을 통과하고 임용에 붙었어요.

3년까지는 정말 죽을만큼 힘들어서 몸무게가 44사이즈가 맞는 체형으로 변하는 기적까지!! 그때 학부모들과 사이가 안좋았는데 그 상황이 저는 너무 힘들어서 밥을 거의 못먹어서 종이인형처럼 살았네요. 그러다 여차저차 잘 버텨내고 학교에서 동료교사와 결혼하고 그냥 살고 있어요.

결혼해서도 그 성향 못버려서 매일 공부하듯이 요리하고 맨날 무엇인가를 해야 직성이 풀렸는데 40넘어가는 순간 사람이 변하네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네요. 정말 열심히 살고 눈물 콧물 다 쏟아가면 악착같이 살았는데 삶이 갑자기 허무해져요. 남편은 다행이 다정한 사람이라 사이가 좋구요 아이도 잘 자라고 있어요. 그런데 예전처럼 무엇인가를 열정적으로 하고 싶은 생각은 안드네요. 너무 열심히 살다보니 대충 사는 사람들 보면 답답하고 한심해 보였는데(제 남편이 그래요) ...제 남편을 오랫 동안 겪다보니 스트레스도 거의 안받고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강박이 없다보니 사람이 유연하고 공감도 잘하고 위로도 잘 해주고 배려도 깊고 안정적으로 사는거 같아요.
그래서 불현듯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았나. 고등학교때 공부 접은 걸로 참 많은 댓가가 있었다는 생각도 들구요.
열심히 살아서 허무한 인생이야기에요.

덧붙여 악착같이 모아 잘 살겠다던 저희 엄마는 정말로 잘 살게 되어 강남 반포 브랜드 아파트에 살게 되었지만. 결국 자기가 이 돈 못쓰고 갈거라고 맨날 궁시렁 궁시렁. 그래도 아플때 거리낌 없이 병원도 가고 쇼핑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긴 하네요. 인생 부질없어요.
IP : 175.223.xxx.119
1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20.4.6 12:31 AM (106.102.xxx.67) - 삭제된댓글

    번아웃이 왔나 봐요. 전 님처럼 좋은 의미로 독하게 살지도 못했고 성취를 이루진 못했지만 제 부족한 깜냥으로는 많이 애쓰며 살았거든요. 그랬더니 저도 마흔인데 심각한 무기력증이 왔네요. 저희 엄마도 참 고단한 인생을 살다가 살다가 마흔쯤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기도 했었고요. 너무 무리해서 애쓰며 살면 한번쯤쯤 터지기 마련인가봐요 ㅜㅜ

  • 2. 사과
    '20.4.6 12:37 AM (121.124.xxx.38)

    저랑 비슷한 인생이신듯 해요.
    저도 님 처럼 열심히 악착같이살았어요
    예전과 달리 게으르고 될대로 되라. 살아요.
    인생 부질 없죠. 저도 돈 잘 벌고 가정적인 남자 만나 잘 살고 있네요.

  • 3. ..
    '20.4.6 12:38 AM (116.88.xxx.138)

    에공 긴 시간 열심히 사셨네요.
    조금만 허무해하셨다가 남은 시간은 남편분처럼 여유롭게 사셔도 될듯해요. 부부교사면 노후걱정도 안해도 되고 자식도 알아서 적당히 잘 자라고 있으면 그냥 조금 몸을 흐르는 물에 맡기듯 사셔도 될듯해요..

  • 4. 글보니까
    '20.4.6 12:43 AM (1.11.xxx.234)

    님의 부모님이랄까 어머니란 분은 좀 이상한 사람이네요

    혹시 그런 모든것들이 자식들에게 애정이 없는 부모로 온 반발심의 악착 아닐까 싶어요

    이런거 있잖아요

    홍콩영화처럼 평생을 이갈며 복수했더니 정작 그 당사자는 죽으면 그뿐이고
    남은건 이갈다 보낸 세월과 허무
    그런거여

    은근히 아닌거같지만 아마 심리치료를 받아본다면
    부모의 영향이 클거같아요

    거기에 더해서 난 님의 엄마한테 소름끼쳤어요

    정말 자식한테 준 그것도 야간대 다니는 딸한테 그돈을 받고 싶을까

    부모란 사람들이 다 부모는 아닌것 같아요

    지금도 내주위나 친구들 보면 늙어도 꺼질까 사라질까 금이야 옥이야 해주시는데

    응원해요

  • 5. 열심히
    '20.4.6 12:43 AM (58.124.xxx.44)

    정성껏 사셨네요.
    넘 대단하십니다.
    이제 좀 쉬셔도 될것 같아요.
    저랑 비슷한 나이이신것 같은데
    전 없는 형편임에도
    돈벌 궁리도 안하고
    무기력하게 게으르게만
    살아온 제 자신이 너무 싫어서 미치겠는데...
    차라리 마음편히 게으르던가..
    마음은 불안 초조해서 미치겠는데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런 내자신이 혐오스럽고..
    더 무기력해지고...

    열심히 사신 분들은
    스스로가 얼마나 대견하실지...
    너무 멋지고 부럽네요.

  • 6. 이제
    '20.4.6 12:49 AM (59.18.xxx.56)

    좀 쉬시고 쉬엄쉬엄 사세요.저도 젊은날 치열하게 살았는데 나이드니 게으름 부리며 살고 싶어지네요..열심히 살았으니 그럴 자격 있습니다 여유부리며 즐겁게 사세요~~

  • 7. 원글이
    '20.4.6 1:11 AM (175.223.xxx.119)

    글보니까님.
    맞아요. 자세히 쓰지는 못했지만 저희 어머니 객관적으로 봤을때도 딸을 사랑하는 분은 아니었구요. 너그러운 저희 남편도 정말 장모님 딸한테 좀 너무 하실때 있다고 해요.

    황당사건 @@결혼한다고 남편 옷 사러 백화점 가서 저는 잠깐 화장실 갔는데 그때 제 남편에게 제 욕을 함. “O0이가 얼마나 못된 애인줄 아니? 쏼라쏼라” 남편이 결혼하고 한참 후에 말하더라구요 사실 그때 장모님 행동 혼란스러웠다고 ㅎ 결혼할 사람에게 딸 욕을 하는건 아닌거 같았다고.

    물론 이거 말고도 책 한권 나오는데 어지간하면 이젠 다 잊고 살아요. 복수한다고 칼 갈아봤자 본인만 손해이고 님 말씀처럼 허무한 홍콩 영화 될거 같아서요. 법륜스님 말씀 들으면서 그래도 울엄마는 돈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생각하고 살아요 ㅋㅋ
    그리고 더 이상 생각안해요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나서요.
    과거를 버리고 잊어야 삶이 편해지는거 같아요. 물론 잊지 못할 상처가 많아 아직도 눈물나지만 잊어야죠.
    그래야 살 수 있으니까.

  • 8. ㅇㅇ
    '20.4.6 1:43 AM (58.124.xxx.225) - 삭제된댓글

    저도 너무너무 열심히 살았어요..
    지금 50 넘었는데 참 허무하네요.

    원글님 이제라도 설렁설렁 사는거 같아 다행이네요.

  • 9. ..
    '20.4.6 2:02 AM (27.35.xxx.133)

    원글님 ㅠㅠ
    부질없지 않아요
    어디에 내놓아도 치열하게 잘 살아오셨다 소리들으실거에요
    존경스럽고 글읽으면서 제 평소 태도를 반성하게 되네요
    그리구 중년에 접어들면 에너지가 줄어드는건 당연해요ㅠ
    그동안 애쓰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가족들이랑 행복하게 지내세요

  • 10.
    '20.4.6 2:18 AM (122.36.xxx.160)

    이제 멍~때리며 사는 여유도 즐겨보세요~
    그동안 열심히 사신건 값진 경험이예요~^^

  • 11. 리스펙
    '20.4.6 2:46 AM (119.64.xxx.75)

    남편이랑 알콩달콩 아이들과 서로 사랑하며 남은 인생 재미나게 사세요.
    엄마는 ㅠㅠ 다행히 경제력도 있으시다 하니 그냥 연을 끊어요. 처음엔 힘들어도 2년 3년 지나면 잊혀져요.
    치열하게 살아온 스스로를 칭찬하고 자랑스러워 하세요.
    앞으로의 인생도 굴곡이 없을 수는 없겠으나 행복하시길 바라요

  • 12. 전혀
    '20.4.6 4:38 AM (75.156.xxx.152)

    허무한 인생 아니구요 아주 자랑할 만 한 인생 살았어요. 그리고 힘들었던 건 어머니 탓이지 고등학교 때 공부 안해서도 아니예요. 오히려 원글님은 그 어려움을 극복한 대단한 사람이죠.

    이제 하고 싶은대로 살아도 괜찮아요. 예전보다 치열하지 않게 사는 거에 혹시 모를 죄책감이 있다면 개나 줘 버리고(개 미안) 즐겁게 지내요. 원글님은 그럴 자격 충분히 있어요.

  • 13. 힘내요
    '20.4.6 4:39 AM (49.196.xxx.22)

    원글님 쓰신 내용이 코엘료?의 연금술사 책 내용 비슷해요^^
    저도 오늘 딱 42세인데 얼마전에 무기력증와서 종일 자고 먹고 그랬어요. 직장정리 하니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 14. ㄴㄷ
    '20.4.6 6:11 AM (118.223.xxx.136) - 삭제된댓글

    정말 열심히 사셨네요 치열한 과정 속에서 정신적으로 필요한 과업들을 아마 다 이루어내셨을 거예요 그래서 님 정신이 이제 좀 쉬려고 하는 게 아닐까..
    님만큼 열심히 못 살았는데 40중반 되니 몸이 자꾸 편해지고 싶어 하네요 몸도 마음도 다 귀찮아서 돈이고 일이고 놓고만 싶은 요즘이에요

  • 15. 곧여름일까
    '20.4.6 7:39 AM (116.124.xxx.144)

    비슷한 삶을 사는사람 많네요.
    요즘 전 억울해요.
    학창시절 공부 중요하다고 열심히하라고 말좀 해주지 싶어 엉마도 언니들도 다 미워요.
    살면서 그댓가가 너무 비싸요..
    네2버에 무기력 정체성 인문학의정의 뭐 이런거 찾아보고
    지쳐서 사람 만나는거 싫고 힘들지만 출근하고 퇴근하고
    공부잘했던 언니들 전업하며 편히 취미생활하며 애들 잘키워 의대 보내고 사립댑느내고 다부럽고 내힘듬이 우리애들에게 대물림 될것 같아 두렵고 그러네요.
    중간정도 삽니다.
    멈추지 않고 열심히 살아야 유지되는정도죠.
    그래서 오늘도 열심히 화이팅
    원글님 대단하시네요.
    의지가 너무 아름다워요.

  • 16. ...
    '20.4.6 8:00 AM (183.98.xxx.95) - 삭제된댓글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시고 쉬세요
    저는 이룬 것도 없으면서 아둥바둥했고
    놀고 쉬고 있는 아이들보면 답답해요
    공부를 못했느냐 아닙니다
    아이들도 명문대 다니는데
    제 욕심은 좀 커서 수석입학 졸업 뭐 이런 겁니다
    나도 못한걸 왜 아이들에게 바랄까 이러는데
    맘이 참 안 접어지네요
    저도 공부웬만큼했지만 전1을 못해봐서..
    그리고 악착같이 한 적이 없어서 그런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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