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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짧지만 강렬했던 행복했던 순간들 1

행복 조회수 : 6,857
작성일 : 2020-02-16 01:46:14
서울변두리 판자촌지역서 살던 나는 하루종일 동네 친구들과 고무줄놀이.땅따먹기.친구잡기 놀이를 하며 살았어요
저녁무렵 식사때가 되면 친구끼리 인사도 없이 그냥 그렇게 하나둘
놀다가 집으로 가버렸죠 무리에서 함께 놀던 친구가 없어지면
집으로 이제 들어갔구나..남아 있는 친구랑 놀다 마지막 한두명이 남아 놀이를 할수 없을때 자연스레 그날의 놀이는 끝이나는거예요

그렇게 집에 오면 부엌에서 밥하시던 엄마가 작은마당 한켠에 있는
수돗가로 데리고가 향이 너무 강렬해 40년도 넘은 지금도 그향이 뇌리에 콕 박혀 잊혀지지 않는 다이알 비누로 쓱싹 씻겨주셨어요
그느낌 그향 흙먼지속에서 하루종일 놀다 들어와 그리 씻고 온가족이 둘러 앉아 먹던 김치찌개 청국장 고등어조림 김장김치 마늘쫑
큰 무가 들어있던 시원한 동치미 소주 뚜껑으로 모양낸 칼칼한
물김치..어린아이들 입맛에 맞는 음식 하나 없었지만 나이차 안나는 우리집 4형제는 어찌나 맛나게 잘먹었나 몰라요
반찬투정은 커녕 아무거나 주는대로 먹었어요
간식하나 없던시절..하루에 한번 아빠 출근하실때 인사하면 주시던 동전 100원
그거 아껴 모았다가 과자하나 아이스크림 하나 먹을때 행복감은 말할수가 없이 좋았더랬죠

초등생이 되고부터는 형제들은 각자 학교친구들과 어울리고
형제들과 달리 밖에서 노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나는
단칸방 한구석에서 종이인형 오려 혼자 인형놀이 하는게 유일한 낙이였어요
부잣집 아가씨도 됐다가 멋쟁이 회사원도 됐다가
혼자 조용히 방해 받지 않고 인형놀이 할때 저는 꼭 꿈을 꾸는것 같았어요 우리집에는 없던 핸드백 뽀족구두 멋쟁이 가방
어느순간 내머릿속에 그려지던 상상의 폭이 종이인형으로 채워지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흰연습장에 내가 그리기 시작했어요 인형도 그렸고 옷도 내가 디자인해서 그리고 주방도구 신발 구두 악세사리 심지여 살림살이 가구까지도요
얼마나 신기하고 멋지고 신나는 일이였겠어요
내가 상상했던것을 자유자재로 요술처럼 만들어 내고 있었으니..
미술에 소질이 있었던건지 그림만 그리면 학교서 상타오고
나만 가지고 놀았던 내가 만든 인형들을 동네친구들 부탁으로 만들어 주고 학교친구들도 만들어주곤 했어요
밤늦게까지 매일 그렇게 그리고 오리고 그리고 오리고를 반복했지만 왜그리 즐겁고 행복했었는지..지금 생각해도 매일 날마다 흰종이를 보면 뭐든 그렸던것 같아요
지나가다 멋지고 이쁜옷을 보면 집에 와 그려 내인형옷을 만들어줬어요
아무도 침범할수 없는 나만의 영역 나만 가지고 있는 유일한 내가 그리고 탄생시킨 종이인형
세상을 다 가진것 같은 행복감이랄까요?

어린시절 강렬하게 남아있던 짧지만 행복했던 순간
그건 엄마손에서 전해지던 다이알 비누향과 내가 만들어 냈던
종이인형을 그리고 있을때 그때였네요
IP : 112.154.xxx.39
1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글너무
    '20.2.16 1:51 AM (211.52.xxx.84)

    잘쓰네요.
    옛날 어떤 모습,감정이었는지 조금은 알것 같아요

  • 2. dd
    '20.2.16 2:02 AM (220.78.xxx.146)

    오.. 저도 웬지 어릴때. 할머니랑 같이 인형놀이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완전히 잊고 사는줄 알았는데..
    종이 인형놀이.......... 100원이면 한장 살 수 있고 좀 더 좋은건 300원.. 이던 시절^^
    글 더 써주세요
    정감있고 좋아요

  • 3. ..
    '20.2.16 2:08 AM (211.212.xxx.181)

    저의 어린시절과 거의 닮아있어서
    공감되고 신기하고 미소가 떠오르네요...!

  • 4. 종이인형
    '20.2.16 4:17 AM (175.125.xxx.154)

    숱하게 오리고 옷갈아 입히고 ㅎㅎ
    참 좋았던 시절이였어요.

  • 5. ㅎㅎ
    '20.2.16 4:18 AM (223.33.xxx.173)

    지금은 그 기억과 연결된 일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6. 따뜻한 기억
    '20.2.16 6:00 AM (123.98.xxx.40)

    오징어 그려놓고 열 발 가생, 나이먹기, 비석치기, 다방구 조등때 진짜 열심히 나이먹기 하고 놀았어요 애국가 울리면 집에 갔지요. 그 땐 다 들 불 때서 연기가 모락모락^^가장 행복했던 때였지요~전 그림에소질이 없어서 언니가 마루인형 옷 뜨게질로 떠줬었어요. 가끔 살면서 궁금해요. 내아이는 어떤 놀이로 어린 시절을 기억할지. 아이가 며칠전 유치원에서 비석치기라고 네모 반 듯한 돌 같지 않은 비스무리 물건일 들고 왔는데, 참 내 어린시절이 스치더라구요. 비석치기 하려면 적당한 돌 찾으려고 찾아 헤매던 그 때를요.

  • 7.
    '20.2.16 6:02 AM (135.23.xxx.38)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않았지만 그때가 순수하고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였죠.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잘 산다고 말하지만 그런 인간미는 점점 사라지는듯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절대로 지우지 마세요..

  • 8. 아~
    '20.2.16 7:59 AM (116.34.xxx.62)

    읽는 동안 너무 행복하네요

  • 9. 리메이크
    '20.2.16 8:12 AM (221.144.xxx.221)

    그렇게 멋진 유년 시절을 가지신 원글님처럼
    우리 아이들이 자라날 수 있다면 좋겠어요^^

  • 10. ..
    '20.2.16 8:50 AM (218.236.xxx.61)

    글을 읽으니 마치 제가 그랬던거 같네요.
    그런데 소주 뚜껑으로 모양낸 물김치가 도대체 어떤거죠? 궁금해요

  • 11. 원글
    '20.2.16 9:32 AM (112.154.xxx.39)

    당근을 둥글게 잘라 소주뚜껑으로 한번 눌러쥐면 톱니모양당근을 만들수 있어요
    엄마가 당근 썰어주면 제가 그위에 뚜껑 눌러서 모양 만들었어요 ~^^

  • 12. co
    '20.2.16 9:58 AM (14.36.xxx.238)

    원글님 덕분에 옛 추억 소환~
    저 또한 짧게나마 즐거웠던 추억으로 들어가 행복했어요^^

  • 13. serotonin
    '20.2.16 4:36 PM (39.112.xxx.97)

    읽는동안 저도 넘 행복했어요
    글 솜씨가 정말 대단하세요
    차분히 하나하나 흘러가듯 장면을 그려내는 능력이 탐나네요
    글쓴님께 흘러간 지난 추억이야기 들으면 하루종일 들어도 지겹지 않을 거 같아요
    시리즈로 계속 연재해 주실 수 있나요?ㅎㅎ
    넘넘 재밌고 따듯해요 글이 ㅎㅎ

  • 14. 맞아요
    '20.2.16 5:14 PM (211.58.xxx.127)

    친구들 중 솜씨 있던 애가
    종이인형 옷이랑 머리가발이랑 만들어줬었는데...
    소꿉놀이하면서 칼로 벽돌 긁어 고추가루라 하고
    장미꽃잎 짓이겨 주스라하고 갑자기 추억 소환되네요.

  • 15. ..
    '20.2.16 11:02 PM (211.212.xxx.181)

    벽돌 고춧가루...!!!
    아궁...추억 돋네요...ㅋ
    우린 돌로 빻았는데~^^

  • 16. 그리고
    '20.2.18 5:19 PM (114.203.xxx.61)

    기분좋던 밥뜸들이는 냄새~~
    선잠깨면 부엌에서 달그락 거리시던 엄마소리
    곧이어 들리는
    밥먹어라~~!
    아 갑자기 뭉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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