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아이의 엄마이다보니, 제일많이 말을 건네고 눈동자를 맞추며 들여다보는 대상은, 당연
우리 아이들이에요.
하루에도 몇번씩 엄마를 부르면서 달려와 안기거나, 혹은 식탁위의 망고주스 먹어도 되느냐고
묻거나, 혹은 교복치마를 찾는 아이들때문에, 제 일상은, 정말 정신없어요.
말귀를 못알아들어 간혹 우두커니 서있는 사춘기에 접어든 큰아이나, 이미 답을 알고있으면서도 나른하게 물어보는
일곱살짜리 아이에게 정성껏 대답을 해주다보면, 그하루가 너무 지치고 피곤해서 소파에 넋놓고 앉아있기도 해요.
그렇게 아이와 함께 지내는 그 순간순간마다 제 어린날들의 기억들이 떠올라요.
세탁기가 없던 시절,엄마와 함께 해야했던 그 많고 무거운 빨래들,
늘 손에서 놓지못했던 빗자루,
밥이 탈까봐 조마조마해하면서 솥단지앞에 쪼그리고 앉아 불조절을 하던 그 어린날들이.
그자리에서 몇번씩 심부름을 도맡아하면서 숨이 막힐듯했던 그 더운 여름날들이.
어쩌다 잘못해서 연탄을 깨뜨리는 날은 머리채를 잡고 마구 뒤흔들고,
빨래가 땅거미진 저녁날, 하얗게 펄럭이면 펄펄 뛰며 고성을 질러대고
열개남짓한 고구마를 한꺼번에 쩌낸 날,
마당으로 끌고나와, 혼자 다 먹어치우라고 엄마가 소리소리 질러서 셋방살이 하던
그 모든 사람들, 다 팔짱낀채 보게 만들고
연탄가스로 쓰러진날은,
비실비실 살아났다고 머리채를 잡아 흔들어 마당에 내동댕이치고,
열살무렵, 방둑아래 강물에 빠져 온몸이 젖은채로 나타난날에는
알콜중독으로 눈이 번들거렸던 아빠에게 붙들려 다시 방둑아래로
굴렀던 그어린날들이.
한번도 다정한 목소리로 제이름을 부르지않았고
늘 네머리엔 두부만 들었다,
늘 네머리엔 dung만 들었다.
마이너스 최최최저 저질이다,
밥상머리에서든, 손님들이 있는 자리에서든 그어디에서든
그런 말을 함부로 꺼냈던 아빠와 엄마.
겨울 저녁바람에 컴컴한 수돗가에 웅크리고앉아
그릇을 닦아대던 제 손은 처참하게 터져 피가 응어리지고 다시
갈라지기를 반복하던 그 유년을 보냈는데
여상을 졸업하고 1년간의 백수로 지냈던 그 시절엔
당시 식당을 하던 우리집의 일꾼으로 일하면서도
절대 금고속의 500원을 건들지 못하게 했던 20대.
500원으로 왕복버스비를 해야, 정보처리기능사자격증을
준비할 학원을 다녀야 하는데, 늘 바쁜 점심시간을 치루고도
절대 돈을 주지않았던, 먼지투성이 빈주머니였던 20대.
동전한푼 없는 겉옷에 손을 찔러넣고, 버스가 오기전
앉아있던 도심한가운데의 벤치와
타지에서 시작한 직장생활뒤 모아둔 돈을 집에서
다 써버린 뒤, 보증금낼길이 막막해진 셋집에서
쫒겨난 그 새벽, 놀이터벤치에 앉아 올려다본 그
겨울 밤하늘,
별은 저리도 많은데,
맞은편 창턱엔 노란색 니트차림의 여자가
팔을 괴고 꽤 오랫동안 나를 쳐다보았어요.
분홍색 커텐이 쳐진 그방은 온화하고 따뜻한
빛이 감돌았어요.
갈곳은 생각나지 않았지만, 절대로
창문앞을 떠나지않는 그 여자의 얼굴앞에서
커다란 가방을 들고 그자리를 떠났던 그 밤,
올려다본 그 겨울밤하늘 ,별이 참 많았어요.
그렇게 다정한 목소리로 나를 돌아보게 하는
이름 한번 부모님께 못들어보고,
가난한 누군가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들 키우고
정신없이 살아왔던 30대를 지나고
이제는 40하고도 중반이란 터널을 지나는 중이에요.
지금은 눈이 멀고, 몸이아픈 엄마가
저와함께 지내고 계세요.
아이들의 이름을 부를때,
무언가를 설명하는 제 목소리를 제귀로 들을때
그 온화하고 평온한 어느 오후, 갑자기 가슴속에
슬픔이 밀려와요.
이렇게 다정한 목소리를 들어본적이 없어서.
이렇게 다정하게 따듯하게 부를수있는데
한번도 못들어보고,
늘, 머리속에 두부만 들었다, 저질이란말을 들으면서
깊은 땅굴에 묻힌 시커먼 석탄을 떠올리며 컸던 유년과
한번도 돈을 모아보지못했던(자식의 돈이라고 마음껏 썼던 부모님덕분에) 20대의 지난날들과
가난으로 허덕였던 30대와.
지금은 늙고 힘없는 엄마와 살고있는 40대의 나
그래,
누군가는 좋은재료로 만들어진 카스테라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누군가는 포근한 밤식빵으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누군가는, 달콤한 타르트로 만들어지기도 하지.
누군가는 거친 팥으로 짓이겨진, 붕어빵으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참고 견디면, 나도 어두운 오븐안에서
오랜 시간을 견뎌낸 맛있는 노릇노릇한 빵이 되어있을거야.
그렇게 생각하면서 저는 그순간을 견디어낸것 같아요.
지금도 전 완성된 빵이라고는 생각하지않아요,
그러기엔 세심하게 조심스럽게 다뤄지고 반죽되어지지않은 빵일수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아직 스텝은 엉키지않았으니까, 천천히 다시 가면 되겠죠?
슬픔이 앞으로 다가오면 나는 뒤로 한발
기쁨이 뒤로 다가오면 나는 앞으로 한발.
이렇게 이렇게.. 슬로우슬로우 퀵퀵.
이말은 이때 쓰는 거겠죠?
슬플때, 또 너무 기쁠때. 그렇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