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멍한 기분인데요.
저는 고향이 광주고요. 직장 때문에 상경한 이후 결혼도 했고
서울에 잠깐 살아보다 경기도에 정착한지 20년쯤 되어가요.
40대 중반이구요.
정치성향은 당연히 진보이나, 딱히 사회참여 활동을 해본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최근 조국장관 관련 사태가 너무 엄중하고 속이 상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꾸 생각나서 민주당원으로 정식 가입했어요.
사는 곳은 신도시인데 이쪽은 자한당 지지자들이 많긴 해요.
정치얘기가 나오면 언쟁을 하는게 싫어서 제 의견은 말하지 않고 그냥 듣기만 하는 편인데
답답할 때가 많긴했죠. 입만 열면 문프 욕이니까요.
대부분 고학력에 돈이 많은 사람들이고(많은척 하는 건지는 모르겠어요),
그중 반정도는 교회 또는 성당에 다녀요.
그들 중 일부는 제 고향을 알면 묘한 표정을 지어요.
저는 제 고향이 좋은데, 늘 그리운데, 자랑스러울때도 너무 많은데
마음을 줬던 지인이 제 고향을 알고 그런 표정을 지으면 참 처연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뭐 그건 20년을 지내오며 단련된 일이라 이젠 어느정도 적응이 되었어요.
관계의 유지를 위해, 또 어쩔땐 생존을 위해
정치성향이나 고향을 숨기는 일들도 가끔 필요했고요.
그래서 82가 편했죠.
비슷한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많구나. 싶으니까요.
나는 상식을 가진 보통의 시민이다. 이런 안도감이 들었었는데
최근 82는 오프라인에서 본 사람들과 비슷한 사람들이 많아서 예전만큼 편하지는 않네요.
물론 알바도 있겠지만 그들이 분명 존재하는 걸 알아요.
35프로는 실제로 존재하니까요.
어제 어떤 분이 작금의 사태에 대해 마구 분노하고, 나라가 망해간다 어쩐다 하며 문프를 또 한참 욕하더니
너무 당연하게 "광화문에 가셨죠?" 하더라고요.
거기다대고 전 "아니요. 광화문은 안갔어요."
이렇게 대답했어요. 그리고 나서 계속 생각이 많아지네요.
비루하다고 할까요.
5.18때 저희집엔 교련복을 입은 고등학생 오빠가 숨어들어왔어요.
엄마가 벽장에 숨겨주시고 밥을 지어 주셨죠.
군인들이 혹시라도 그 오빠를 찾아 각 집을 수색하게 되면 저희도 어떻게 될런지 모르는
그런 무서운 날들이었지만 오빠를 숨겨준 그 일에 대해 나중에 엄마는 말씀하셨어요.
"어떻게 내보내. 다 내새끼 같은데.."
다음날 아침 일어나보니 그 오빠는 나가고 없었다고 해요.
아주 경우가 바른 학생이었다고. 살아있다면 꼭 인사를 하러 올 법도 한데 소식이 없는것이
아마도 잘못되지 않았겠냐고.
엄마가 슬픈표정으로 이야기 하시던게 생각이 나네요.
광주가 뭘 잘못했다고, 전라도가 뭘 잘못했다고 조롱의 대상을 삼는 일베를 보면,
광주출신이라는 제게 묘한 표정을 보내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아파져요.
그런데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은 애들이 다 그렇게 논다며 일베말투를 쓰며 깔깔대요.
왜 우리는 여당이 되었는데도 계속 야당같고
늘 소수인 느낌이 들며
한발한발 내딛는게 이리도 어려울까요.
에효. 그냥 넋두리입니다.
답답한데 뭘 해야 할지는 모르겠고
슬픈데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암튼 그렇습니다.
갑자기 이 노래가 생각나네요.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투쟁 속에 형제모아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동지의 손 맞잡고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주자
해 떨어저 어두운 길을 서로 일으켜주고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다리 서로 기대며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마침내 하나 됨을 위하여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주자
해 떨어저 어두운 길을 서로 일으켜주고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다리 서로 기대며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마침내 하나 됨을 위하여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마침내 하나 됨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