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대
< 문자 >
“저를 위해 쓰신 시, 이제서야 접했습니다.
송구하고 면구하고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 조국
이른 아침 조국 전 장관의 문자를 받고 답변을 한참 망설였다. 생각지도 못한 문자였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사람(목숨, 삶)’이 걱정이었으므로 어떤 정치적인 표현의 답변보다는 건강에 대한 걱정을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았다. 걱정하는 분들이 너무 많으니 가족 모두 건강하셔야 한다고 짧게 답변을 드렸다.
내가 쓴 글 ‘살아서 돌아온 사람’은 시라기보다 그냥 울분이었고 연민이었으며, 걱정과 살아 돌아온 것에 대한 안도와 감사였다. 많은 분들이 절망하고 아파할 때 다르게도 한번 생각해 보자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위로이기도 했다. 살아 돌아왔으니 그것으로 됐다는 심정이었다.
조국 전 장관의 문자를 공개할까 말까 역시 종일 생각하였다. 공개하기로 했다. 현재 그의 절박한 마음과 사람을 대하는 겸손하고 겸허한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눈물 흐르듯 줄줄 망설임 없이 흘러나온 열거 표현(송구하고 면구하고 감사하고 고맙다)은 너무 아프고 괴로운 심정의 다른 표현임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그것을 함께 알고 있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자신이 버려지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한 비통함과 애틋함이 문자에 그대로 드러났다. 제도(법)와 결합된 인간의 추한 욕망, 저 악무한의 손아귀, 무한 악의 난도질로부터 그를 구출해야 하는 것은 윤석열의 법, 검찰의 법, 법원의 법 위에 사람의 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언론의 악마 같은 문장 장난질에 치가 떨렸다. 지구 인류 최고의 상징체인 언어를 이토록 간사하게 더럽힐 수 있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이를테면
-숨조차 쉬기 힘든 답답한 세상, 조국은 숨을 쉬고 있다.
-조국이 밥을 먹다니,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 너무 한 일 아닌가.
-조국이 걷고 있다, 무슨 일인가.
-조국의 가족 모여 산다, 어떤 대응책이 나올지 궁금하다.
-조국이 다리로 걷고 있다, 그의 팔은 입원하였나.
이들 예시문보다 더 더럽고 야비한 문장들이 두 달여간 나라와 국민의 머리를 지배하였다.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나. 나라가 어지러워질 때 문장부터 더러워진다. 더러워진 문장을 그대로 둘 수 없다.
이 글은 조국 개인을 넘어 ‘사람의 법’과 ‘사람의 언론’과 ‘사람이라는 원칙’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믿음을 전제로 썼음을 밝힌다.
< 살아서 돌아온 사람 >
조국,
당신은 인간이 만든 인간 최고의 악마조직과 용맹히 싸우다
만신창이가 되어 우리 곁으로 살아서 돌아왔다.
울지 마라, 이것은 인간의 역사,
기록이 사라진 이후까지 기록될 것이다.
당신의 온가족을 발가벗겨 정육점 고기처럼 걸어놓고
조롱하며 도륙하던 자들은 떠나지 않고
우리 곁에 있으므로
우리의 철저한 공격 목표물이 되었다.
난도질 당한 당신의 살점과 피와 눈물이 만져진다.
죽음 같은 숨을 몰아쉬며 내민 손,
그 아픈 전리품을 들고 우리 전부가 백정의 심정으로 최전선이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죽고, 노회찬 대표가 죽어서 간 길을 따라
당신은 절며절며 살아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한 몸 우선 옷부터 입어라.
밥부터 좀 먹어라
우리는 당신이라는 인간, 당신이라는 인류의
생존한 살과 체온을 안전하게 포위하였다.
누구도 당신과 당신의 가족을 건드릴 수 없이 되었다, 우선 잠부터 좀 자라.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온 당신을 불씨처럼 품은
우리는 오래전부터 사실 활화산이었다.
하루쯤 울어도 좋다, 내일의 내일까지가 우리 것이니까.
하루쯤 통곡해도 무관하다, 당신이 살아서 돌아왔으니까.
오늘까지는 당신의 생환이 좋아서 울자
당신 투블럭 머리카락 염색 빠진 끝부분 알뜰히 염색하고
샤워하고 상처투성이 심장도 수습하라,
내일은 우리가 백정의 심정으로 최전선이니까
조국,
당신이 살아서 돌아왔다,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왔다.
살아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