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을 영원히 사회로 부터 격리시켜 주십시오"
27년 전 오늘, 서울지검 공안1부 박만 검사는 사노맹 사건 1심 재판을 받고 있던 나의 결심공판에서 "이 사람을 영원히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기 위해 사형에 처해 달라"고 재판부에 구형하였습니다.
반국가단체 수괴임무 종사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한다고 국가보안법 3조에 적혀 있고, 동료 박노해 시인이 사형 구형에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감옥살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그날 사형이 구형될 것임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재판에 나갈 때 구치소의 교도관과 감방 동료들이 건네 준 우황청심원도 복용하고 최후진술문까지도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대 10년 선배라며 사적인 대화를 나누기도 했던 검사의 입에서 인간에 대하여 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이고 잔인한 증오의 표현인 "사회로 부터 영구히 격리"라는 극형 구형을 듣는 순간, 나도 몰래 등줄기에 찌르릇 전기가 통하듯 충격을 느꼈습니다.
무기징역이 선고되고 이후 15년형이 확정되어 6년여를 독방에 살면서도, 또 이후 미국에서 계속 법을 공부하면서도 우리 법시스템에 대한 그 때의 근원적 절망감은 잊을 수 없었습니다.
요즘 조국 법무부장관을 둘러싸고 장관사퇴를 요구하는 자한당 중심의 광화문집회와 조국수호 및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서초동의 거대한 촛불 집회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상황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 조국수호냐 조국사퇴냐를 핵심문제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고, 문재인대통령 지지냐 자한당 지지냐의 문제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조국장관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검찰개혁에 대한 찬반이 중요한 문제라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참된 민주주의와 과감한 검찰개혁없이 자유와 평등, 공평과 공정, 경제적 사회적 정의를 실현할 수 있을까, 희망없는 청년세대의 고통, 소외된 노동자, 차별받는 여성문제까지도 아우르며 인간다운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에 의문을 갖습니다.
검찰권력의 민주적 통제, 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개혁입니다. 지금 당장 특수부 축소, 피의사실공표 중지, 수사과정의 인권보장 조치 추진 등 과감한 개혁 조치를 취하는 것도 정말 필요한 일입니다.
조국장관과 가족에 대한 먼지털이식 수사로 이러한 검찰개혁을 중단시키는 것은 있어서는 안될 일입니다.
제가 수감되어 머무르던 서울구치소 7동의 독방에는 당시 사회적으로 잘 알려진 여러 분들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저의 두어칸 옆방에 현대가의 후계자였던 정몽헌사장이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대통령에 출마하려는 정주영회장 때문에 현대상선 비자금 사건의 책임을 졌습니다. 정몽헌 사장은 출소하여 현대 회장으로 취임하였지만, 결국 2003년 대북불법송금사건 조사를 받던 중 현대계동사옥 12층에서 투신자살하고 말았습니다. 마광수 연세대 교수는 당시 "즐거운 사라" 필화사건으로 구속되어 저의 방에서 몇칸 떨어진 곳에 수감되었습니다. 유난히 목이 가늘어 보이던 마광수 교수는 집행유예로 출소했지만 결국 2017년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몇 건물 건너에는 전 민중당 고문 권두영선생이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구치소의 변호사 접견실에서 스치듯 잠깐 뵈었던 권두영선생은 "이제 희망 둘 곳이 없다"며, "내가 죽거든 위령제나 지내달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두 세달 후 독방 창살에 내복을 걸어 목매달아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글쎄요, 왜 이리 자살하신 분들이 많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체포와 구속, 검찰의 수사와 기소에 따라 재판을 받고, 감옥살이를 하는 과정이 인간성의 뿌리를 총체적으로 뒤흔드는 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충격적인 과정을 거치고도 멀쩡히 제 길을 가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과거의 어두운 기억을 제대로 들춰 보지 않고 묵묵히 살아내는 분들도 많지만, 그 속에는 말로 하기 어려운 인간적 고통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심지어 민주화 운동에 종사하여 승리의 역사를 이어 온 분들의 마음 속에도 제대로 심리치료 한번 받을 기회도 없이 살아온 지난 삶의 그늘이 드리워 있는 경우가 많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지난 시절 우리는 인간의 본질을 역행하는 고통 속에서 생존하고 버티며 살아온 삶을 무수히 보아 왔습니다.
안기부에서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서울구치소에 옮겨져서 겨우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재판을 치렀지만 우리들은 행복한 편이었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공안검사와 군부독재가 민주주의를 짓밟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 조국 장관, 그의 아들과 딸, 부인 정경심교수가 겪고 있는 거대한 마녀사냥은 우리들의 경험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범죄 내용이 어느 하나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언론에 의해 현행범보다 더 극심한 단죄를 받고 있으니 말입니다.
법을 가르치고, 법을 공부하면 할수록, 법은 인간화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민주주의의 사법절차는 인권을 존중하고, 섬뜩한 증오와 배제의 논리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증진하는 법집행 과정이 되어야 합니다.
고발과 처벌에 의지하는 법가의 사회가 아니라, 좀더 소프트하게 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조그만 잘못에 대해서도 무조건 기소하고 재판하여 감옥에 보내는 범죄와 처벌이라는 수단을 최우선적 수단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조차도 변화시키고 감동시키는 새로운 법무 검찰 행정을 보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과 갈수록 어려워져 가는 청년들의 암울한 미래에 대한 좌절감을 넘어서서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희망적 환경도 그러한 긍정적 변화와 비전 속에서 가능합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주변국과의 협력 속의 번영도 새로운 사회로의 변화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사형구형에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감옥 독방에서 하루 24시간을 보내던 이삼십년 전의 그 시간을 돌아보며 우리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 봅니다.
지금 검찰개혁 문제는 모두에게 공감을 받는 주제가 되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꼭 긍정적인 결실이 있기를 희망합니다.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펌) 자살로 이어진 검찰수사에 대한 소회 백태웅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
검찰개혁 조회수 : 1,065
작성일 : 2019-10-08 17:51:56
IP : 59.13.xxx.68
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감사합니다.
'19.10.8 5:53 PM (211.39.xxx.147)백태웅씨 글 잘 봤습니다.
가슴을 울립니다.
이래서 검찰은 개혁되어야 합니다.2. 검찰개혁
'19.10.8 5:54 PM (59.13.xxx.68)함께 읽고 나누고 싶습니다.
많이 읽고 공유해 주세요~3. 꼭행복하여라
'19.10.8 5:56 PM (211.36.xxx.18)백태웅씨 글 잘 봤습니다.
가슴을 울립니다.
이래서 검찰은 개혁되어야 합니다.222224. 토왜당_불매
'19.10.8 6:15 PM (58.143.xxx.82)검찰은 견제가 꼭 필요한 조직입니다
5. 쓸개코
'19.10.8 6:19 PM (175.194.xxx.139)백태웅씨 글 잘 봤습니다.
가슴을 울립니다.
이래서 검찰은 개혁되어야 합니다.3336. ㅈㅈㅈㅈㅈㅈ
'19.10.8 8:18 PM (161.142.xxx.45)법을 가르치고, 법을 공부하면 할수록, 법은 인간화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민주주의의 사법절차는 인권을 존중하고, 섬뜩한 증오와 배제의 논리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증진하는 법집행 과정이 되어야 합니다.222222222222222222
이래서 검찰개혁은 되어야 합니다.444444444444444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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