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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다큐 영화 '김복동'

... 조회수 : 852
작성일 : 2019-08-14 13:44:36
전 너무 무섭거나 가슴아픈 영화, 소설 등등을 잘 안 봅니다.
제가 감당할 수준이 넘어가면 아무리 입소문이 좋고 작품성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안? 못? 봅니다.
40여년 전 어린시절 만화 '플란다스의 개'도 '엄마찾아 삼만리'같은 것도 본방은 열심히 봤어도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다시는 못 보고 있어요. 그 슬픔의 감정을 전 감당하기 싫거든요.
그래서 좋았지만 두번 못하는게 많아요.

너무 현실적이고 사실적이어서 끔찍한 건 일부러 보지 않습니다. 
꼭 본다고 해서 그 아픔이나 슬픔을 외면하는 것도 아니고, 잊지 않고 내 중심의 생각은 갖고 있으면 된다는 주의입니다.
일제가 유관순에게 했던 고문 내용을 상세하게 적은 걸 호기심에 읽어 봤다가 트라우마가 심하게 생겼어요
이 글을 읽는 분은 호기심에라도 절대 검색해보지 마세요.
인간이, 공부해서 저렇게 쓰는게 진짜 인간일까, 인간 자체에 대한 혐오가 생길 지경이니까...
고문 경찰관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 발전이 어디까지였을까 상상만으로도 혐오스러울 정도...
그 이후로 다시는 그런 힘든 건 안 봅니다.

특히나 위안부에 관한 내용은 정말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가슴아프고 끔찍해서 '팩트'는 알고 있지만 굳이 보려고 안 합니다.
팩트를 잊지 않고 있다면 굳이 아파하면서 기억할 이유는 없다, 그리고 이건 진실을 외면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다소 비겁하지만, 내 감정을 보호하는 이기적인 방식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다큐영화 '김복동'을 보겠다 생각한 건 단 한문장 때문이었습니다.
'단지 피해자로 남지 않고 인권 운동가로 살다간 사람'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 그 이.

나의 예상대로 이미 다들 알고 있는 복동 할머니의 위안부 시절의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이후의 할머니의 투쟁도 뭐 그리 영웅적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할머니의 느릿느릿한 움직임, 말소리는 참 강력합니다.

할머니의 젊은 시절, 중년의 사진과 다큐를 찍던 시기의 얼굴 모습이 할머니의 인생을 고대로 반영하고 있어요
젊은 시절 마냥 물색없이 이쁘기만하던 아가씨가 악몽에서 탈출해서 되돌아와 살던 중년에는 얼굴에 억울함과 고통, 그래도 악착같이 살아남겠다는 독기 서려있어서인지 인상이 별로 좋지 않아요.
그러나 구순이 넘어서 증언, 강연, 집회에 참석하는 할머니의 얼굴은 우아하고 너그럽고 총명하지만, 단호한, 그래서 매우 매력적인 인상으로 바뀌어있습니다.
이 영화의 포스터에 나온 사진을 보면 그런 생각 안드세요?

한 인간이 타의에 의해 복구되기 힘들만큼 몸과 마음, 정신적으로 짓밟혀서 인간의 존엄이라는 미사여구는 개나 줘버린 구렁텅이에 굴러도 내 존재의 위엄, 존엄은 내 스스로 지키고 세우는 것이다라는 걸 온몸으로 긴 생애를 통해 증명해온 분이라는 걸 이 영화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할머니 얼굴은 그래서 온화하면서도 단호하게 멋있게 변했나 봅니다.

세상에 가장 치명적인 상처를 주는 사람이 누굴까요?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입니다.
할머니가 위안부 등록을 하겠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손절한 사람이 형제라고 하더군요.
조카들 앞길 막는 일을 굳이 해야겠냐면 연락을 끊었다고 합니다.
하필 전날 본 또 다른 다큐영화 '앨리스 죽이기'에서도 억울하게 몰린 주인공을 가장 먼저 손절하고 인연을 끊은 사람들은 '가족'입니다. 
생판 남들보다 더 가슴 한복판에 비수를 꽂는 거죠.
이래서 '아이 캔 스피크'에서 주인공 할머니가 위안부 증언하고 나서 형님, 이럴 수 있냐, 왜 이제 말했냐며 끌어앉고 같이 울었던 구멍가게 아줌마는 환타지일 수 밖에 없는 거죠. 현실에는 이런 따뜻한 이웃은 없습니다. 차갑고 냉혹한 경멸만이 있을 뿐...

우리 나라 역사에는 감추고 싶어도 인정하고 창피해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화냥년'이란 말을 아시나요?
고려말기 원나라 지배시기에 공녀 공출당해서 원나라에 끌려갔다가 되돌아온 '환향녀'를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여자들을 비하하고 경멸해서 부르던 말이 변해서 화냥년이 된건 다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국가의 이익을 위해 희생당한 환향녀을 경멸적으로 화냥년으로 만든 역사가 있죠.
그 역사는 잊혀지고 화냥년이라는 욕만 남았고...
욕먹을 사람은 환향녀가 아니라 환향녀를 만든 지배층이어야 하거늘, 본인들의 책임을 감추기 위해 환향녀를 죽일 년들로 만들어 버리고 시선을 분산시키는 거죠.

현재 위안부 할머니들을 보는 시선에도 환향녀를 화냥년으로 만든 눈길은 없을까?
국가 권력, 특히 점령군의 착취에 인생을 희생당한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잊지 말아야한다고 의식있는 척 하지만, 정작 그들이 내 이웃이거나 내 가족일 때는 배척하지 않고 감싸고 그들을 격려할 수 있을까?
저는 주변에서 이런 내로남불의 이중적인 사람들을 너무나 흔하게 봐서 이젠 충격적이지도 않습니다.
실제로 바로 어제도 들었으니까요. 절대로 그런 의식을 가져서는 안되는 입장에 있는 사람 입에서...
단순히 일본과 같은 스탠스를 가진 사람들만 그런 거 아니더군요. 차라리 이들은 겉과 속이 일관되게 한쪽이니까 차라리 낫습니다. 
그러나 보통의 일반인은 이런 이중성이 대다수더군요.
겉으로는 의식있는 척, 하면서도 왜 저리 나댄다니, 국가에서 집해주고 살게 해줬으면 조용히 살다 가지 라는 사람들 많습니다.
이런 시선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환향녀를 화냥년으로 몰아가서 불가촉 천민 취급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지 않나...

복동 할머니는 이걸 이겨내고 지금도 어딘가 자신과 같은 차별과 경멸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꿋꿋하게 견디는 것이 그들을 응원하는 방법이라는 걸 체득하신 모양입니다.

할머니의 표정, 말을 보면 이미 세상을 거의 다 용서하신 것 같습니다.
다만, 가장 쉬운 단 한마디의 진정한 사과면 내가 진심으로 다 용서했다는 걸 표시하겠다는 오로지 한가지 요구만 있을 뿐인데, 가장 쉬운 그게 안되니, 참...
어쨌든 할머님은 고통스러운 인생을 스스로 구원하셨습니다. 자신의 고통을 넘어 타인의 고통을 위로하는 방식으로....
전 이 대목이 참 존경스러웠습니다.
피해자를 뛰어넘어 인권 운동가로....가 이 뜻이구나...
스스로 투사가 되겠다 맘먹지는 않아요. 그저 어이없는 억압과 편견이 투사를 만드는 것일 뿐...

복동 할머니, 이젠 편히 쉬세요.



PS. 영화 중간에 소녀상을 철거하려는데 맞서서 지켜온 젊은 활동가들의 인터뷰가 간간히 나오는데요.
생각 나시나요?
이 게시판에서 몇달동안 소녀상 지킴이들 밥 사먹이기 운동이 있었던 거?
하도 경쟁이 치열해서 먹고 살기 바빴던 저는 애기들 밥 한번 못 사주고 끝났었죠.
저 애기들이 82가 밥사주고 응원했던 친구들인가 잠깐 생각했었네요. ㅎㅎㅎ
IP : 125.128.xxx.132
9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저도
    '19.8.14 2:20 PM (175.223.xxx.178)

    지금 보고 나오는 길이예요..
    할머니.. 가슴 깊이 존경합니다.
    그 누구보다 위대하신 분.

  • 2. 우와 잘쓰셨어요
    '19.8.14 2:22 PM (203.247.xxx.210)

    진짜 맞아요
    저도 인권운동가 할머님을 보고 왔어요

    나는 예순이 넘어 저렇게 시작할 수 있었을까? 묻게 됩니다

  • 3. ???
    '19.8.14 2:22 PM (211.243.xxx.11) - 삭제된댓글

    꼭 보겠습니다.

  • 4. 진짜
    '19.8.14 2:36 PM (211.246.xxx.124)

    글 잘 쓰셨네요. 부러워요^^
    저도 보고 느낀점인데 잘 표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 보고 더 많은분들이 꼭 보시기를 바랍니다
    할머님 생각하니 또 눈물이 나려하네요 가슴이 참 아파요ㅠ

  • 5. 원글님
    '19.8.14 2:51 PM (175.214.xxx.49)

    영화 후기가 울림이 있어요.
    기억하고 되풀이 되지 않게 깨어 있어야죠.

  • 6. 쓸개코
    '19.8.14 3:17 PM (121.163.xxx.194)

    이번주 주말에 보려고하는데 안내려갸야할텐데요..;
    저도 줄서서 소녀상 지킴이들 밥먹이기 당첨되어 두번인가 참여했었죠.
    그 학생들일지도 모르겠네요.
    유지니맘님은 직접 봤으니 아실지도^^

  • 7. 다큐 영화는
    '19.8.14 4:17 PM (222.120.xxx.44)

    울림이 큰 것 같아요. 예전에 ‘나쁜나라’ 영화 봤을때 생각이 나네요.
    다큐 영화 김복동

  • 8. ...
    '19.8.14 4:51 PM (125.128.xxx.132)

    아직 안 보신 분들께, 앞으로 보실 분들게 한가지 더...

    영화가 끝나면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요즘 한창 잘 나간다는 로코베리가 프로듀스하고 윤미래가 부른 헌정곡 '꽃'을 끝까지 다 듣고 나오셔요

    영화와 별개로 노래만으로도 정말 좋은 노래입니다.
    오늘 아침 라디오 이현우의 음악앨범에서도 나왔는데, 영화, 헌정곡 등의 설명 없이도 아주 좋은 노래였습니다.
    꼭 다 듣고 나오세요

  • 9. 감사해요
    '19.8.14 9:24 PM (116.36.xxx.231)

    글을 참 잘 쓰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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