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엄마와 함께, 고유정이 늘 들고 다녔다는 팥과 소금주머니가 클로즈업된 tv화면을 보고있다가,
조심스럽게 열살때의 그 여름날을 털어놓았어요.
45세된 지금까지 가슴속 깊은곳에서만, 잠들어있던 비밀이었어요.
"엄마, 푸른 박공지붕집 현숙이 기억나지?
정확하게는 내가 퍼뜨린 이야기가 아니었는데,
우리가 가을에 이사갈때까지 9개월을, 정말 힘들었다.
현숙이가, 나한테 어느날 너네엄마 무당이지?라고 해서 아니라고 했는데도
끝까지 우겼더니 그애가 내 머리 잡아버리고, 소리질러대서 벙쪄서 그냥 서있었잖아.
그리고 그날 내가 엄마한테 그런일이 있었다고 하니까.
정작 무당은 현숙이네 엄마가 무당이라고 했었잖아.
얼마나 안지나서 뒷자리 허선영이, 나한테 현숙이엄마 무당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사실이냐고 해서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길래 순진하게도 그렇게 들었다고 고갤 끄덕였더니
소문내자고 그친구가 그러는거야.
그다음날, 소문이 다 났고, 소문의 발원지는, 나와 허선영이라고 현숙이가
자기네집으로 놀자고 부른다음에, 내게 물이 든 스프레이를 얼굴에 뿌려가면서
소리지르고, 경찰서에 신청서 넣어버리겠다고 했었거든.
제발 우리 엄마아빠알지 못하게 해달라고, 잘못했다고 빌었는데
이친구가 무릎꿇으라고 하고 백번씩 쪼그려뛰기 시키고, 또 오리걸음 시키고
그다음부터 숙제 전부 내게 시키고, 똑같은 지도만 세번을 그리고,
준비물 안가져오면, 경찰서에 신청하겠다고 으름장 놓고.
게다가
오늘밤 12시에 너희집에 나쁜 혼백을 불러서 네 머리맡을 빙빙돌게 하겠다고 하고.
부적써서 너 바짝바짝 말라죽게 하겠다고 하고,
(허리띠 풀어서 내 등짝 때리고.)-이건 자존심 상해서 절대 말 못했어요.
안그래도 자기네집 안방엔 어린 남자애혼백이 밤마다 와서 자기침대주변을 빙빙
도는데, 그 혼백 너에게 보내주겠다고 으름짱 놓고.
비오는 날이면,
우산 땅바닥에 찍고 다니지말라면서,
너네 엄마 일찍 죽는 수가 있다고 해서 간담 다 녹이고,
걸핏하면
경찰서에 신청서 넣겠다고
9개월을 괴롭혔어요.
늘 돈이 없고 마른 버즘이 잔뜩 핀 제앞에서
커다란 미제 아이스크림 먹고 샌드위치 먹고
캔디머리핀을 곱게 찌르고, 단정한 세일러복을 입고 다니면서
참새같이 마른 다리가 아프다고 제게 가방을 들게 했어요.
어느날은, 기름범벅인 오래된 도너츠를 꺼내와서 설탕 한개만
찍어야 한다고,
그렇지않으면 경찰서에 신청서 넣는 날이라고 해서
못먹으니까 한살 위인 동네언니랑 낄낄대고.
그와중에도 전 엄마아빠에게 이런 사실이 알려지는게 무서웠어요.
그 친구는, 같은반인 허선영은 전혀 건드리지 않았어요.
오히려 저도 모르게 -저는 허선영외에 더 말한 아이가 없었음.소문이 전부 퍼진것을 전부 제탓으로 돌렸어요.
그일이 있기전에도 그 아이는 감정기복이 무척 심한 편이었어요.
따듯한 봄날, 학교교문을 나서 아직 햇살이 대기중에 평온하게 퍼진
토욜일날, 풀냄새가 잔뜩 나는 논길을 걸어오는 동안에도 갑자기
기분이 우울해져선 네가 우리엄마 죽였지?
라는 말을 하면서 달려들어 절 논바닥에 내팽개친적도 있었던 아이였어요.
그러면서도, 공부도 못하고, 늘 굶주리고 연필도 변변치못한 제게
그 아이가 가진 핑크색가방이나, 살짝 말려진 갈색으로 염색한 펌머리에서
풍기는 샴푸냄새라던지, 숙제를 해주면 감질나게 뜯어주던 빵이나 사탕은
제 기쁨이었어어요.
그런 사소한 기쁨마저도, 경찰서에 신청서란 조건이 붙은 협박으로 바뀌고
한번도 노라고 해볼수없던 그 슬픈 일들.
제가 전혀 알지도 듣지도 못했던, 그 아이침대를 밤마다 나타나 떠돈다는
어린 남자애의 혼령을 내게 보내주고싶다는 말에 얼마나 벌벌 떨었는지
그러면서도 우리 엄마나 아빠가 몰랐으면 해서
혼자서만 그 모든 일들을 다 감당했어요.
그 마음에도 우리 엄마가 아빠가 알면 자존심이 상할것같았고
매일 술만 마시고 노랗게 황달끼가 다분한 아빠는,
분명 저를 길밖으로 쫒아낼것 같았어요.
엄마는 늘 그런 저를 방관하고 어스름진 단칸방에 앉아있었고.
그시절은, 눈이 급격하게 나빠져서 칠판글씨가 벌써 얼룩져서
안보였고, 소숫점 둘째,셋째를 구하는 나눗셈은 멍한 제 눈동자에
각인되지못한채 그저 뜬구름처럼 무심히 흘러가던 초등시절..
이리가도 혼나고 저리가도 혼나고,,
그러다가 그해 겨울을 앞둔 늦가을날, 그 동네를 뜨게 되었을때
한참을 아쉬워하면서 입맛을 다시던 그 친구의 얼굴을 얼마나
소름끼쳐 했는지 몰라요.
그렇게 떠나왔는데
제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일주일정도 되던 토요일 봄날,
제 바로 앞에 앉아있던 단발머리의 마른 여자아이가
내릴려고 일어날때 둘이 서로 눈이 마주쳤어요.
둘이 알아보던 순간이었어요.
여전히 캔디머리핀을 하고 있었고, 여전히 말랐어요.
성적이 안되어서 갈 학교가 없어 집에 있다는 이야기는
우연찮게 그 아이와의 오랜인연에 대한 마침표처럼
듣고난뒤로, 끝났는데,
부모에게도 기대지못하고 오히려 알려지면 제 자존심이 다칠까봐
전전긍긍했던, 한참을 그 아이에게 시달렸던 유년이 생각나서
처음으로 그 이야기를 엄마에게 꺼내놓았더니
"그럼 그애만 손해지, 지 숙제도 하나도 안해놓으니까."
라고 하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