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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의 제왕

그시절 조회수 : 4,478
작성일 : 2019-06-07 18:11:42
초등에서 중등으로 올라가던 몇 년을
강남 끄뜨러미에 있는 반지하에 살았었어요.
이사 들어가던 날,
엄마가 친구한테 자랑하듯, 여기는 방이 크고 해가 잘 들어온다고 하던 말이
기억이 나요.
잘들어왔던가? 전혀 그런 기억이 없는데..
이혼한 엄마와 우리 형제들은
큰 방에 이불 펴놓고 같이 자고,
건넌방은 거의 방치되어 있었는데
엄청난 습기로, 벽은 늘 축축히 젖어 있었고
온 벽이 엄청난 곰팡이로 뒤덮여 있었죠.

그 지하방은 ** 남고의 건물 뒷부분 길가에 문이 있었거든요.
중학교 하교하여 돌아오면
마침, 그 남고 애들은 청소시간쯤인듯,
다들 창틀에 매달려 있다가
성별이 여자인 인간이 지나가면(할머니가 지나가도)
악!!!!!! 여자다!!!!!!!!!!!! 하고 한 놈이 소리치면
떼로 몇 십명이 창가에 달라붙어
여자 여자!!!!!! 하며 소리를 아악!!!!크악!!!! 하고 질러댔는데
그런 함성? 와중에
나는 반지하로 이어지는 3-4개의 개방계단을 내려가
허접한 쪽문을 허접한 열쇠로 돌려 따고
들어가야 했어요.
욕나오게 싫던 순간이었죠.
집이 가까워져 올 때마다 오늘은 제발 아무도 나를 못발견하길 빌었지만
엄청난 촉수를 지닌 그들의 레이다에 어김없이 붙잡혀서
눈길과 비명? 속에 수치심 테러를 당해야만 했어요.

그 집에서 인생에 겪지 말았으면 하는 일들을 겪기도 했는데요,,
어느 날 하교 후에 집에 오니 아침까지 있었던 엄마가 가출을 했고요,
얼마 후에는 또 몇년간 볼 수 없었던 아빠가 들어와서 살게 되었고요,
아빠가 또 얼마 후에 처음 보는 아줌마를 데리고 들어왔지요.
누군가는 떠났고 누군가는 들어왔지요.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축구볼처럼 떠밀렸던 시간이네요.

엄마 가출 전후로는 집안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어요.
가출 전부터 엄마는 이미 정신은 가출한 상태였었고
우리에게는 늘 짜증냈고,
우리 형제는 늘 쌍욕을 하며 싸웠고
나는 늘 얻어맞았어요
때리는 걸 피하다가 쪽문까지 코너에 몰렸는데
잘못 쳐서 간유리같은 쪽문의 유리를 다 깨먹고
겁이 나서 나와버렸던 기억도 있어요.

어린 마음에 새로운 보호자인 그 아줌마에게 괜한 기대감을 갖고
괜히 치댔던 기억이 아스라해요.
새어머니는 얌전하고 여성적인 분이었는데
가정의 주부가 바뀌자 많은 것이 바뀌더군요.
제일 신기했던 건 음식이었어요.
우리 엄마의 반찬 리스트에는 없었던 반찬들,,
마늘쫑 무침이라던가, 뜨거운 감자 설탕에비벼먹기 등..이요.
그 햇빛이 잘 들어온다던 방에서
불과 며칠, 몇 주 만에 어머니가 바뀌고
여태까지 먹지 않았던 반찬들을 낯선 사람과 마주앉아 먹는 느낌,,
그냥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현실이 아닌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새어머니에게 빨아달라고 하기 부끄러워
속옷을 계속 입다보니,
브라를 한 달 정도 입어 색이 시커멓게 변했던 게 기억이 나요.
나중에는 그마저도 벗어던졌는데,
새어머니가 어느 날 내가 노브라 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기생충에 나오는 것과 비슷했던 화장실
(하지만 사치스럽게 문이 달려있었던)로 날 불러,
소리를 질렀던 기억이나요.
쥐구멍이 있었다면 정말 좋았을텐데..
밤이 되면 저는 남는 베개 하나를 폭 끌어안고 자곤 했어요.

그리고 나는, 주인집과 우리 반지하 세입자들이 같이 쓰는 빨래너는 공간에서
늘 주인집 아주머니의 스타킹을 훔치곤 했어요.
왜 그랬는지 지금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아요
그때 중1 정도였는데,
엄마 가출 전인지 후인지도 모르겠고,
거기서 스타킹을 보면 늘 참지 못하고 훔쳐서
내가 신곤했어요..
누군가 어른한테 스타킹 사달란 소리하기가 어려워 그랬는지,
단순히 초딩때는 안신던 스타킹의 매끈한 감각이 좋아서 그랬는지,
왜 낡은 남의 스타킹을 신고 좋아했는지 모르겠어요.
지금 생각하니 주인 아주머니는 나인줄 알았을 테고,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 무렵, 저는 동네 슈퍼에서도 껌을 뭉테기로 훔치다 걸리기도 했어요.
껌을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아무 죄의식 없이 옷에 쓰윽 넣고 나왔어요.

새어머니가 무섭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느낌은 받았던 것 같아요.
새어머니가 전처 소생 아이들과
무능력한 남편과 반지하방 살이에서 큰 혼란을 겪고 있는 것도
느낄 수 있었어요.
어느 날 그 분 역시 사라지셨죠.
나에게는 좀 얌전해지라..는 생일축하 메모를 남기고(선물과 함께)..
얼굴에 확 물을 끼얹는 듯한 메모였어요.

이런 저런 일렁이는 일들이 반지하에 살던 몇 년간 일어났어요.

아빠가 부동산에 조금 손을 대서 돈을 조금 벌었는지
그후로 우리는 아파트로 이사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도 우리는 오랫동안 해체된 가정, 재회된 가정의 여러 곡절들로
몸살을 앓으며 살아왔지요.

저도 기생충을 보며 지난 반지하의 기억이 되살아나
한 번 곱씹어 봤어요.
마땅히 그 때 처리되었어야 하는 것들이
어린 나는 엄두가 안나
그냥 신문지로 덮어 마음 한쪽으로 밀어두었나봐요.
이제, 내가 내가 되어도 된다는 생각이 믿어지는 나이가 되다보니
가끔 목구멍에, 가슴에 아령처럼 걸리는데,
너무 깊이 있어 그런지 끌어올리려 해도 감정은 되살아나지 않고
어깨가 되려 그 아령에 눌리게 되어요.

정말 반지하 같은건 안만들고,
다들 햇볕보고 살만했으면 좋겟습니다.
햇볕이야말로 우리가 공평하게 나누어야하는
공공재 아닌가요..
IP : 221.140.xxx.230
4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그래도
    '19.6.7 6:20 PM (223.62.xxx.69)

    많이 비뚤어지지 않고 또 그 반지하에서 나와서
    다행이네요.

  • 2. 제목은
    '19.6.7 6:20 PM (221.140.xxx.230)

    그냥 생각나서 재미로 붙인건데 본문과는 동동 떴지만 그래도 뭐...

  • 3. ...
    '19.6.7 6:32 PM (175.223.xxx.141)

    아..글을 참 잘 쓰시네요.

  • 4. ...
    '19.6.7 6:36 PM (175.223.xxx.141)

    담담하게 쓰셨는데 표현 하나하나가 섬세해서 손에 잡힐 듯 해요. 혹시..봉감독님?!

  • 5. .. .
    '19.6.7 6:42 PM (221.140.xxx.230) - 삭제된댓글

    크게 일탈없이 다시 평범하게 돌아왔어요.
    한 때 껌 좀 씹는 분위기까지 갔는데
    아빠와 새어머니 만난후
    이제 공부 해볼까.. 싶은 생각 들었던 기억이 선명해요.
    그리고는 뒤에서 세는게 빨랐던 성적이
    한번에 30등을 올랐거든요.

    전 지금 잘살고 있고
    그렇게 된건 그래도 공부가 사다리가 되준듯 해요.
    성실한 사람들과 네트워킹이 되었거든요.
    여전히 원가정과 소통할때면
    이 모든게 올라와 심장이 묵직해져요

  • 6. ㅇㅇㅇ
    '19.6.7 6:54 PM (221.140.xxx.230)

    한 때 내 냄새를 맡고 모여든
    비슷한 냄새나는 친구들과(참 귀신같이 알고 나에게 손내밀던 그들) 어울리며
    껌 좀 씹는 분위기까지 갔는데,,

    아빠와 새어머니 만난후
    이제 공부 해볼까.. 싶은 생각 들었던 기억이 선명해요.
    그리고는 뒤에서 세는게 빨랐던 성적이
    한번에 30등을 올랐거든요.
    그래도 그땐 그게 가능했던 때라서,
    덕분에 지금 무난하게 살아요.

    여전히 원가정과 소통할때면
    이 모든게 올라와 심장이 묵직해져요

  • 7. ㅁㅁ
    '19.6.7 7:08 PM (223.62.xxx.142)

    정말 글 너무 잘쓰세요 ,댓글,달고 싶어져요.

  • 8. ㅁㅁ
    '19.6.7 7:09 PM (223.62.xxx.142)

    공감이 가게 글을 쓰셨어요

    내 냄새를 맡고 모여든 비슷한 친구들.

    나쁜친구 여부를 떠나 친구끼리,정말 희한하게 유유상종이 되는데요. 표현이 정말. 좋아요

  • 9. 저는
    '19.6.7 7:10 PM (124.50.xxx.65)

    글에 너무 기교가 많아 소설 습작같은 느낌이 들어요.
    사실이라면 담백하거 쓰시는게 좋을 듯
    아닌척하지만 과한 기교가 넘쳐요.

  • 10. 여름
    '19.6.7 7:24 PM (1.247.xxx.142)

    우와~~글 너무 잘쓰시네요 귀찮음도 이기고 로긴했어요. 짧지만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 11. 소설아니고
    '19.6.7 7:32 PM (221.140.xxx.230)

    누구한테 얘기하긴 구차하고
    생각이 올라올때면
    여기에 지난 일들 조각조각 풀어내는게
    저로선 위로고 힐링이에요.
    오늘도 아이 돌아오기 기다리며
    한 십분 만에 생각나는대로 쏟아낸거에요.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12. --
    '19.6.7 7:36 PM (222.108.xxx.111)

    다른 사람에게 쉽게 꺼내지 못하고 가슴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어떻게든 풀어놓고나면 마음이 후련해져요
    저도 그런 옛날 기억이 있죠
    이곳에 풀어놓고 잊으세요

  • 13.
    '19.6.7 7:39 PM (211.36.xxx.131)

    작가신가요?
    글을 너무 잘 쓰시네요.
    머리도 좋고 센스있는 분이실듯
    책을 많이 읽으셨을까요?
    필력이 장난 아니시네요.
    앞으로는 행복한 일만 있으시길

  • 14. 나를부르는숲
    '19.6.7 7:40 PM (121.148.xxx.10)

    가슴에 아령처럼 걸린다는 표현이....
    특히 너무 좋네요
    잘 읽었습니다

  • 15. U+
    '19.6.7 7:59 PM (114.200.xxx.171)

    잘 읽었습니다. 제목이 재미있어서 클릭했다가 다 읽었네요

  • 16. 그러게요
    '19.6.7 8:19 PM (1.231.xxx.157)

    단편 하나 읽은 거 같아요

  • 17.
    '19.6.7 8:25 PM (125.181.xxx.149)

    그 반지하에 여자들이 끊임없이 왔다는게 놀랍네요

  • 18. ㅇㅇ
    '19.6.7 8:28 PM (110.12.xxx.167)

    혹시 글쓰는 직업이 아니시면
    글을 써보심이
    자기 자신에게도 님의 글을 읽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치유가 될거 같아요

    어린시절부터 영민하고 감수성이 뛰어나셨나봐요
    나쁜 환경을 벗어나서 극복할수 있는 의지력도
    있으셨고요
    참 다행입니다

  • 19. **
    '19.6.7 8:38 PM (125.178.xxx.113) - 삭제된댓글

    위에 기교가 너무 많다고 하신 분
    이 글이 레포트도 아니고
    영화 보고서 떠오른 추억 소환글에
    생뚱맞은 반응 같아요.
    평론가신가?
    원글 참 감동적이고 표현이 좋기만 하고만...

  • 20. 씨앗
    '19.6.7 8:40 PM (175.223.xxx.135)

    먹먹하네요

  • 21. **
    '19.6.7 8:42 PM (125.178.xxx.113) - 삭제된댓글

    위에 기교가 너무 많다고 하신 분
    이 글이 레포트도 아니고
    영화 보고서 떠오른 추억 소환글에
    생뚱맞은 반응 같아요.
    평론가신가?
    습작 같다는 평가가 너무 어이 없어요.
    원글 참 감동적이고 표현이 좋기만 하고만...

  • 22. 이런글
    '19.6.7 8:47 PM (118.43.xxx.18)

    정말 좋아요. 성장소설 쓰시면 좋겠습니다.
    자주 써주세요. 내 이야긴데 제 3자처럼 덤덤하게
    쓰셨네요

  • 23. 초록하늘
    '19.6.7 8:48 PM (219.248.xxx.200)

    신문지로 덮어 마음 한 켠에 묻어두었던
    할쿼진 유년신절이 글을 통해 치유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남은 생은 원글님 가정에
    늘 따뜻한 햇살이 가득하시길...

  • 24. 그린
    '19.6.7 8:54 PM (175.202.xxx.25)

    원글님!
    응원합니다.
    혹독한 겨울바람에 추운것보다,공황처럼 무너진 가정울타리가 더 저미게 아파했을 원글님에게...
    견디기 어렵게 지나온 모든 장면들이 ,원글님에게 행복조각들로 날아들길 기원합니다.
    어쨓든 현실이 살만하다면 ,공허했던 기억들에도 어떤 의미가있지 않았을까요...

  • 25. 그러네요.
    '19.6.7 9:11 PM (111.65.xxx.58)

    우리가 그럴때가 있었죠. 초. 중등 7년을 반지하에서 살았어요. 하필 잘 산다는 방배동에서 반지하에 사는 우리는 최하층민 이었어요.
    하수관이 없어서 길다란 파이프가 들어가는 만큼만 땅을 파고 부엌에서 쓴 물이 부엌 한켠 땅속에 차면 하루에도 몇번씩 모터를 돌려 창문밖으로 물을 뽑아 버렸죠.
    집에서 쓰는 생활하수 조차 감당 못하는 수준이니 장마때 마다 발목까지 차오르는 물을 퍼내고 장판을 걷어 선풍기와 보일러를 돌리고... 연중 행사 였어요.
    지하에서 일층으로 나가야 하는 화장실은 밤마다 곱등이 천지라 징글징글 했어요.
    불을끄면 스물스물 기어 나오는 바퀴 벌레들.
    도시락 반찬은 늘 김치 하나.
    저의 어린시절을 생각하면... 그 마음에 생채기 가득한 작은
    그 여자 아이가 참 가엾어요.
    원글님 글에 저도 옛날 생각이 나서 적어요. 나도... 나도 그랬다고...
    지금 외국의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어요. 회사에 늦게까지 일이 있었거든요. 우리 쫌 기특하죠?
    어려운 형편에서도 잘 자랐잖아요. 원글님 잘 하셨어요...

  • 26. 이글
    '19.6.7 9:17 PM (121.157.xxx.135)

    어디가 기교가 많은가요?
    비유도 많지 않고 문장도 길지않고 가독성 좋은 잔잔한 글인데요.
    이런 글에 비평하는 댓글쓰는 사람은 참....

  • 27. ㅇㅇ
    '19.6.7 9:26 PM (110.12.xxx.167)

    그러네요 님에게도 박수를
    응원하고 싶어요

  • 28. ㅇㅇㅇ
    '19.6.7 9:27 PM (39.7.xxx.145)

    저도 기교가 많다는 의견에 동의못해요.
    오히려 수식하거나 멋부리지 않아서
    더 수월하고 담담하게 읽혀지는데요?
    글을 비평하시는 분은 글의 겉모습을 독단적으로 평가하지
    마시고, 담은 내용과 메세지에 주력하시기 바래요.

  • 29. 위에
    '19.6.7 9:27 PM (121.183.xxx.78)

    글에 너무 기교가 많아 소설 습작같은 느낌이 들어요.
    사실이라면 담백하거 쓰시는게 좋을 듯
    아닌척하지만 과한 기교가 넘쳐요....라고 쓰신분 그러지마세요 못나보여요

  • 30. 프렌치수
    '19.6.7 10:27 PM (180.71.xxx.104) - 삭제된댓글

    눈물나네요.
    원글님 토닥토닥

  • 31. 아아 감사해요
    '19.6.7 10:47 PM (221.140.xxx.230)

    오늘은 딱히 감정 복받쳐서 쓴 글 아니고
    그냥 머리속에 며칠 맴돌던 생각이
    갑자기 훅.. 타이핑 하게 된거였어요.

    기교가 많나.. 싶어 저도 다시 읽어봤어요.
    이런 글 쓰는 것만으로도 자기 치유 효과가 있지만
    사실 그런것도 타인의 관심 위로 있으면
    훨씬 더 맘이 충만해지쟎아요.
    제 안에 있는 관종 욕구가 새나왔겠지 했어요.
    저도 담백한 글 좋아해요.

    위 방배동 반지하님 진짜 그 어린소녀가 어땠을지..
    하긴 저도 쥐도, 바퀴벌레도 만났으니까요.
    소공녀도 아니고..
    지금은 웃을 수 있네요, 그땐 아니었지만.

    봉감독 덕분에 묻혔던 기억이 살아나서 좋아요.

  • 32. cndns
    '19.6.7 11:09 PM (60.151.xxx.224)

    우린 다 큰 처녀랑 막내동생이 예민한 여고생일 때 반지하에 살았죠
    습할 땐 방에 고인 물을 쓰레받기로 퍼냈고 부엌에는 첨벙거릴 정도로 물이 고여 있었고요
    1년이 지나지 않아 하나밖에 없는 가구였던 서랍장은 뒤와 밑에 댄 베니아판이 내려 앉았죠

    엄마는 진작에 집을 나갔고
    무능하지만 우리를 끔직히 위했던 아버지는
    비오는 밤 빗물이 흘러들어 올세라 물길을 만들며 밤을 새시기도 했죠

    하고 싶은 공부를 뒤로하고 밤낮으로 일을 해서
    5층 맨윗층의 구석의18평 아파트를 계약하고 우린 밤잠을 설칠 정도로 기뻐했어요
    88올림픽 전 해였죠

    지금 막내는 큰 부자로 잘 살고 저도 외국에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일하고 있답니다

    옛이야기하며 살게 되어
    맞아요 스스로 기특해요

  • 33. 우와
    '19.6.7 11:30 PM (118.32.xxx.187)

    스스로 기특하신 분들께 진심으로 존경과 축하드리고 싶네요.
    반지하 따위는 없었던 지방 광역시 출신이라,
    원글님 마지막 문단에 크게 고개 끄덕이고 동의합니다.
    크게 부자는 아니었지만, 곰팡이나 냄새로 기억될 가난을 마주친 기억이 없었거든요.
    아주 가난했던 친구들 중, 가끔 비닐하우스같은 천막집 사는 친구집 가본적 있고,
    지방이어도 도시였던지라, 쉽게 구경하기 힘들었던 뒷골목 초가집이 지금껏 기억나는 최고의 가난이었거든요.
    그래도 천막집 친구나 초가집 친구나 다들 구김살 없이 신나게 뛰놀았던거 같아요. 아마 다들 지금은 행복하게 잘 살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전 결혼하고 서울 올라와서, 서울 부자들과 나 사이의 괴리감을 아직도 (20년이 되어가는데..ㅠㅠ) 극복 못해서 힘들거든요.
    아무것도 안된, 시시한 어른인 기분에... 모든걸 남탓만 하고 살았던 것 같아 반성하고 갑니다...

  • 34. 반지하
    '19.6.8 6:46 AM (223.62.xxx.179)

    덕분에 옛날 생각 잠깐 해봤네요.

    저도 원글님처럼 글로 풀 재주가 있었음 좋겠어요.

    종종 글 써주세요.

  • 35. ㅡㅡ
    '19.6.8 1:07 PM (58.228.xxx.139)

    기교좀 있으면 어때요. 지적할걸 지적해라 쫌..
    어휴... 싸이코패스.

  • 36. .....
    '19.6.8 2:49 PM (220.87.xxx.23)

    여러 대목들에 눈이 멈췄어요.

    새어머니가 무섭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느낌은 받았던 것 같아요.

    어린 마음에 새로운 보호자인 그 아줌마에게 괜한 기대감을 갖고
    괜히 치댔던 기억이 아스라해요.


    ..
    어떻게 이렇게 묘사를 하실까요. 읽고 또 읽습니다. 지우지 말아주새요 원글님..

  • 37. ...
    '19.6.8 10:57 PM (219.248.xxx.200)

    이 글에 기교가 많다는 사람은
    공지영 글에 좋은 문장이 없다고 깔 사람임

  • 38. 지나가다
    '19.6.9 10:32 PM (223.62.xxx.18)

    어쩜 이리 글을 잘 쓰세요.
    마음이 드르렁드르렁하고,
    그 습기, 곰팡이, 다 살아있습니다. 원글님.
    감사합니다.

  • 39. ㅇㅇ
    '19.6.9 11:47 PM (182.210.xxx.6)

    가끔 글 쓰시던 분 아닌가요? 가끔 이렇게 본인의 일상을 담담하게 써내려간 글 쓰시던분 있었어요..
    읽다가 감탄하곤 했는데..
    이글 역시...글 참 잘 쓰시네요..

  • 40. 원글이
    '19.6.10 10:22 AM (221.140.xxx.230)

    저는 글을 통해서 모르는 사람과 한 두 마디 주고받는게 좋아요.
    이렇게 쓴 글에는 대부분 날선 댓글도 없고
    자신의 얘기를 꺼내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공감해주고 격려 해주는 분들도 많아서
    힘도 되고, 남 얘기 들으며 저도 끄덕끄덕해요..

    글을 잘쓰는 편이라기에는 아직 군더더기가 많다 생각해요.

    다만, 이전 이야기는 속에서 오래 숙성이 된거라
    아마 꺼냈을 때 마음이 전해지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학창 시절,
    단짝들과 몇백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 받으며 킥킥 댔던 기억이 있는데
    그게 글쓰기를 좋아하게 만든 계기가 된거 아닌가 싶어요.
    편지쓰는게 하루 일과였고 편지지 사는게 낙이었던 시간들..

    참, 60 전에는 제 이야기를 쓴 책 한 권 내고 싶단 꿈은 있어요.
    나르시시즘적이 되지 않도록 더 정제되고 통합되고 평온해지면 그 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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